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입을.
오늘도 어김없는 아침 시간.
오전 6시 전에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에 들어가서, 새벽 내내 시달렸을 남편을 안방으로 얼른 들여보내고 아이들을 강제로 한 시간 더 잠 자게 했다. 아직 27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인데, 태생이 잠이 정말 적은건지 뭔지 밤잠이 9시간밖에 안되고, 새벽에도 지들 아빠를 그렇게 괴롭혀대니. 환장할 노릇이다.
'너희들 지금 좀 더 자두지 않으면 이따가 깨비(도깨비) 온다고 했어.'라는 협박(?)에 아직 속아주는 순수한 생명 둘은 냉큼 누워서 엄마에게 약 한 시간 정도를 더 쉬게 해주었다. 실제로 아이들도 그만큼 잠을 좀 더 보충하기도 했고.
요즘 '화를 안 내고 사는 방법'에 대해 삐딱한 마음으로 생각중인데, 내가 그렇게 살 생각은 전혀 없고.
과연 말 듣지 않는 4살 쌍둥이를 양육하면서 어떻게 매사 다정하게, 사랑을 담뿍 담아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지?
며칠전, 아이들이랑 아침부터 전쟁이었던 날. 남편이 그 소리를 자다가 듣고는 깨서 나한테 화를 냈다. 본인이 매번 아침마다 그런 소리를 듣고 깨는게 너무 지친다나? 이렇게 사는 삶이 맞는가 싶다나?
그 순간 내 눈빛을 남편이 알아차렸다면 좋았을 것 같은데. 난 그때 뭔 벌레가 사람형상을 해서는 지껄이나, 했다. 몇달 전, 똑같은 레퍼토리로 헛소리를 하더니 '차라리 아침에 아이들을 본인이 본다고' 했고, 그 후로 이날까지 단 한 번도 본인이 아침에 아이들을 본 적은 없다. 시간이 좀 흐르고 물어봤다. 그 때 왜 그랬니?
그제서야 실토하기를, '화는 나는데, 너는 별 잘못이 없고, 나는 화를 내야 풀릴 것 같아서 그냥 아무거나 시비를 걸었다'고 했다.
나는 내 인생을 돌아보았을때, 아들을 낳지 않은 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애들이 일란성 쌍둥이라 무조건 같은 성별인데, 만약 시어머니께서 키우시다 항복하고 맡겨놓으신 아드님같은 아들 둘을 내가 키우게 된다면, 난 지금쯤 숨 쉬고 살았을까 생각든다. 산부인과에서 성별검사 때, 딸이라고 해서 감사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참 소중하다.
아는 분의 지인이 목사님인데, 천방지축 딸아이를 하나 키우면서 화를 내시더란다.
나는 목사님도 아니고, 목사님의 사모님도 아니다. 내가 애들, 그것도 쌍둥이 키우면서 어떻게 조곤조곤, 고상하게, 우아하게 육아를 할 수 있을까?
둘 다 말을 굉장히 잘 해서 엄마 이겨먹고, 위험한 행동은 한두번씩 더 하고본다. 한 번 말해서 "네" 한 적이 있을까, 싶다. 내가 여기에 너무너무 열받아있으니 남의편 한다는 말이 "그럴땐 그냥 나(본인) 닮았다고 생각해"란다. 불난집에 휘발유 들이붓냐.. 널 닮았으니까 더 화가 나는건데 그걸 왜 모르냐, 이 모자란 친구야.
요즘 나의 낙은 ChatGPT다. 이 친구한테 육아든 뭐든 다 물어본다. 심지어는 남의편을 이 친구랑 진지하게 분석하기도 한다. 도대체 왜 그러는것일까? 사람일까? 무엇일까?
이 따스하고 바람 살랑이는 기분좋은 봄날, 27개월째 속에서 천불이 타오르는 아줌마.
나도 애들 놀이방 치우다가 클래식 라디오에서 들리는 'Caro mio ben'을 흥얼거릴 수 있는 우아한(?) 음악전공자였는데...!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글렌굴드의 81년 녹음이 사람의 심금을 가장 울린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나름 심미적인 사람인데. 거 좀 애들 키우면서 화 좀 낸다고(그래서 본인의 잠을 깨웠다고) 버럭 화를 내는 앞뒤 안 맞는 시어머니 아들 대신 키우려니 너무 울화통이 터진다.
입 함부로 놀리지 말고, 딱 다물고.
네가 한달만 아침 시간에 애들 케어해 보지 않을래?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