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설날

by 반짝반짝 민들레

사흘 전 38개월이 된 우리집 쌍둥이들에게는 이번 설이 네 번째 맞는 설이다. 지난 토요일 연휴 첫날부터 나는 아이들 생떼에 며칠의 피로감까지 겹쳐 제대로 폭발을 했고, 아이들에게 "엄마도 화가 날 수 있어.", "내일은 오늘처럼 그러면 안 돼."라는 위로를 듣고 나서 자중하는 마음으로 일요일과 월요일을 보냈다. 그리고 화요일 설 당일.

"아이들이 7시면 깨니까 엄청 일찍와도 상관없다."는 아드님의 계량 없는듯한 발언에 정말로 엄청 일찍 오신 시어머님. 어머님 아드님이 어머님을 모시러 간 사이에 나는 냉큼 청소기를 돌리고 냐냐에게 한복을 입자고 했다. 요즘 부쩍 부끄러운 게 많은 냐냐는 한복이 불편하다며 입기 싫다고 했고, 어머님이 오시면 아이들의 한복 입은 귀여운 모습을 짠, 하고 보여드리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해 어쩐지 조금은 아쉬운 설날 아침의 환영인사를 드리고 말았다.

한복을 입으면 너무 귀엽긴 하지만 "한복은 너무 불편해" 하는 딸에게 한복도 안 입은 엄마가 "아니야, 우리 한복이 얼마나 예쁘고 편한데.." 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대신 세배라도 제대로 드리게 해야겠어서 어린이집에서 원장님께 세배 드린대로 할머니께도 세배를 드리라고 했다. 아이들은 역시나 장난만 쳤다. 몇 번 시키다가 어머님도 그냥 봉투를 아이들에게 주려고 하셨다. 그 때 내가 아이들을 혼내니 어머님이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고 하셨다.


'그런 걸 가지고'


아까 어머님이 오신 직후에 아이들이 버릇없이 내게 행동했을 때 엄하게 혼을 내고 있으니 어머님이 안절부절 못하시며 혼나고 있는 애 이름을 다급하게 부르셨다. 다행히 남편이 "어머니, 지금 훈육 안 하면 안 돼. 그냥 둬." 라고 해줘서 난 끝까지 훈육을 할 수 있었다.


연휴 중 이틀은 아이들을 웨건에 태우고 밤산책을 다녔다. 호수도 쇼핑몰도 조명이 너무 예뻐서 아이들이 좋아했다. 더군다나 그 좋아하는 롤리팝과 과자를 웨건 안에서 먹으며 구경하니 이건 그냥 '키즈 서울 투어'나 다름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했다.


아까는 어머님을 역까지 모셔다 드리고 냐냐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물어보았다.

"냐냐야, 웨건 타는 게 좋아, 이렇게 길 걷는 게 좋아?"

"이렇게 걷는 게 좋아. 왜냐하면 웨건 타면 엄마를 이렇게 가까이서 못 보잖아. 여기 자동차들(주차되어있는)도 가까이서 못 보고."

살아있는 멘트. 역시 입이 살아있는 냐냐답다.


아까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가기 전에 야야 양치를 내가 도와주고 야야와 둘이 먼저 아이들 방에 들어와서 부둥켜 안고 이야기하고 노래도 불렀다. 그러다가 갑자기 야야가 벌떡 일어나서는 말했다.

"엄마, 내가 엄청 많이 사랑해!"

입이 늘 살아있는 냐냐와 다르게 야야는 이런 가슴 벅찬 고백을 자주 하지는 않는다. 행동으로 사근함을 보여주는 야야이기에 그 '엄청 많이 사랑해'라는 멘트가 확 와닿았다.

조금 후에 나는 야야에게 내 고민을 말했다.

"엄마는 책을 아주 많이 읽고싶은데... 어떡하지?"

"그럼 책을 아주 많~이 읽으면 되지!"

"엄마는 너희들이랑 같이 어린이집에 가서 체육놀이도 하고 점심도 같이 먹고 낮잠도 같이 자고싶어. 어떡하지?"

"그럼 우리랑 같이 어린이집 가자!"

"아니.. 그런데 엄마가 어린이집 갔는데 너희 친구들이 엄마 보고 저 아줌마 왜 있냐고 화내면 어떡해...?"

그랬더니 사랑스러운 야야의 대답은..

"그럼... 어린이집 같이 가면 내가 친구들이 엄마 못 보게 숨겨줄게!"

정말 감동이었다. 고민도 하지 않고 내놓은 답변이라 더 고마웠다. 날 숨겨준다니.. 날 지켜준다니...

왠지 다른 고민도 말하고 싶어졌다.

"엄마는 초코가 너무 좋아서 하루에 한 개 말고 열 개 먹고 싶은데.. 어떡하지?"

"그러면 오늘도 먹고, 내일도 먹고, 그 다음에도 먹고, 그 다음에도 먹고... 그러면 되지!"

"하나씩 먹으라는 거야?"

"응."

"아니, 하나 말고.. 열 개 말이야. 엄마는 열 개 먹고싶어."

그러자 야야의 대답.

"그러면 어금니 벌레가 이빨을 갉아먹고 말거야. 그러면 치과 가서 치료 받아야 돼." (내가 늘 아이들에게 양치 안 하려고 할 때마다 해주는 말)

"으악, 엄마 치과 무서운데? 엄마랑 같이 가서 손 꼭 잡아줄거야?"

"응, 당연하지. 내가 무섭지 말라고 손 꼭 잡아줄게."

야야는 정말이지 너무 사랑스럽다..


'그런 걸 가지고'

훈육을 요즘 좀 눈물 쏙 빠지게 하는 편이다.

남이 볼 땐 정말 '그런 걸 가지고' 훈육을 하나 싶지만, 그런 게 쌓이고 쌓이면 전혀 그런 게 아니게 되기 때문에 지금 하지 않으면 너무나 많은 걸 놓치고 말 거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아이들은... 이미 앞에서처럼 어른의 말을 하고, 이해한다. 나는 아이들을 인간적으로 존중하기 때문에 훈육한다.


네 번째 설날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매년의 설이 다 다르다. 커가는 아이들에게 무한 감사함을 느낀다.

크느라 이렇게 고생인 애들에게 내일은 가능하다면 아주 맛있는 마카롱을 하나씩 선물해 주려고 한다. 그림책으로 마카롱의 존재를 알게 된 아이들이 실물 마카롱을 손에 쥐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눈에 선하면서도 기대된다.


나에게는 아이들의 매일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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