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부인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ep.4

by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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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마누라"


우리 집에서 트럭을 부르는 호칭이다. 착한 남자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지중지 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트럭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심지어 쉬는 날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3.5t 트럭이 들어올 수 없어, 걸어서 40분 거리의 외곽에 트럭을 세워둔다. 아파트 주변에 주차를 할 수 있긴 하지만, 5시 전까진 주차위반 딱지를 떼기 때문에 주차가 불가능하다. 착한 남자는 외곽에 트럭을 세워두고 시간을 보내다, 5시가 넘으면 주차를 하고 집에 들어온다. 상황이 이러니 쉬는 날에도 차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는 트럭에서 나름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낸다. 색소폰 연습도 하고, 낮잠도 잤다가 영상도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곤 한다. 자의와 타의가 섞인 트럭과의 시간은 방보다 더 편안한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19호실이 있다.
아무리 가까워도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그런 방.
아무리 편해져도 초대할 수 없는 그런 방.
'19호실로 가다', 도리스 레싱


누구에게도 방해 받고 싶지 않은 나만의 공간. 모든 사람에겐 19호실이 있다. 나에게는 산책이 19호실 이고, 착한 남자에겐 트럭이 그렇다. 분명 혼자 쓰는 방이 있는데도, 그는 방보다 트럭에서 더 본인다움을 느낀다. 방은 언제든지, 누구나 침범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트럭은 결코 그렇지 않으니까. 트럭에 침범하기 위해서는 걸어서 40분을 가야하는데, 그럴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트럭에서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자신과의 시간을 보낸다.



트럭이 착한 남자의 두 번째 부인이 된지도 30년이 넘었다. 매일 짙은 색 옷에 검은 잠바를 입고, 옆구리엔 도시락을 끼고 다니던 그의 모습이 생생하다. 평생 트럭 모는 모습만 봤던 나에게 다른 직업을 가진 그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그는 트럭을 만나기까지 꽤나 많은 직업을 거쳐갔다. 진짜 사랑을 만나기 전까지 수업이 한 방황처럼, 수많은 직업을 돌고 돌아, 어쩌면 운명적으로 두 번째 부인을 만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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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음 이후 착한 남자는 고향을 떠나 서울 남대문에 올라왔다. 일을 하기 위해 올라왔지만, 14살 어린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마침 남대문에서 위탁상회를 운영하고 있던 이모 밑에서 그는 장사를 배웠다. 14살의 아이는 목판을 메고 담배와 껌을 파는 가장이 되어 있었다.


이후 그는 남대문의 한 식당에 취직해 숙식하며 일을 했다. 그의 성실함은 아마 타고난 것일 듯 싶다. 그는 누가 알려주지 않았어도 특유의 성실함을 장착해, 많은 사람의 지지와 신뢰를 얻었다. 식당 주인 할머니의 신뢰도 얻어 외상값을 받아오는 일을 도맡곤 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성실했다 한들, 중학생의 성실함은 정직과는 다르게 읽혀야 한다. 철없는 중학생이었던 착한 남자는 할머니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외상값을 삥땅치곤 했다. 마침 주인 할머니는 외상 장부를 따로 적지 않으셨고, 덕분에 삥땅은 생각보다 쉬웠다. 어느날 외상값이 조금 부족하다고 느낀 할머니가 그 액수가 맞느냐고 묻자, 착한 남자는 당돌하게 대답했다.


"할머니, 그 액수 맞아요. 지난 번에 받으셨는데, 기억 안나세요?"


식당에서 그렇게 오래 장사했던 할머니가 과연 몰랐을까? 몰랐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배신감을 느끼지 않고 돌아가셨으니. 혹시 알고 있었다면, 그 돈은 그저 할머니의 방식대로 찔러 준 용돈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가장에게 할머니의 방식대로 전했던 애틋한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이건 착한 남자는 지금도 본인이 뱀처럼 잘 숨겨서 외상값을 삥땅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아는 착한 남자는 거짓말을 하면 금방 티가 나던데, 어린 중학생이라고 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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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없다. 멀리서 보면, 불행은 불행 그 자체이지만, 껍질을 까면 그 안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고향을 떠난 14세의 가장'은 누가 봐도 불행이지만, 그의 이야기엔 행운 같은 사랑이 담겨 있다. 마침 남대문에서 일을 하고 있던 이모도, 외상값 삥땅을 모른척(?) 해주던 할머니도 그에겐 행운 같은 사랑이었다. 그렇기에 인간은 회복되지 않을 것 같은 불행 앞에서도, 다시 일어날 준비를 하는지도 모른다.


착한 남자가 불을 몰고 다닌 건지, 어느날 남대문 시장에 큰 불이나 할머니의 식당도 모조리 타버렸다. 그렇게 불을 끝으로 할머니와 착한 남자의 인연도 끝이 났다. 이후 그는 중국집, 일식집, 설렁탕집 등 왠만한 식당에서는 다 일했다. 어쩐지, 그가 끓여주는 김치찌개가 그렇게 맛있더라니, 알고보니 경력직의 솜씨였다. 엄마보다 맛있는 그의 찌개는 엄마의 아주 좋은 핑곗거리다. 자신보다 잘 끓인다는 이유로 착한 남자는 가끔씩 찌개를 끓인다.


20대 중반까지, 화려했던 식당생활이 끝나고, 공장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의 첫 번째 공장은 '한일제과'라는 과자공장이었다. 공장은 꽤나 컸고, 기숙형이었기 때문에 쉬는 날엔 친구들과 놀러나가기도 했다. 물론 쉬는 날은 한달에 한 두번 뿐이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불사르며 놀아야했다. 이후 그는 자동차 부품 납품 공장에 취직했다. 그동안의 근무지 중 가장 복지가 좋은 곳이었다. 토요일 반 일 근무에 연차도 사용할 수 있었다. 가능한 오래 다닐 각오로 일을 하던 어느날, 엄마가 제비 마냥 뜻밖의 소식을 물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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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문방구 사장님의 남편이 몰던 1.5t 트럭이 부모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당시 살았던 봉천동 다세대 주택 앞 문방구에는 멋드러진 1.5t 트럭이 세워져있었다. 어느날 엄마는 문방구 사장님에게서 트럭의 수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트럭을 몰아보면 어떻겠냐는 엄마의 권유에 착한 남자는 응답했고, 오래 다니리라 결심하던 회사는 그렇게 정리되었다. 안정적인 회사를 왜 그만두느냐며 말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이미 확신에 차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당시 1.5t의 번포판 값이 너무 비쌌고, 차선책으로 3.5t을 선택했다. 그렇게 두 번째 부인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안타깝게도 두 사람이 놓친 것이 있었다. 기름값이 유동적이라는 사실. 그 말은 곧 언제든 치솟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당시 기름값은 200원 밖에 안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올랐다. 처음 의도한 만큼의 돈을 벌지 못하자 당황한 착한 남자는 더 많이 일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럴수록 그의 기상시간은 점점 더 빨라졌다.


새벽 3시. 그의 하루는 남들보다 일찍 시작된다.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해 부족한 돈을 충당해야했다. 그의 얼굴 빛에 따라 그날의 수입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일을 많이 한 날에는 햇살 같은 미소를 머금었고, 일거리가 별로 없는 날엔 그늘이 내려 앉았다. 어느날은 말 한마디 하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운 얼굴을 한 날도 있었는데, 그런 날은 까대기를 했거나, 갑바를 친 날이다. 보통 트럭은 운반만 하는데, 가끔 짐을 싣고 내리는 일이 추가될 때가 있다. 그런 일을 잡은 날에는 짐을 싣고, 운반한 후 하차까지 오롯이 본인의 몫이 된다. 말 그대로 젓 먹던 힘까지 쏟아 내야한다. 예상치 못한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방수천을 씌운다. 비를 쫄딱 맞으며 두껍고 무거운 방수천을 씌우고 나면, 그의 말마따라 팬티까지 몽땅 젖는다. 까대기나 갑바를 하고 집에 돌아 온 날에는 그에게 장난을 칠 수도, 말을 걸 수도 없었다. 그의 19호실이 되어 준 트럭은 그렇게 천천히, 그의 젊음을 가져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는 세 번의 트럭부인을 만났다. 운전대를 잡을 때면 그의 눈빛은 자부심으로 차오른다. 운전에 있어서는 그의 말이 전적으로 맞다. 그의 말에 매번 토를 달며 따져 물어도, 운전에서 만큼은 무조건 수용한다. 그가 맞으니까, 그의 세월이 맞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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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그는 네 번째 트럭부인을 맞이했다. 네 번째 만에, 처음 트럭의 세계로 이끌었던 1.5t 트럭을 만났다. 돌고 돌아 첫사랑을 만났을 때의 느낌이 이런 걸까. 그의 첫사랑은 업그레이드 되어 양 날개 달린 천사로 돌아왔다. 윙바디, 윙카였다. 70대가 가까워지면서 그는 3.5t 트럭이 매우 버거웠다. 심지어 트럭에 오르고 내려오는 일도 힘에 부쳤다. '다시는 까대기를 하지 않으리라, 갑바와는 완전히 이별하리라'는 모든 염원이 1.5t 윙카에 담겨있었다. 운행을 시작하기 전 그가 기도를 부탁했다. 기도를 하기 위해 착한 남자의 윙카에 앉으니 여러 감정이 밀려왔다. 착한 남자를 시시포스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준 윙카는 날개 달린 수호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제, 이 차는 노동의 차가 아니라, 해방과 기쁨의 차가 될 것입니다.
이 차를 탈 때마다 기쁨의 소리가 차 오를 것입니다.


그의 꿈은 윙카를 끌고 양로원, 복지관, 교회 등을 다니며 색소폰 연주를 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 꿈은 몇 주 전 실현되었다. 문화 선교회에 들어가 한 달에 한 두번씩 돌아다니며 색소폰 연주를 하기로 한 것이다. 첫 시작은 포천의 기도원에 가서 색소폰 연주를 하고 온 것이었다. 그에겐 고질적인 박치의 문제가 있지만, 그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다. 듣는 이들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이제야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작은 행복을 찾아가는 그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품어주시길 기대해본다.


또 하나의 꿈은 엄마와 함께 윙카를 타고 대한민국 곳곳을 다니는 일이다. 물론 그 꿈도 실현되고 있다. 2-3주에 한 번씩 엄마와 함께 드라이브를 다닌다.


회사를 관두고 트럭을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답한다.

"덕분에 아이들을 키웠고, 가정을 지켰잖아. 나의 70이 되도록 일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트럭 덕분이야"


왜 트럭이 두 번째 부인이 되었는지, 이제 알겠다. 그리고 그가 부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알겠다. 사랑해 마지않는 부인들과 부디 오래 행복해 주시길. 대한민국을 누비며, 구석구석 행복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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