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드 '별이 내리는 밤에' 남자 주인공의 시점에서 애인에게 쓴 편지
그날은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이었습니다.
처음 만난 당신은 마치 별 같았어요.
어린 아이처럼 해맑게 별을 보는 당신의 얼굴이 별처럼 빛났습니다.
나도 모르게 당신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어요.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본 나의 눈과 당신의 눈이 마주칩니다.
당신의 눈 속에도 별이 담겨있네요.
당신과의 짧지만, 강렬한 만남은 내 몸 구석 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나는 언제나 죽음과 가까이에 있습니다.
내 직업은 유품정리사입니다. 고인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정리하다보면,
한번 도 본 적 없는 사람이지만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친구가 된 느낌이지요.
정리를 하다보면 그 사람이 생전에 소중하게 여겼을 물건들이 자연스럽게 눈에 보입니다.
나도 모르게 그 물건들을 관련된 사람들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쓸데 없는 오지랖이라며 핀잔도 듣고, 뺨을 맞을 때도 있고, 물 세례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고인의 이야기가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제 직업이 아주 좋습니다.
산부인과 의사인 당신과 유품정리사인 내가 사랑하게 된 것은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정 반대에 있는 사람들이 만난 것 같아서요. 아니,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기적이 아니라 당연히 만나야 할 인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린 정 반대가 아니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삶과 죽음은 양극단에 있는게 아니라, 짝꿍처럼 가장 가까이에 있으니까요.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
같은 분만실 안에서도 벽 하나를 두고 누군가는 출산을 하고, 누군가는 사산을 한다는 당신의 말을 기억합니다. 삶과 죽음이 분만실 안에 공존하는 것처럼, 희(喜)와 비(悲)도 우리 인생에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희,비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기에 기쁜 일 앞에서 너무 자만할 필요도, 슬픈 일 앞에서 너무 무너질 필요도 없어요. 다만 우리에게 찾아오는 모든 순간들에 몸을 맡기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언제나 나는 잃는 쪽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지요.
그러나 우리가 삶을 껴안고 있는 크기 만큼 죽음의 크기도 같습니다. 언제 무슨 일을 만나도 이상하지 않을 순간들을 우린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당신과 함께 겪는 모든 순간들이 소중합니다.
어떤 저항 없이 모든 순간들에 몸을 맡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순간에 몸을 맡긴다는 건, 헹가레를 받는 일과 같다고 생각해요. 헹가레를 받기 위해서는 몸에 힘을 빼야 하는 것처럼, 순간에 몸을 맡기기 위해서는 잔뜩 들어간 힘을 빼야해요.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조금씩 당신의 몸에서 힘이 빠지는 걸 느낍니다. 슬플 때 최선을 다해 슬퍼하고, 기쁠 때는 아이처럼 기뻐하는 당신을 봅니다. 당신은 어느 때보다 당신의 삶에 온 몸을 맡기고 있군요.
앞으로도 우리의 인생 앞엔 희와 비가 날마다 짝꿍처럼 함께 있을 겁니다.
어느 날엔 희가 좀 더 크기도, 어느날엔 비가 강하게 찾아올지도 모르죠.
그래도 저항하지 말고 우리의 희비를 받아들이기로 해요. 그래서 나는 당신과 함께 지내는 모든 순간들이 눈물 나게 귀합니다. 당신과 행복을 나누는 순간도, 갈등을 겪는 순간도 내겐 소중합니다.
내가 말을 하지 못하는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당신을 향한 사랑을 다 표현하지 못했을 거예요. 나의 몸짓과 눈빛과 손짓을 통해, 나의 모든 것을 사용해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감정을 잃은 채 살아가는 산부인과 의사와 농인 유품 정리사가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입니다.
삶과 죽음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야기, 죽음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를 담은 이야기입니다.
생명의 시작과 끝을 담담하게 전하며,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웨이브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