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의 4개월은 어땠더라..

by 반짝반짝 민들레

오늘 아침 등원길에 하늘에 먹구름을 보고 냐냐가 말했다.

"엄마, 나는 먹구름이 좋아요!"

"응? 왜?"

그러자 나로서는 생각하지도 못한 답변을 내놓았다.

"먹구름이 비를 내리면 꽃이 빗물을 꿀꺽꿀꺽 먹고 분홍색 꽃이 되잖아요."

옆에서 듣고 있던 야야도 한 마디 거들었다.

"엄마, 나는 하얀 구름이 좋아요!"

"하얀 구름이 왜 좋아?"

"하얀 구름이 있으면 날씨가 좋으니까 신나게 뛰어놀 수 있잖아요."


아이들에게 정말 많이 배운다. 날씨가 너무 좋으면 '눈이 부시다'며 불평하고, 날씨가 흐리면 '우산 안 가지고 나왔는데 귀찮네'라고 생각부터 하는 내가 아이들의 저런 기특한 대답을 들으니 대견하고 또 반성도 됐다.


아이들을 키운다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쌍둥이들이랑 같이 밖에 나가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아휴, 하나 키우기도 힘든데 둘을 키우느라 고생이네."와 같은 어르신들의 격려(?)이다. 나는 하나만 키워보지 않아서 애 하나의 육아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쌍둥이가 힘든 건 너무 잘 알고 있다.

신생아때부터 잠이 없는 우리집 둥이들은 '100일의 기적'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하게 시간마다 울며 나와 애들아빠를 고생시켰다. 온 가족 모두가 너무 못 자고 힘드니 5개월부터 수면교육 컨설팅도 시도했지만 그게 5개월 가까이 지속될 줄은 정말 몰랐다. 아이들을 둘 다 재워놓고 거실에 앉아 숨 죽인채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고 있다가도 한 아기가 울면 다른 한 아기도 동시에 울고, 나는 또 가서 쪽쪽이를 물리든 토닥토닥을 하든 다 안아주든 무슨 수라도 써야 했다. 그러다 어느날은 내 몸이 너무 힘들어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냥 잠이 들었는데 눈 떠보니 애들아빠와 교대시간인 새벽이었다. (쌍둥이는 교대를 하지 않으면 양육자 둘 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잘 시간이 없어 매우 고통스럽다) 그때 깨달았던 사실은 '아, 내가 너무 예민하고 기민하게 아이들을 돌보려 하는구나. 그냥 좀 내려놔야겠다.' ... 그 뒤로 아이들이 잠든 이후의 시간이 숨 막힐 정도로 두렵거나 하진 않았다. 애들아빠 직업 특성상 11시 퇴근이 빈번해서 아이들 재운 뒤 11시 전후까지 숨 죽이고 긴장을 해대는 바람에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마음을 달리 먹은 뒤로는 그 스트레스 지수가 크게 낮아진 것이다.


아이들을 27개월까지 가정보육 하면서도 삼시세끼를 챙겨 먹이는 일이나 그밖의 케어들에 참 손이 많이 갔다. 당연히 내 시간은 전혀 없다시피 했지만,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이 억울해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는 건 육퇴 후 캔맥주 까는 소리를 즐기는 것 정도?


아이를 양육하게 되면 나라는 하드웨어 속 소프트웨어가 전부 다 뒤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전과 같은 차분함으로 아이들을 보기가 매우 힘들어지고, 성격이 느긋했어도 어느샌가 괴팍해진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래도 아이들 웃는 얼굴 한 번 보며 또 그 치솟았던 분노가 가라앉는다. 아주 작은 아이들을 키우기가 그렇게 힘들고 고됨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들이 조금 천천히 자라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얼마 전 온 세상을 경악하게 했던 4개월 영아 학대 살인사건에 대한 짜투리 영상을 보다가, 홈캠 속 아가의 울음소리를 더 듣지 못하고 그냥 꺼버렸다. 가슴이 너무 두근거리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난생 처음 듣는 울음소리였다. 쌍둥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정말 많이 들었지만 단연코 절대 들어보지 못한 울음소리였다.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명치가 콱 막힌 듯 갑갑해지고 편두통도 왔다. 정말 토할 것 같았다.

조금 진정이 된 뒤, 아이들의 4개월 시절 사진과 동영상들을 찾아보았다. 알감자같은 생김새에 방긋방긋 지어보는 눈웃음, 그리고 양육자와 소통하고 싶어하는 옹알이... 모든것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 시기, 나는 아이들하고 어떻게 지냈나. 생각해 보았다.

아이들이 둘 다 울어서 너무 힘들 땐, "너희들 진짜 왜 그렇게 우는거야...!" 라고 혼자 화내보았다가 아이들이 그치질 않아 나까지 엉엉 울게되고.. 그게 일상이었던 것 같다. 둘 다 울 땐 절대 둘 다 달래지 못하고 더 우는 아기부터 달래다가, 얘가 좀 진정되면 여전히 엄청 울고 있는 아기를 달랜다. 이게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된다. 왜냐면 좀 달래진 아이를 누이면 또 우니까.

아무튼 아이들이 아주 아기였을 땐 이런 점들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둘 다 목욕물 길러 목욕시키고 양손으로 수유하는 것쯤은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사건 피의자를 생각하며

그냥 좀 참지. 뭐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그런 패악질이 절대 정당화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뭐가 됐든 그냥 좀 참지 그랬냐. 싶었다.

어쨌든, 바라건대 무기징역을 선고받길.


38개월인 아이들은 요즘 비글미가 절정을 찍고 있다. 마치 엄마의 말을 귓속 어딘가에서 뮤트로 걸러내고 있는건지 정말 말을 안 듣는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아이들이 나보다 더 무한한 것들을 많이 담고 있으며, 아이들에게 배울 점이 무척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끊임없이 배우기 위해 이 아이들을 낳은 것 같다.


"나는 엄마가 좋아요. 엄마는 우리를 낳아줬잖아요."

며칠 전부터 냐냐는 이 얘기를 하루에 한 번씩은 꼭 한다.

그 의미를 잘 알고 얘기하나,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딸아이의 음성으로 매일 직접 들으면 그 순간마다 뭉클해진다.


정말 진심으로, 세상 모든 아이들이 사랑만 받으며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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