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요 Mar 01. 2024

새해 목표, 잘 이뤄지고 있나요?

새해 목표를 세운, 세우지 않은 모든 이들에게.



2024년 새해 목표는 무엇인가요? 


매년 연말이 다가오면, 다이어리를 사는게 일이었습니다. 새롭게 다가 올 한 해를 준비하며 예쁜 다이어리에 하나하나 일정을 적어 넣었어요. 그리고 새해 목표도 세웠습니다. 

'올해는 책을 몇 권 더 읽어보자'

'다이어트에 한 번 도전해볼까?'


새해가 밝으면 야심찬 목표를 세웁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세 번의 기회가 더 있어요. 우리의 진정한 새해인 '설날', 봄의 시작을 알리는 '춘분' 그리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1일'입니다. 자, 이제 마지막 세번째 기회 앞에 섰습니다. 다시 계획을 세우고, 마음을 다잡고 있나요? 무슨 계획들을 세우셨나요?


언제부터인가, 새해 목표를 세우지 않게 되었습니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다이어리는 6개월을 채 넘기지 못했고, 빈 장만 남긴 채 공간을 차지하게 되었지요. 책도, 다이어트도 당연히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뭐 어때요. 실패할 수도 있지.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 겁니다. 참 이상하지요.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우리는 자신을 비난합니다. 차라리 목표를 낮게 잡고 하면 되는건데, 목표를 높게 잡았으면서 하지 않으면 또 그렇게 자책을 합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습성을 가지고 있나봐요. 


비난을 멈추기로 했습니다. 목표를 세우지도 말고, 비난도 하지 말자. 그냥 한 해를, 365일을 살아낸 그 자체로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다 생각했습니다. 다이어리도 더이상 쓰지 않습니다. 휴대폰 어플 달력에 일정을 기록하고, 모닝페이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제게 아주 잘 맞습니다. 


그리고 2024년 올해, 몇년 만에 새해 목표를 세웠습니다. 저의 새해 목표는 이것입니다.


"가슴을 활짝 열고, 사랑만 남기자."




어학 공부를 하겠다는 것도, 살을 몇키로 빼겠다는 것도, 책을 몇 권이나 더 읽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수치를 정한 계획은 더이상 세우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으로, 굉장히 추상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실 이 계획은 작년 연말부터 마음 속에 차오르던 생각이었습니다. 삶이 통제되지 않아도, 뜻대로 모든 것이 이뤄지지 않아도 가슴을 열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만하면, 그리고 기꺼이 흘려 보내줄 수만 있다면 삶은 이미 충만하겠다는 생각 앞에 섰습니다. 모든 것이 왔다가 흘러가도 그 자리엔 '사랑'만 남겠다는 생각도 함께요. 



사랑의 화신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가슴을 활짝 열고 싶어졌습니다. 유독 소화되지 않았던 사람, 이해되지 않은 현실, 반갑지 않은 상황들도 받아들이며 살아보면 어떨까.. 억지로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자연스럽게, 가슴을 열고 받아들이며 흘려보낼 뿐입니다. 집착도 저항도 없이요. 그리고 교회 공동체에서 새해 말씀을 하나 뽑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1코린 13,7)




"올 한해를 나와 동행할 말씀이 '사랑'이라니, 나 정말 사랑의 화신이 되고싶어!!" 이 말씀을 뽑는 순간 이 마음이 들었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사랑을 목표로 세웠던 적이 있었던가, 눈에 보이는 수치들로 나를 평가하려고만 했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짜 나, '참 나'를 위해 살았던 적이 있었던가... 


올해 다이어트를 못해도, 책을 조금 밖에 읽지 못해도, 돈을 많이 모으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가슴을 활짝 열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며 '사랑'만 남길 수만 있다면 이미 나는 충분히 목표를 이뤘습니다. 


당연히 잘 안됩니다. 요 며칠 정신을 빼놓고 살고 있었습니다. 임신 중에 장염에 걸려 약도 먹지 못하고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했습니다. 여전히 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쳤고, 이 고통이 영원할 것만 같다는 생각에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언제그랬냐는 듯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고통이 단 3일도 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집착과 저항에 몸부림치는 나를 발견합니다. 같이 사는 배우자가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세상의 온갖 불안도 끌어옵니다. 그리고 그 불안이 영원할 것만 같다는 생각에 또 다시 고통스러워합니다. 배우자를 들들 볶았다간 싸움이 될게 뻔하기에 혼자 불안과 분노를 삭히며 고통을 끌어옵니다. 그러나 잠을 자고 일어나니 모든 것이 가벼워집니다. 


길었던 2월을 마치고, 목표를 세울 마지막 기회라는 3월 1일 앞에 섭니다. 그런게 어딨어요. 저는 2023년 12월부터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 목표는 아마 평생의 목표일 것 같습니다. 더이상 수치로 나를 규정하는 목표는 세우지 않을겁니다. 다만 나는 시나브로,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갈 뿐입니다. 가슴을 열고 사랑만 남기는 일은 내가 성장해가는 일입니다. 어느날은 활짝 연 가슴에 스며드는 현실 앞에 기쁨을 느끼고, 어느날은 꽉막힌 가슴 앞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뭐, 다 괜찮지 않겠어요? 되어갈 뿐이니까요. 


새해 목표를 세우지 못했어도, 거창하게 세운 목표가 작심삼일로 끝나버려도 괜찮아요. 그냥 우리 되어가요. 완성형보단 성장형이 더 재미있잖아요. 가슴을 활짝 열고, 사랑만 남겨봐요. 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