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라는 단어의 대체제를 찾고 싶다.
한 사람으로서 성장하는 일은 믿기 힘들 정도로 좌절감을 준다.
이 모든 일을 해내도 당신은,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낙담하고 포기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보상은 어느날 변화가
당신에게 살금살금 다가올 때까지 인내하고 불확실성과 자기 회의감을 극복하는 데 있다.
이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우리는 계획할 수 없다. 그저 일에 착수하고 과정을 신뢰할 뿐이다.
그러니 실현되지 않은 계획에, 이루지 못한 목표에, 실패한 관계에 절망하지 말 것.
대신 거기에서 배우라. 그리고 다음에는 조금 다른 것을 시도해 보자.
나만의 방식으로 일하는 법도 실험해 보자.
삶이 나아지는 과정은 느리고 점진적이라는 인간의 필연성을 받아들이자.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의 다름을 악마 취급하지 마라.
내가 그랬듯이, 당신이 타고난 초능력으로 차이를 수용하라.
무슨 일이든 잘 풀리기 전에 한 번은 잘못될 것이다.
상황이 좋아지기 전에 더 나빠질 수도 있다. 괜찮다. 사실 그 과정이 필요하다.
실패하는 실험을 즐기라. 혼자서 해내는 과정을 누리라.
그리고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나는 절대로 그런 적이 없고, 지금도 그럴 생각은 없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카밀라 팡 p.316
삶에 혼돈이 찾아올 때, 도저히 어찌할 바를 몰라 헤메이곤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앞에서,
숨막히는 공포감 앞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앞에서
때로는 합리화로, 때로는 직면하며 문제를 조금씩 해결해 갔다.
문제 해결의 수단은 '신앙'이었다.
과학의 방법으로 삶의 혼돈 앞에 맞선 한 사람.
'카밀라 팡'
그녀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ADHD 진단을 받은 과학자이다.
어려서부터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정해진 규범대로 사는 사람들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에게 세상은 도저히 설명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었다.
그때 그녀의 위안이 되어주었던 것은 '과학'이었다.
과학은 모든 것이 설명된다. 최선을 다해 삶과 현상을 이해시키려고 애쓴다.
그녀는 빠른 속도로 과학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과학자가 되었다.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 설명해주는 과학은 그녀에게 삶과 인생까지도 설명해주었다.
생물화학, 물리학, 화학, 통계학, 역학, 광학, 컴퓨터학, 정보과학 등 광범위한 과학을 통해 그녀는 삶을 깨달아갔다. 과학자답게 자신을 던져 실험하기도 하고, 오류를 받아들이고 수정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과학과 인연이 없던 내게 그녀는 과학이 얼마나 다정한지 보여주었다.
그것은 덮어 놓고 믿으라는 말보다, 모두가 그렇게 하니 너도 하라는 말보다 훨씬 더 다정했다.
적어도 과학은 최선을 다해 설명해준다.
너가 지금 왜 두려운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지,
너 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의 책을 읽으며, 과학을 모르는게 서글펐다.
과학을 조금 더 알았다면, 더 깊은 깨달음의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실현되지 않은 계획에, 이루지 못한 목표에, 실패한 관계에 절망하지 말 것!
거기서부터 배우면 된다. 그리고 다른 시각으로 새롭게 접근하고, 증거를 쌓아가며 새롭게 해결해가면 된다.
국립과천과학관장 이정모 박사는 말한다.
"과학은 실패하는 학문이다"
몇십년 전 과학 노벨상을 받았던 분의 생각이 시간이 지난 후 틀렸다는 것이 다시 입증되었다.
그렇다고 그 분이 받았던 노벨상을 회수하지 않는다. 우린 틀린 생각에 노벨상을 주었던 것이다.
과학은 실패해도 괜찮은 학문이다. 그렇게 발전해가는 것이다.
그의 말을 한참을 곱씹었다.
'과학은 실패하는 학문이다.'
카밀라 팡의 말이 그 위에 뒤덮였다.
'실패에 절망하지 말 것, 대신 거기에서부터 배워라'
'실패'라는 말은 어쩌면 실존하지 않는 말일 수도 있겠다.
실패가 아니라, 과정일테니.
실패가 아니라, 시행착오일테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정을 사랑하고,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삶에 실패란게 있을까.
과학이 끊임없는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듯,
삶 역시 끊임없는 시행착오의 과정이 아닐까.
실패는 마침표 같지만, 과정과 시행착오는 쉼표 같다.
실패는 끝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과정과 시행착오는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이것이 내 문제의 근원이며 우리가 삶에서 열심히 질서를 만들고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질서는 근본적으로 자연스럽지 않은 상태이며,
빠르게 느슨해지려는 우주적 충동에 단정하고 정돈된 상태를 향한
인간의 욕구가 맞서는 일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질서가 흐트러지는 건
무작위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그저 분지물리학의 운명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카밀라 팡 p.87
한참을 고민했던 문제였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만났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내게 던져 준 질문이었다.
혼돈이 질서보다 쉽다.
삶에 질서를 세워가는 건 너무 어려운데, 조금만 정신을 놓고 살면 금방 혼돈이 찾아왔다.
나는 이게 무척이나 이상했다. 왜 삶은 이토록 어려워야하는 것일까.
왜 질서를 세우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데, 혼돈은 그토록 쉽게 찾아오는 것일까.
왜 어렵싸리 세운 질서가 한 순간의 혼돈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것일까.
그녀는 물리학을 통해 설명해준다.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네가 부족해서 그런게 아니라고.
'방 정리보다, 어지럽히는 게 훨씬 쉬운 일이라고'
그러나 방이 다시 어지럽혀질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방 정리를 하는 것처럼,
혼돈이 찾아올 걸 알면서도, 다시 질서를 세워야 한다고.
그러니 질서를 세우는 일은 에너지가 드는 것이라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정된 우리의 에너지를 어떤 질서를 세우는 일에
사용해야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내가 세우고 싶은 질서가 무엇인지 찾아야하고,
끊임없이 나의 에너지를 들여 질서를 세워가야한다.
건물이 부식될 걸 알면서도 우린 건물을 짓고,
어지럽혀질 걸 알면서도 집을 청소하고,
더렵혀질 걸 알면서도 몸을 씻는다.
삶도 그러하니
우린 실패할 걸 알면서도 나아가야 한다.
앞에서 말했듯 그건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과정이고 시행착오이며 성장통이다.
실패라는 언어의 대체제를 찾고 싶다.
실패는 없다.
평생 동안 인간과 삶을 이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그녀의 노력이 과학을 통해 설명되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위로와 힘을 받았다.
내 안에 무수히 떠다니던 수많은 질문과 이해들이 과학이라는 프리즘을 거쳤을 때, 선명하게 이해되고 설명되었다. 이토록 다정한 과학이라니.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우린 그저 관찰하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실험하고 연구해나갈 뿐이다.
과학만이 아니라 삶이야 말로 끊임없는 실험과 연구의 결과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나의 다름을 수용하며, 온전한 나 자신으로 성장해 갈 것.
그것이 전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