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앤과 다이애나

친구와 가족 사이

by 반짝반짝 민들레

저번주였던가.


아이들 원 담임선생님께서 냐냐가 야야의 다른 친구들과의 놀이 활동을 방해하려 한다는 말씀을 주셨다. 그때마다 야야는 냐냐에게 양보를 하는데, 그게 야야가 정말 원해서 하는 양보는 아닌 것 같다는 것이었다.

마침 나도 담임선생님께 비슷한 고민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우연찮게 먼저 입을 떼주셔서 감사했다. 나로서는 그저 선생님께 "냐냐가 또 야야에게 그러거든 야야 먼저 달래주시고 냐냐에게는 타임아웃 해주세요."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원 때 그렇게 꽤 긴 시간 얘기를 나누고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아이들은 성격이 정반대다. 일란성인데 어느 하나 닮은 구석이 없는 성격이다. 어디서 주워들은 바로는 일란성은 성격이 상호보완적이라던데, 그래서인지 아무튼 둘은 너무나 다르다.

예를 들자면 야야는 주제를 던지면 대화내용이 튈 때가 거의 없는데 반해 냐냐는 대화가 마구마구 파생된다. 야야는 차분하고 낯을 조금 가리며, 냐냐는 쾌활하고 호불호가 확실하다. 어디에 비유하자면 야야는 다이애나, 냐냐는 빨강머리앤 이라고 하는 게 딱 맞을 것 같다.

작품 속에서의 빨강머리앤은 정말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이지만 나는 마릴라 아주머니의 입장으로서 늘 "아이고 두야.."를 나즈막히 읊으며 산다. 어찌나 감정표현이 크고 확실한지, 그 기세에 눌려 야야가 늘 져주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사실 요즘 야야의 시도때도 없는 양보 때문에 이걸 어떻게 밸런스 조절을 해야하나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내가 먼저 건네봐야지, 했던 고민거리가 되려 담임선생님 입에서 먼저 나오니 당황스럽기도 했고, 냐냐를 좀 혼내야겠다는 약도 바짝 올라왔다. 그래서 집에 가는길에 냐냐에게 물었다.

"너, 정말 야야 노는 거 못 가지고 놀게 하고 다른 친구들이랑 놀고 있을 때 방해하고 그랬어?"

"아니야, 나 안 그랬어. 아니야... 아니야....."

냐냐는 집에 가는 도중부터 도착한 직후까지 계속 울었다.

"너, 울어도 소용없어."

이 날은 동글초코(=킨더조이)를 먹기로 약속한 날이었는데 화가 나서 주기 싫었다. 그래서 나도 쪼잔하고 치사하게 먹을 거 가지고 애를 잡도리 했다.

"엄마는 너처럼 다른 친구들 방해하는 아이한테는 맛있는 거 못 줘. 네가 지금 울기만 할 게 아니라 야야한테 뭐라고 해야 해? 계속 울거면 엄마 귀 아프니까 방에 들어가서 울고 나와."

이렇게 말하는데 야야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리고 하는 말, "냐냐 그만 혼내면 안돼요?"

응, 안 돼.


냐냐는 한참을 울다가 뚝 멈추고 야야에게 사과했다. 그것이 진정성 있든 말든 그 순간엔 나도 냐냐가 야야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나보다. 그 상황을 다 보고 나서야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주었다.


야야에게 늘 말한다. "야야가 양보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야야 마음은 어떤데? 야야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돼.", "양보를 많이 한다고 해서 착한 건 아니야. 야야가 계속 양보만 하면 냐냐는 멋진 친구가 될 수 없어."

야야는 그러면 안된다며, 냐냐도 멋진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야야 입장에서 불편한 상황(냐냐가 짜증내거나 화낼 때)이 오면 그걸 피하기 위해 계속 양보를 먼저 하는 것 같았다. 내 어릴적 성격이랑 너무 똑같아서 더 조바심이 났다.


그 다음날, 아이들이 교실에서 또 분란(?)이 있었냐고 여쭤봤더니 또 그랬단다. 진짜 냐냐는 왜 그럴까. 너무 고민되고 너무 화가 났다. 그리고 집에서도 계속 야야와 냐냐의 놀이와 대화에 예민해 질 수밖에 없었다. 혹시 또 놀이방해를 놓진 않는지, 야야의 말을 뚝 끊어버리는 건 아닌지.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냐냐는 요즘 가족 그리는 걸 좋아하는데, 그날도 가족을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가족이 좋아. 엄마, 아빠, 야야, 냐냐 그리고 고양이까지 이렇게 우리 가족만 좋아. 우리 가족이 아닌 건 싫어."

이 얘길 듣자마자 생각들었다. 아, 어쩌면 냐냐는 야야가 다른 친구들이랑 노는 게 싫을수도 있겠구나.


냐냐에게 물어보았다.

"냐냐는 어린이집에서 누구랑 제일 많이 놀아?"

야야랑 제일 많이 논단다.

"그럼 야야가 다른 친구들이랑 노는 게 싫어?"

그렇단다.

"그런데 야야도 냐냐도 다른 친구들이랑 놀아야 또 다른 재밌는 놀이를 할 수 있는거야."

"그렇지만 다른 친구들은 우리 가족이 아니잖아요. 나는 우리 가족만 좋단 말이에요."

냐냐는 어째서 이토록 가족주의(?)에 빠졌을까.


아무튼 그 뒤로 나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이야기를 지어서 해주기도 하고, 등원길엔 지침서 읊듯이 계속 말했다.

야야도 다른 친구들이랑 놀고 싶을 수 있어.

냐냐도 다른 친구들이랑 같이 놀면 더 재밌을거야.

다른 친구가 말하고 있을 땐 끝까지 다 듣고 냐냐 얘기 그 다음에 하는거야.

"그런데 친구가 말을 너무 많이 하면요?"

...응? 네 얘길 하는거니?

"그렇다고 해도 끝까지 다 듣고 말하는거야."

며칠동안 등원시간마다 이런 잔소리를 계속 늘어놓았다.

봄이 되려는지 초록풀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는데 그 좋은 이야기거리를 두고 말이다.


그렇게 며칠 바짝 밀어붙이다 정말로 봄이 성큼 다가왔길래 아이들이랑 전처럼 공원을 감상하며 등원길을 걸었다. 다만 한 아이가 이야기 하고 있을 땐 최대한 혼자 죽 늘어놓게 시간을 주었다. 옆 아이가 끼어들려고 하면 "지금 친구 말하고 있으니까 다 듣고 말하자." 라고 해주었다. 밖에서도, 집에서도 아이들 이야기에 더 귀 기울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를때에도 일단은 그냥 다 들었다.


요즘은 원에서 그런 행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선생님께서도 야야의 입장에서 야야가 하고 싶은 걸 먼저 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냐냐도 스스로 참을 수 있게 된 것 같아 보였다. 더 지켜봐야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아이들이 기질도 성격도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아이들로 맞추어 키울 생각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힘의 밸런스는 맞았으면 싶었다.

아이 하나가 알아서 양보 해주면 편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렇게 굳어진 성격으로 인해 힘들어지는 건 아이들 본인이기 때문에 지금 개입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판단했다.


뭐든 그냥 못 넘어가는 어미라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살면서 이토록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또 있었던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을 보고있으면 난 그동안 정말 마음대로 하고 살았구나, 호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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