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소(直訴)', 다자이 오사무 그리고 가룟유다의 고백
나는 천국을 믿지 않아. 하느님도 믿지 않아.
그분의 부활도 믿지 않아. 그 사람이 무슨 이스라엘의 왕이겠어.
바보같은 제자들은 그 사람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지.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인가 뭔가를 그 사람한테서 듣고는
한심스럽게도 환호작약하고 있어. 이제 곧 그들이 실망하게 되리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
자기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임을 받을 거라고
그분은 약속하셨지만 세상일이라는게 아디 그렇게 쉽게 됩니까?
그 사람은 거짓말쟁이야. 말하는 것 하나부터 열까지 다 엉터리야.
나는 하나도 믿지 않아. 그렇지만 나는 그 사람의 아름다움만은 믿어.
그렇게 아름다운 분은 이 세상에 없어. 나는 그분의 아름다움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있어.
그뿐이라고. 나는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아.
'직소(直訴)', 다자이 오사무 p.144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직소(直訴)'는 가룟 유다의 독백집이다.
'직소(直訴)'라는 제목 답게,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상급관청에 호소하는 중이다.
그가 호소하는 인물들은 바리새인과 대제사장.
자신이 왜 은 삼백냥에 예수를 팔고 있는지, 호소하는 중이다.
인간 실격저자다자이 오사무출판민음사발매2012.04.10.
© kmitchhodge, 출처 Unsplash
예수를 사랑했다. 아주 많이.
그러나 예수는 그에게 냉담했다.
제 아무리 예수라도 가룟 유다의 사랑을 채워주지 못했다.
예수를 향한 사랑에 괴로운 가룟 유다는 마침내,
예수를 본인의 손으로 파멸시킬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채워지지 않을 바에는 파멸시켜 버리겠다는 잔인한 사랑.
아니, 그것은 사랑일까?
그것조차 사랑이 맞는 것일까?
은 삼백냥이었다.
사랑에 지친 대가가.
아니, 내 사랑은 그정도의 싸구려가 아니다.
나는 값으로도 매길 수 없는 사랑을 했다.
유다는 은 삼백냥을 성전에 던져버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예수를 향한 채워지지 않는 사랑을 갈망하는 유다를 보며,
부모를 향해 사랑을 갈망했던 나를 발견한다.
"갈애(渴愛)"
불교 용어인 '갈애'의 사전적 뜻은
1. 매우 좋아하고 사랑함.
2. 번뇌에 얽혀서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범부(凡夫)가 목마를 때 애타게 물을 찾듯이 집착하는 것.
매우 좋아하고 사랑할수록 집착하며 번뇌에 빠진다.
예수보다 유다의 사랑이 더 컷던 것일까.
예수는 갈애에 빠지지 않았는데,
왜 유다는 갈애에서 허우적대고 있을까.
왜 나는 유다처럼 갈애로 고통스러워할까.
사랑은 고통과 같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할수록 채워지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면,
사랑할수록 오히려 목이 마르다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낫다.
그럴 수가 있을까?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사랑하고 있는데?
세상에 나와 처음 마주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데.
물동이를 아무리 들이 붓는다고 채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밑빠진 독처럼 새고 또 새어나가
갈애만 더 느낀다.
아무리 붓고 또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갈애가 생긴다면,
채우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예수조차 가룟 유다의 갈증을 채워주지 못했다면,
사랑은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차오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 lazycreekimages, 출처 Unsplash
사랑은 내 안에서부터 차오르는 것이다.
밖으로부터 채워지는게 아니라, 안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것이다.
그냥 부모를 사랑하면 될 일이었다.
사랑해달라고, 더 많은 사랑을 달라고 갈애할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안에서 차오르는 사랑으로 사랑하면 될 일이었다.
사랑은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다.
퍼내면 낼수록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밖으로부터 채워진 물은 고이고 썩지만,
안에서부터 솟구쳐 나오는 물은 고일 수가 없다.
끊임없이 솟구쳐나와 밖으로 흐르기 때문에.
부모는 이미 차고 넘치는 사랑을 주었다.
예수는 가룟 유다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것은 그들의 사랑이다.
나는 나의 몫으로,
유다는 유다의 몫으로 사랑하면 될 일이었다.
사랑을 달라고 하는 것은 어린 아이와 같다.
아니, 어린 아이는 부모보다 훨씬 더 깊은 사랑을 하고 있다.
어쩌면 부모의 사랑보다 아이의 사랑이 더 깊을 지도 모른다.
그것은 여전히 자아(에고)에 갇혀 사는 사람.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일 뿐이다.
갈애의 사랑은 파멸(죽음)을 낳지만,
진실된 사랑은 부활에 이른다.
아무리 누르고 눌러도 결코 죽지 않는,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다함 없는 사랑으로 진실된 사랑을 할 것.
받는 것보다 주는 사랑에 집중할 것.
사랑하면서 솟아오르는 내 안의 샘물을 충만하게 누릴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 switch_dtp_fotografie,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