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가 오늘따라 유난히 샛노랗다

민들레 수필

by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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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는다.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니다. 땅을 보며 걷느라, 가다서다를 반복하느라, 걸음은 느리다.

겨울잠을 자고 일어난 생명들이 곳곳에서 기지개를 켠다. 기지개 켜는 소리가 숲에서만 들리는 건 아니다.

깨진 아스팔트 사이, 시멘트 틈새, 한 줌의 흙 사이사이에서도 들려온다. 잠에서 깨어난 생명은 샛노란 꽃을 피우며,

'여기 이곳에도 내가 산다'고 외치는 듯 하다.



걸음이 느리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여기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 곳에서 피어나는 민들레를 보느라.

시멘트로 만든 계단 끝자락이 깨져나갔다. 보란듯 민들레가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쓰레기를 잔뜩 모아 둔 전봇대 근처에도 자리를 잡았다.

주변을 가득 채운 쓰레기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민들레는 자신을 뽐내느라 바쁘다.

푸른 이파리를 활짝 펴서 감싸안은 다음, 노란 깃발 하나를 꽂는다.

'여기, 내가 산다'



깃발은 금새 뽑히기도 한다. 작년에 봤던 민들레가 뽑히고 나간 자리는 시멘트로 메워져있다.

더 이상 이곳에서 민들레를 만날 수 없다. 나의 시선도, 여기에 머무를 일은 없겠다.

깨진 시멘트 사이, 숨쉬기조차 어려운 작은 틈새에서도 민들레는 깃발을 꽂고 자신을 뽐낸다.

깨진 것일지라도 그 자체로 만족하며 마음껏 사랑한다.



'엄마랑 당분간 연락하지 말자'

엄마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잣말로 되뇌인다.

꽉 막힌 도로처럼 가슴도 꽉 막혀 도무지 전진할 줄을 모른다. 급하게 삼킨 덩어리가 식도 아래에 컥 막힌 것만 같다. 노년의 초입에 들어선 엄마의 불안이 이곳저곳에서 새어나온다. 엄마의 불안에는 과거의 후회가 담겨 있다.

'내가 조금 더 잘 알았으면, 너희를 더 잘 키웠을텐데',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으면 더 많이 베풀고 살았을텐데'



오빠의 나와 모든 성장기에는 생계를 책임지느라 바빴던 아빠 대신에 엄마로 가득 차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모든 순간에는 엄마였다. 아빠가 학교 행사에 처음 온 건 대학교 졸업식 때였다. 엄마와 함께 하는게 좋으면서도 언제나 불안했다. 엄마의 화가 언제 터질지 몰랐기 때문에. 엄마는 불같이 화를 내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곤 했다.


사춘기가 되면서는 엄마의 화에 맞섰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금방 꺼질 화는 더 오래, 활활 타올랐다. 매일 악을 쓰며 싸워대느라, 마음이 지쳐갔다. 그때부터였을까, 더이상 집에서 웃지 않았다. 말하는 횟수도 줄었다. 밖에서는 쾌활하고 명랑한 나를 보며 엄마의 서운함은 커져갔다.


머리가 커질수록 엄마의 화도 화력이 약해지고 있었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서 더이상 서로에게 화내는 일도 없었다. 대신 어떤 애틋함에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앉았다. 왜곡된 애틋함을 걷어냈을 땐, 여전히 엄마에 대한 상처와 채워지지 않은 갈애를 마주했다.


엄마를 사랑했다. 늘 빈자리였던 아빠의 자리마저 채워 준 엄마였다.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만큼 엄마는 더 많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사랑이 차고 넘쳐 흐를 만큼 충만한 사랑을 받길 원했다. 그러나 단 한번도 엄마는 나를 채워주지 못했다.



갈애. 갈망하는 사랑을 채워줄 수 있을까? 예수 조차도 가룟 유다의 사랑을 채워주지 못했는데, 예수도 못한 일을 엄마가 할 수 있을까?



'당분간 엄마에게 전화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다시 길을 걷는다. 좁은 틈새에서, 깨진 아스팔트 사이에서, 쓰레기 더미에서 웃으며 깃발을 꽂고 있는 민들레와 눈이 마주친다. 민들레의 미소엔 주저함이 없다. 자신이 피어날 환경을 제대로 만들어주지 않은 아스팔트에게, 한 줌의 흙에게, 심지어 쓰레기에게도 불만은 없다. 자신의 깃발을 꽂을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아니 깃발을 꽂지 못한대도 상관없다. 주저함 없는 사랑으로 이파리를 활짝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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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곳을 사랑하는구나'

엄마를 사랑한다. 채워지지 않을 사랑에 목말라하기보다, 엄마를 사랑하면 될 일이었다.

엄마의 깨진 마음 곁에 내가 할 수 있을 만큼의 이파리를 활짝펴고 깃발을 꽂으면 될 일이다.

엄마의 사랑의 크기로 나를 채울게 아니라, 엄마를 사랑하며 차오르면 될 일이었다.

사랑이 과연 채워질 수 있는 것인가, 사랑은 하면서 스스로 차오르는게 아닌가. 누구도 내 안의 갈증을 채워줄 수 없다.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내 안에서 차올라야 하는 일이다.


깨진 시멘트를, 쓰레기 더미를 불평하지 않고 자기만의 뿌리로 이파리를 활짝 펴 감싸 안은 민들레가 오늘따라 유난히 샛노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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