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청지기 May 20. 2023

어머니 얼굴에 근심이 한가득

수학여행(6)




드디어 내일이다. 

나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부모를 떠난 여행을 시작하는 날이다.


수학여행 가는 것에 웬 호들갑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찼다.

순례자의 길을 떠나는 사람처럼 이발도 하고 목욕도 했다.


나의 흥분한 마음과는 달리 어머니는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아픈 아들을 남의 손에 맡기려니 마음이 편치 않으신 듯하다. 어머니는 내게 다가오셔서 용돈을 주셨다. 집안 형편으로 보면 꽤 많이 주셨다. 택시비도 내고 친구들 맛있는 것도 사 주라고 배려해 주신 것 같다.


"많이 걸어야 하면 너무 무리하지 말고 차에서 기다리라. 

 택시 많이 타면 돈도 많이 들고

 네가 따라가면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많이 힘들 끼다."


어머니는 나에게 다시 한번 신신당부하셨다.



나는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말을 수 없이 들었다.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나는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폐를 끼칠 일이 없다. 가족들이 외출을 할 때도 나는 집에 남겠다고 했다. 해수욕장을 갈 때도 그냥 집에 있겠다고 했다. 나는 늘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 참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을 말하는 순간 나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이 힘들어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50년 넘게 살아오면서 스스로 누구에게 도와달라고 한 기억이 거의 없다. 내가 할 수 없으면 하지 않거나 할 수 있는 것만 했다.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상대방에게 폐를 끼쳤다면 유난스럽게 미안해했다. 


회사에서 점심식사 시간에 혼자 생식을 먹게 된 것도 다른 직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아내와 아들에게 조차 도와 달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쉽지 않다. 높은 곳에 꽂혀 있는 책을 꺼낼 때도 도와달라고 하기보다 의자를 옮겨 놓고 내가 꺼내려고 한다. 


허리 굽히는 것이 힘들어 발톱 깎기가 힘에 버겁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눈에 보이지 않는 발톱을 느낌으로 깎다가 상처를 입기도 한다. 등이 가려워도 옆에 있는 아내에게 긁어 달라고 하지 않으려고 내 방에는 효자손이 2개나 있다. 


여행을 가면 나는 최대한 짐을 줄인다. 이번에 고향을 다녀올 때도 여벌의 옷은 가벼운 칠부바지 1개만 챙겼다. 내가 준비한 모든 짐은 아내가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보지만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많다. 


회사에서 자리 배치를 다시 하면 직원들이 내 짐을 모두 옮겨 준다. 내가 사용하던 PC가 고장이 나면 직원들이 지하 컴퓨터서비스실까지 옮겨다 준다. 집안 가구를 옮기거나 큰 짐을 옮길 때는 늘 아내의 몫이었다. 옆에 가서 도우는 시늉이라도 하면 아내는 "다치니까 저 쪽으로 가 있어."라고 했다.


스스로의 힘 만으로 지금의 자리에 이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군가의 헌신과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폐를 끼치지 않고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서로 돕고 사는 삶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나도 이제는 조금씩 곁의 사람들에게 기대기도 하고 도와 달라고도 하며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1977년 5월 20일 (금) 맑음


이제 여행 가는 날이 내일로 박두했다.


오늘 나는 이발도 하고 목욕도 깨끗이 했다. 


스타킹도 준비하고 여행 준비를 모두 끝내니까 괜스레 마음이 들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용돈을 주시고는 "먼 곳은 차에서 기다려라. 택시 왕복하면 돈도 너무 들 것이고 친구나 선생님께 폐만 끼치게 되기 때문이야" 하시며 억지로 말씀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말씀 속에서 

'나는  지체부자유 어린이다. 아니 쉽게 말해서 불구자라는 것'을 느꼈다. 


왜 나는 남에게 폐만 끼치며 살아야 할까.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여행 가서나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날이 없었다.


정말 이번 이 여행은 고적지를 보는 데에만 그치는 일 없이 나의 독립성을 키우고 자립정신을 가지며 산 지식을 배우는 가장 좋은 기회인 것 같다.



이전 05화 흰 스타킹을 사 오신 어머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