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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청지기 May 19. 2023

흰 스타킹을 사 오신 어머니

수학여행(5)




어머니는 마음이 급해지셨다.


아들이 처음으로 당신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여행을 간다니 말이다. 

좋아하는 아들 앞에서 내색은 못하고 걱정이 한가득인 얼굴이셨다.


어느 날 어머니는 여행 중 입을 옷을 사 오셨다.

그중에는 흰 스타킹도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기본 복장은 반바지이다. 나는 지금껏 아무리 더워도 반바지를 입어본 적이 없다. 어릴 때 무릎 수술을 한 이후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어머니는 무릎 흉터를 가리기 위해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하얀 스타킹을 사 오셨다.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고 멀쩡한 곳이 없는 나에게 옷을 벗기고 새 옷을 입히면서 어머니의 걱정 섞인 한숨이 옅게 새어 나왔다. 멀쩡한 사람도 집 떠나면 고생인데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약하디 약한 아들이 처음 세상 밖으로 나간다는데 어찌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반바지에 스타킹을 신으니 나무젓가락 같던 내 두 다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금 같으면 긴 바지를 입겠다고 했으련만 그때는 예외가 허용되지 않는 시절이라 창피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도 신지 않는 무릎 위로 올라오는 흰 스타킹... 이때 이후로 단 한 번도 신지 않았다.



나는 간절한 소원이 생겼다. 


내년이면 중학교 진학이다. 당시 남중은 여름 교복이 반바지였다. 내가 죽도록 싫어하는 반바지... 3년을 입고 다녀야 하게 생겼다.  수학여행 2박 3일이 문제가 아니다. 매년 여름마다 입어야 하는 반바지는 사춘기 시절 나에게는 또 다른 수치였다.


누가 이런 것을 걱정거리라고 이해할까?


어느 누구에게도 나의 고민을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혼자 간절하게 기도했다. 


"중학교 여름 교복 반바지가 없어지게 해 주세요."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셨나 보다.  


신기하게도 1978년 여름부터 남중의 교복에서 반바지가 긴바지로 바뀌었다. 성징이 뚜렷해지는 중학생들의 다리에 난 시꺼먼 털이 보기 흉하다고 반바지를 없앴다고 한다. 어찌 되었건 당시에 나는 얼마나 감격하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누구에게는 사소한 문제가 누구에게는 간절히 기도할 만큼 절실한 것일 수 있다.





1977년 5월 17일 (화) 맑음


오늘 어머니께서 여행 떠날 때 입을 내 옷을 손수 사가지고 오셨다. 


흰 스타킹은 내가 팬티 달린 것을 안 입는다고 했기 때문에 제일 길이가 긴 것을 사 가지고 오셨다. 왜냐하면 세 살 때 무릎을 수술한 흉터가 있기 때문에 반바지를 입게 되면 꼭 무릎 위까지 오는 스타킹을 신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팬티까지 있는 스타킹만은 신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 스타일을 끌어올려 무릎의 흉터를 아슬아슬하게 가릴 수 있었다. 


어머니는 이 광경을 보시고는 무척 언짢으신 모양이었다. 


수술하여서는 안 되는 자리르 수술한 지난날의 의사의 판단 착오, 이것 때문에 지금까지 보기 흉한 불구자로서 지내야 했다는 것을 돌이켜 생각해 볼 때 너무 지난날의 후회되는 것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참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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