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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Apr 17. 2024

불안의 틈새로 온 세상을 비추는 햇살을 만나다.

안녕, 아가야



사랑스러운 아기를 만났습니다. 

임신 9개월 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불안과 마주했습니다. 나만 아픈게 아닌 줄 알면서도, 이제 그만 아프다고 해야하는 걸 알면서도, 초음파로 마주했던 아기를 떠나보낸 기억은 세포 여기저기에 남아 여전히 나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어요. 또 다시 이별하게 될까봐. 이번에 이별하면 나는 어떻게 견뎌야할까... 수많은 생각과 불안으로 밤을 지새운 날들이 많았습니다. 



어느날 길을 걷는데, 햇살이 참 예쁘더라고요. 태어날 아기가 이 햇살을 바라볼 거라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햇살이 문득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불안은 쉽지만, 기쁨은 틈새로 새어오는 햇살과 같다고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을은 무척이나 많습니다. 불안의 요소를 찾자면 끝도 없이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그 사이에, 불안과 불안 사이 작은 틈새에 온 세상을 비추는 햇살과 같은 기쁨이 숨어 있습니다. 아니 숨어 있는 것도 아니예요. 언제나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공평하게요. 눈을 들기만 하면, 언제든 마주할 수 있도록. 누구나. 




정기 검진일마다 초음파를 통해 조금씩 성장하는 아기를 보는 게, 조금씩 강해지는 태동을 느끼는게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임산부라며 배려해주는 이웃의 손길들이 또한 다정했습니다. 여기저기 틈새로 다정한 햇살과 같은 기쁨이 새어 나오고 있었어요. 더이상 쉬운 불안에 머물 이유는 없습니다. 


37주 2일 제왕절개 일정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아기는 조금 더 일찍 세상에 나오고 싶었나봐요. 36주 5일, 4월 4일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갑작스레 이슬이 비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을 찾았고, 그 길로 바로 입원해 밤 10시 3분에 아기가 태어났어요. 2.96kg. 자궁근종 수술 이후로 두번째 수술장. 이번엔 혼자가 아닙니다. 하지 안하도 될 수술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와 아기가 함께 수술장엘 들어갔습니다. 감사하게도 교수님은 의료 파업으로 일이 몰려 있는 상황에서도 밤 늦게 수술을 진행해주셨습니다. 감사함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가 없네요. 


두번째 수술이어도 수술장은 결코 익숙하지 않습니다. 수술장의 차가운 공기와, 무미건조한 수술도구들, 정신없이 움직이는 스텝들. 마음을 다잡으려 애써도 두려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어요. 마취가 시작되고, 몸을 맡긴채 입술을 벌벌 떨고 있는데, 아기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큰 울음소리는 처음 들었어요. 아기 울음소리와 함께 저도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옵니다. 

'왔구나'


조치가 끝나고 아기를 드디어 보았습니다. 양수에 퉁퉁 불어 못생긴 감자 같은 저 아기가 방금 내 뱃속에서 나온 아기라니. 에움길을 돌고 돌아 드디어, 만났구나. 모든 것이 신기하고 믿겨지지가 않았습니다. 아기를 만난 후 신기하게 더 이상 수술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후처치를 하는데 잠까지 오더라고요. 


회복실로 가자마자 다리를 움직이려 애씁니다. 어서 노력해야 아기를 보러 갈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드디어 처음 아기를 만났습니다. 에움길로 돌아오더라도 꼭 오라고, 언제든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아기는 차근차근 제 곁으로 왔습니다. 서두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본인만의 발걸음으로 왔어요. 아기는 임신 내내 나를 둘러쌌던 불안의 안개가 걷히고 밝은 햇살과 같은 기쁨으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너는 기쁨이구나' 

'너는 햇살이구나'


물론 작고 여린 아기를 돌보며 새로운 불안과 마주합니다. 조리원 둘째날 산후우울증과 겹쳐 감당이 되지 않는 불안과 마주했습니다. 숨이 가빠오고, 잠을 자지 못했어요. 아기가 혹여 다칠까, 잘못될까.... 세상에 불안한 요소들은 차고 넘칩니다. 그러나 아기는 강합니다. 자신만의 생명력으로 지금도 힘차게 젖을 빨고, 발버둥을 칩니다. 불편할땐 조리원이 떠나가라 울어 제끼기도 하지요. 이 불안은 저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젠 압니다. 불안의 틈새로 햇살이 있다는 것을요. 그 틈새를 들여다보기만 하면, 쏟아지는 햇살과 마주할 거라는 걸요. 


조리원에 들어온 날, 2년 전 이별한 그 아이를 떠올립니다. 우리가 만났더라면 정말 기쁘고 행복했을 겁니다. 태어난 아기를 보며, 이별한 아기를 잠시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기에게 마음으로 속삭입니다. 

"호끼야, 동생을 보며 기뻐할 수록 너에게 더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엄마는 이제 너를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넣어둘게. 이제 엄마는 태어난 동생한테 집중할게. 문득 너가 떠오르겠지만, 흘려 보낼거야. 엄마가 너 있는 곳으로 가게되면, 그때 너를 다시 품어줄게. 못 다 품은 시간들까지 꾹꾹 담아서 다정하게 품어줄게. 우리 못다한 시간 마저 함께 보내자" 


살면서 예기치 못한 이별을 겪기도하고, 새로운 만남에 설레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나의 통제 아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그것은 불안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도 압니다. 불안할수록 우린 더 통제하려드니까요. 그래서 불안할수록 틈새를 찾으려합니다. 지금 나를 비추는 다정한 햇살, 길가에 핀 봄날의 꽃들, 연두 빛 새싹을 더 진하게 만드는 비, 이웃의 손길, 친구와의 대화, 맛있는 음식.... 그것은 작은 틈새에 불과하지만, 사실은 나를 살리는 전부였는지도 모릅니다. 


아기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 중입니다. 태어난지 2주 밖에 안됐는데, 벌써 얼굴이 달라집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아까운지 이제야 느낍니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왔다는 걸 절감합니다. 또한 새로운 불안과 마주할 것도요. 그래도, 틈새를 놓치지 않으려합니다. 지금, 여기의 나와 아기를 열린 마음으로 오롯이 느끼며 바라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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