흉터에 새겨진 사랑의 언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ep3

by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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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 다닐 때, '아빠와 함께 하는 캠프'에 간 적이 있다. 캠프 중에는 아빠들이 여장을 하고,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는 시간이 있었다. 왜 굳이 이런 프로그램을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상황이 무척이나 공포스러웠다. 평소에 삐에로 같은 분장이 너무 무서웠는데, 단체로 괴기스러운 여자 분장을 한 아빠들이 무척이나 공포스러웠다. 단발머리 가발에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착한 남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독 소심하고 낯을 가리던 나에게 여장한 착한 남자는 공포였다. 어찌나 소심했던지 어릴 때 나는 매일 손가락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었다. 하도 손을 물어대서, 손가락엔 늘 티눈을 달고 살았다. 엄마가 무자비한 얼굴로 손가락의 티눈을 마구 파내고 티눈약을 바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찍힌 사진에도 나는 한 손은 여장한 착한 남자의 손을 잡고, 한 손은 물어 뜯고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가장 안전한 사람의 손이 낯설고 불안하다고 느꼈다.



불안한 눈빛으로 손가락을 물어 뜯던 내 눈에 착한 남자의 팔이 들어왔다. 유난히 하얗던 피부 위, 한 구역이 할머니의 피부마냥 쭈글쭈글했다. 희미해진 경계가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동 떨어진 섬같은 빛바랜 흉터. 화상자국이었다. 여장의 강렬한 기억에 흉터는 금새 잊혀졌고,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흉터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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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의 착한 남자는 명동의 큰 설렁탕집에 취직했다. 얼마나 크고 유명했는지, 설렁탕집은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착한 남자는 홀을 담당했지만, 일이 없을 땐 주방에 들어가 깍두기를 담글 무를 썰곤 했다. 깍두기의 생명은 균일한 무의 크기라며, 얼마나 열심히 깍두기를 썰었는지 달변을 토해냈다. 그의 깍두기엔 자부심이 담겨있었다. 땅 속에서 자유롭게 자란 무가 균일한 질서를 갖춘 깍두기 무로 재탄생했을 때의 기분은 어떨까, 혼돈하고 공허한 곳에 질서를 만든 신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그날도 그는 주방에서 창조의 마음을 담아 깍두기 무를 썰고 있었다. 별안간 '펑'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세상은 암전 되었다.



기절한 착한 남자가 눈을 떴을 때는 명동 성모병원 침대 위였다. 주방에서 LPG가스가 폭발해 화재가 크게 났다. 많은 이들이 다쳤는데, 하필 주방에서 창조자의 심정으로 무를 썰던 착한 남자도 크게 다쳐서 온 몸에 화상을 입었다. 여장 남자 만큼이나 괴기했던 화상자국은 그날 생긴 것이었다. 화재는 생각보다 컸고, 잘나가던 명동의 설렁탕집은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화상 때문에 얼굴에 있던 주근깨도 다 사라졌어. 나름 예뻤었는데.. 피부도 하얗고 부드러웠는데, 흉터로 덮여졌어. 흉터를 보는데, 나는... 죽고 싶었어."



집 없이 방랑생활을 할 때도, 흙집이 불에 타 아끼던 교복과 교과서를 잃었을 때도 그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 분노, 억울함, 화 같은 감정을 말하지 않았다. 감정이랄게 뭐가 있냐며 객관적인 사실만 말할 뿐이었다. 이상하리만치 잔잔했던 그의 감정이 흉터 앞에서 터져버렸다. 그는 눈 앞에 또렷하게 새겨진 흉터를 마주 하고서야, 가혹했던 자신의 현실과 마주하게 된 것이었을까.



그날 이후 착한 남자는 반팔 셔츠를 입지 않았다. 볕이 내리쬐는 뜨거운 여름에도 긴팔을 고수했다. 얼마나 철저히 흉터를 감췄는지, 엄마에게도 흉터를 알리지 않은 채 결혼을 했다. 하지만 끝까지 감출 담력이 없었던 그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어느날 갑자기 반팔셔츠를 입고 엄마 앞에 섰다. 놀랍게도 엄마는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머쓱해진 그는 엄마에게 흉터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놨고, 엄마는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엄마의 무신경함이 착한 남자에게 해방을 선물했다. 흉터의 무게가 가벼워진 착한 남자는 그제서야 긴팔에서 해방되었다. 12년 만에.



엄마는 정말 무신경했던 걸까? 어린 내 눈에도 선명하게 보였던 흉터자국이 살을 부대끼던 엄마의 눈엔 보이지 않았을까. 어쩌면 엄마는 흉터를 알고 결혼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엄마에게 흉터는 착한 남자가 느끼는 것 만큼의 무게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알고 있었건 아니건, 그저 엄마는 당신만의 방식으로 착한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해방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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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끼가 다분했던 나완 달리, 오빠야 말로 착한 남자의 착한 아들이었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착한 아들. 어릴 때 도서관에 가면 오빠는 책을 읽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는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느 날은 엄마가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창가에 서 보라고 했다. 오빠는 책에 몰입해 있었고, 나는 뜀박질에 몰입해 있었다. 엄마는 책 읽는 오빠를 창가에 세웠고, 나도 책을 읽고 있는 사진이 찍히고 싶다며, 눈에 보이는 책을 아무거나 꺼내 들었다. 철모르고 뛰어다녔어도, 책이 더 멋있어 보인다는 것 쯤은 6살 꼬맹이도 알고 있다. 안타깝게도 책을 펼치는 도중 사진이 찍혔고, 책에 몰입한 오빠와 허겁지겁 따라하는 내가 선명하게 비교되었다.



오빠의 반항이라곤 아식스 잠바사건이 전부였다. 어느날 엄마가 큰 마음을 먹고 오빠에게 아식스 잠바를 사줬다. 메이커를 살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엄마는 오래 입으라며 일부러 100사이즈의 큰 잠바를 골라줬다. 아무리 메이커라도 제 몸집보다 큰 잠바를 사춘기 중학생이 입을리 없었다. 평화롭게 외식을 하러 갈 준비를 하던 어느날, 오빠가 돌연 아식스 잠바를 입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화가난 엄마는 잠바를 집어 던졌고, 모두에게 버림 받은 검은색 아식스 잠바는 힘 없이 풀썩 쓰러졌다. 화가 덜 풀렸는지, 엄마는 잠바를 복도 옆 계단에 갖다 버리기까지 했다. 도둑질도 해 본 놈이 잘한다고, 반항을 해본 적이 없던 오빠는 엄마의 불호령에 눈물을 머금고 버려진 잠바를 주워왔다.



나름 고집이 있던 오빠는 끝내 잠바를 입지 않았고, 결국 아식스 잠바는 착한 남자의 몫이 되었다. 착한 남자 역시 마르고 외소한 체형이었기 때문에, 100사이즈의 잠바는 너무 컸다. 하지만 그는 두말하지 않고 입고 다녔다. 몇십년이 흐른 지금도 검은색 아식스 잠바는 착한 남자의 몸에 철썩 달라붙어, 다시는 버려지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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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착한 아들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아팠기 때문일 것이다. 오빠는 어려서부터 귀가 자주 아팠다. 병원이란 병원은 다 다녀봤지만 이렇다 할 차도가 없었다. 결국 시한폭탄 같은 귀를 관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폭탄은 군대에 가서 터지고 말았다. 군대에서는 귀를 관리하기가 힘들었고, 병이 악화되어 제대 후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한 쪽 귀를 잃고 말았다.



오빠가 한 쪽 귀를 잃은 대신, 엄마는 마음의 병을 얻었다. 지금도 오빠의 귀는 엄마의 눈물버튼이다. 어린 나에게 엄마의 눈물은 공감보단 두려움이었다. 엄마는 고통을 토해내며 현실을 받아들이는 중이었고, 나는 그런 엄마를 보는게 괴로워 못 본 척을 선택했다. 엄마와 오빠, 그리고 내가 고통을 받아들이는 동안 착한 남자는 묵묵히 트럭을 몰았다. 고통이 선명하게 다가올수록 그는 더욱 악착 같이 돈을 벌었다.



"나는 내 팔을 보며 죽고 싶었는데, 네 오빠는 얼마나 더 고통스러웠을까? 상상할 수 조차 없었어"



착한 남자는 자신의 흉터를 보며, 아들의 귀를 생각한다. 선명한 흉터를 보며 죽음을 생각했던 그 날의 나와 같이, 아들도 같은 고통을 느끼진 않았을지 애끓는 마음을 토해낸다. 오랜 세월 지나 꺼내 보인 그의 마음은 끓다 못해 그을린 냄비같았다. 따듯한 수세미가 있다면, 그의 그을음을 닦아줄 수 있을까.



당신의 아들은 한 쪽 귀를 잃은 대신,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다. 가끔은 우리가 눈과 귀에 갇혀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보이고 들리기 때문에 그 너머에 다다르지 못할 때가 있다. 보이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않고, 들리기 때문에 주의 깊게 듣지 않는다. 어쩌면 보이고 들리는 우리가 더 고통받는 자들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아들은 주의 깊게 상대방의 마음에 귀를 기울며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이다. 흉터가 새겨진 착한 남자의 팔은 무쇠 팔이 되어 가족을 끌어 안았고, 아들의 귀는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다. 흉터는 우리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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