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네 엄마

아이 대 아이로 만난 사이, 아쉬움.

by 반짝반짝 민들레

조리원에서 만났던 그 사람은 굉장히 우연하게도 나와 전공이 비슷하고, 사는 곳이 가까웠으며, 취향이 비슷했다. 쌍둥이를 낳고 조리원에서 모자동, 유축, 마사지 하는 것 말고는 무료했던 시기에 그 사람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조리원 퇴소를 하루 남기고 내 옆방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 나는 남편을 불러 깜깜한 밤에 쌍둥이를 집으로 옮겼다. 조리원 생활이 재미있어지려고 할 때 퇴소를 하게 되어서 아쉬웠는데 그 사람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 사람과 가까워지게 되었다. 동네에서 종종 만나고, 우리집에도 몇 번 초대해서 육아고충을 나누거나 낮술을 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조리원 동기이다보니 아이들 발달같은 걸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좋기는 했지만, 아이들이 커가면 커갈수록 그 사람은 공유가 아닌 비교를 자꾸 하게 되었다. 그 집 아기와 우리집 아기들은 성별도 다르고 그에 따른 기질이랄지 성향도 많이 다를텐데 구태여 본인 아이를 자꾸 우리집 아이들에 비교해서 스스로를 자꾸 옭아매는 모습이 나한테는 점점 더 견디기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쌍둥이 육아중이라 아이들 둘만으로도 하루가 정신이 없는데, 본인 아이에 대한 푸념, 개인적 불만들을 죽 늘어놓으며 점점 더 본인의 감정을 푸는 용도로 날 찾았다. 물론 그런 볼멘소리들은 친한 사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겠지만, 본인은 아이 하나고 나는 아이가 둘이라는 사실을 까먹는건지 애 키우기 힘들어 죽겠다고 할 때마다 정말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래도 아이 하나면 그 아이한테만 신경 쓰면 되지 않을까요? 저희는 아무래도 아이가 둘이라 둘 다 동시에 신경을 쓰기가 어렵거든요' 라고 조심스레 말 건네면, 우리집 아이들은 자기네 아이보다 다루기가 수월해서 본인이 더 힘들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아느냐고요...?) 그리고 불평의 마지막은 그 큰 집 청소, 빨래, 요리, 집 정리 등 할 것들이 산더미..라는 대답으로 항상 귀결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난 그 사람이랑 연락을 끊었다. 결정적 이유는 없고, 그냥 점점 쌓였던 게 폭발한 것 같다.

아이들 비교도 비교였지만, 은근히 날 무시하는 어투도 몇년간 상당히 거슬렸다. 과거에 이루었던 본인의 커리어, 본인의 '매우' 부유한 가정환경 등을 수시로 언급하며 무던히도 '아, 옛날이여'를 외쳐대고, 그 과거 안에서 현재의 나를 무시하는듯한 태도가 꾸준히 불만이었지만 굳이 얘기하지는 않았는데, 지내면서 보니 그냥 '나'라는 상대를 통해 본인의 만들어진 상상 속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고 싶어했던 부류였던 것 같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 내가 진심으로 그 사람의 안위를 걱정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보이더라.



그밖에도 너무 안 맞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이제 와 투덜거리면 뭐하나, 싶으니까 이쯤 해둬야겠다.



애초에 그 사람과 '누구엄마 대 누구엄마'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났으면 좀 더 나았을까... 그랬다면 아이들 가지고 비교하는 일 없이 그냥 내 얘기 꾸밈없이 해가면서 소소하게 즐거움을 찾았으려나. '아휴, 음악하고 싶은데 애들이 이렇게 어리니 뭘 하기가 그래... 나중에 작은 교습소 차려서 아이들 가르치고 싶네..' 라며 오늘보다, 1년, 3년 후보다 훨씬 나아질 미래를 소박하게 꿈꿨으려나.



이만큼 나이를 먹어도 인간은 어렵다,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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