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과 믿음

당신한테도 있을까

by 반짝반짝 민들레

아이들이 기관에 다닌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기관생활 3주 차부터 감기는 떨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일찌감치 아이들을 데리고 소아과에 다녀왔다.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받으려는데, 누가 우리 아이들 이름을 부르길래 고개를 들어 보니 아이들의 같은 반 아이 부모님이었다. 아.. 다행히도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 아이였다. 나도 반갑게 그 아이 이름을 불러 인사를 나누고, 얼른 그 묘하게 어색한 공간을 빠져나가고 싶어 딸들을 냉큼 웨건에 태워 병원을 빠져나가려는데 민망하게도 그 아이 아버님께서 병원 문을 활짝 열어주셨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머리를 조아리며 읊조리고 얼른 약국으로 피신했다. '아, 진짜 나 마주치기 민망한데..' 마음은 조마조마, 아이들은 웨건 안에서 서로 발로 찬다고 티격태격. 하츄핑이 그려진 비타민으로라도 좀 조용히 시켜야겠다 싶어서 얼른 티니핑 비타민을 결제하고 문을 나서려는데 결국...

마주치고 말아 버렸다.

"약 타러 오셨나 보다, 아하하.. 아가한테 이거 주세요" (웃는 얼굴로)

티니핑 비타민 친구 둘을 뜯어서 아이 엄마한테 건네고, "얘네는 똑같은 걸 안 주면 싸워요, 아하하하...." 매우 어색한 웃음을 흘린 채 그대로 밖으로 나가 아이들 싸움을 중재했다.

약이 다 됐을 것 같아 안으로 들어가서 계산을 하고 나서려는데, 아까 그 엄마가 아이들 웨건을 보더니 "저희 차 가지고 왔는데, 웨건 때문에 불편해서 못 타시겠죠...?" 하셨다.

네네, 당연하죠. 감사하게도 못 타죠..

우리 아이들 추울까 봐 걱정을 하시길래 "얘네는 여기 안에 있음 안 추워요, 제가 춥죠. 하하하..." 하고 또 멋쩍게 웃으며 호의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그 길로 냅다 웨건을 다른 골목길로 끌었다. 원래 약국 앞에서 약을 먹이고 출발하려고 했는데 그 분위기, 그 상황들이 난 너무 견디기가 어색해서 모르는 골목으로 들어가 아이들 약을 겨우 먹이고 어린이집으로 갔다.

그런데 또, 또... 또 만났다. 혹시 내가 아까 병원에서든, 약국에서든 실수한 게 있나.. 빠르게 생각해 보고 다시 미소를 지어보았다. 나에게 우산이 있냐고 하길래 쓰고 있던 캡모자를 손으로 툭툭 쳐 보이며 "이거 있어서 괜찮아요" (또 웃는 얼굴로) 하고 인사하고 얼른 웨건을 거마꾼처럼 뛰면서 몰았다.



아이들이 기관에 들어가기 전에 들던 고민들 중 하나가 '학부모들과의 관계'였다.

유난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피로감을 심하게 느껴서, 굳이 뭐 학부모 친목이 필요하겠냐 생각해 왔다.

언제부터 타인에게 피로감을 느꼈는가. 아주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초등학교 때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단체로 특정인 하나를 싫어하는 상황들.

좀 더 커서는, 누군가 말 한 번 잘못 옮겼다가 특정인이 아주 몹쓸 사람이 되어버리는 상황들.


난 인성(人聲) 음악을 극도로 싫어했다. 음악의 시작이 사람의 목소리부터라고 하지만, 내가 혼자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건 그 행위의 순간에 적어도 나 외의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음악을 들을 때 사람 목소리가 나에겐 필요 없었다. 그래서 작곡과 4년 동안 인성음악은 과제 때문에 쓴 가곡 딱 하나뿐이다. 가요도 좋아하지 않았다. 가수 목소리도 피곤하고, 가사도 귀찮았다.

이 모든 게 사람에게 일찌감치 질려버린 탓일 것이다. 그래도.. 이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좀 더 사회적인 인간이 되어야겠지. 내가 이렇게 멋대로 '인간'에 대해 가치판단 할 일도 아니고.


그 시작은 인성음악을 듣는 것에서부터.. 이제 정말 시작할 때가 되었다.

슈만의 <미르테의 꽃> 중 '헌정'. 가사를 여러 번 읽어보고 음악을 들으면 독일어를 알아듣지는 못해도, '사랑에 대한 소망과 믿음'이 선율과 반주를 통해 느껴진다.



나에게도 조만간 사람에 대한 소망과 믿음이 생겼으면.

당장은 지금 내 옆에 몸을 따스하게 웅크리며 자고 있는 회색 고양이에게 더 소망과 믿음이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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