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저리 타임(injury time)

직장생활

by 작은청지기

정년퇴직을 앞두고 인생후반전을 고민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훌쩍 지났다.


1년 전 퇴직을 앞두고 업무를 정리하고 있던 그때 퇴직 한 달 전 인사담당자는 계약직으로 1년 더 일해 줄 것을 제안했다. 회사의 인사정책을 고려할 때 당연히 퇴직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이러한 제안은 의외였다. 나의 업무 특성상 대체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았고, 후임이 없던 터라 나의 퇴직이 남아 있는 직원들에게 일정기간 많은 불편이 예상되는 상황이긴 했으나 일반직 근로자의 정년퇴직 후 재계약하는 사례가 많지 않아 내가 그 대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출퇴근하느라 출근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회사 사무실에 의료용 산소기를 설치하고 캐뮬러를 통해 근무시간 중 산소를 공급받으며 일해야 하고, 외근 근무에서 일체 열외를 해야 하는 중증장애인을 정년퇴직 후에도 계약직으로 재고용하겠다고 한 것은 내가 유능해서라기보다는 지난 33년간 성실히 일해온 결과이며,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지난 1년 무척이나 바빴다. 많은 프로젝트가 있었고, 조직 내에서도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시간의 여유가 없었다기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올해 근로계약 만료일을 앞두고 회사는 다시 1년 재계약을 제안했다. 회사가 올해 비즈니스 측면에서 많은 변화를 시도하게 되고 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가 계획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직원들이 많이 줄어든 상황에서 축적된 경험을 가진 지원팀의 공백이 비즈니스 운영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 같다.


지난주 연봉 재계약을 사인했다. 하나님께서 다시 1년을 더 일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한 뜻이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난 1년은 1년 더 일하게 된 것이 감사해서 주위를 돌아볼 여유 없이 그냥 일만 열심히 했다. 그러나 다시 1년 더 기회를 얻다 보니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약한 나에게 왜 계속 일하게 하실까?"


얼마 전 새로 부임한 대표가 크리스천 리더들에게 메일을 보내왔다. 우리 사업부를 위한 기도제목이었다. 직원 중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 분들의 기도제목이 공유되었고, 사업부가 성장하여 직원들 모두가 골고루 혜택을 누리는 한 해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제목이었다.


나는 이 메일을 받는 순간 울컥했다. '내가 한 해 더 일하게 하신 뜻이 여기에 있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 내에서 회복'을 위한 마중물이 되길 원하시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일에 묻혀 하나님의 뜻을 잊고 지냈고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동료들의 아픔을 외면하며 지냈던 1년에 대한 반성이 밀려왔다.


나는 용기를 내어 대표에게 답장을 했다.


영적으로 황폐되어 가는 회사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리더가 있는 사업부가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는 계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 시간에는 장애인콜택시 배차가 어려워 참석하기 어렵지만
항상 대표님의 건강과 회사의 육적, 영적 회복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제목을 직원들과 공유하는
대표님의 믿음과 용기에 감동하여
저도 용기를 내어 제 마음을 전달해 봅니다.

가는 길이 힘들고 지칠 수 있겠지만
그 길이 옳고 보람 있는 길이라면 힘을 내십시오.
미약하지만 마음으로 업무로 기도로 돕겠습니다.


정년퇴직 후 1년, 그리고 또 1년은 '법적으로 보장된 경제적 활동시간'이 모두 종료되고 또 다른 삶이 시작되기 전 나에게 주어진 인저리 타임(injury time)이라 생각한다.


33년간 쉼 없이 뛰었기에 온몸은 상처 투성이가 되었다.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다. 시작부터 불리한 조건으로 경기장에 투입됐으니 풀타임으로 뛴 것만 해도 대견하다. 하지만 심판은 아직 종료 휘슬을 불지 않았다. 잔디밭에 그냥 드러눕고 싶은 심정이지만 아직은 그때가 아니다.


추가로 주어진 짧은 시간, 하지만 이 짧은 시간은 승패가 좌우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며 집중력을 요하는 시간이다. 성실한 근로자로서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후회 없이 마무리하는 추가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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