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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청지기 Jul 08. 2023

승진 탈락 감사제목 5가지

직장생활




오후 3시경 갑자기 경영자 미팅 약속이 잡혔다. 최종 승진 후 7년 동안 승진 심사에 참여하지 않다가 이번에 경영자의 강권으로 승진후보에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갑자기 호출한 미팅에 좋지 못한 소식을 전하기 위함일 거란 예상을 하고 약속 장소로 올라갔다.


"죄송해요. 이번에 승진 탈락 소식을 받았어요.

내년 3월을 목표로 다시 준비해 봅시다.

제가 있는 동안 꼭 승진하셔야죠."


경영자는 몇 남지 않은 차수 다른 입사 동기다. 그때 시작했던 직원 중 아직까지 남아있는 직원이 몇 되지 않고 같은 사업부에는 나 포함해서 3명이다. 2명은 모두 경영자가 됐고 나는 최종 승진 후 7년째 그대로 있다. 상식적인 경우라면 이미 퇴사했거나 퇴출됐어야 맞다. 하지만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잘 다니고 있다.ㅎㅎ


나는 1990년 7월 어느 날 회사로 부터 불합격 통지서를 받고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입사했다. 그것도 부전공 조금 이수했다는 이유로 전산실로... 그리고 20년이란 세월 동안 한 회사 한 사업부에서 같은 일을 해 오고 있다. 회사에서 가장 변화가 없는 사람 중 한 사람이지 싶다.


가끔 나의 회사생활기를 주제로 지인들과 이야기 나눌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내가 즐겨하는 말이 있다.


"나의 회사 생활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아내조차 내가 20년 동안 직장 생활할 줄 몰랐단다. 능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서. 그만큼 나는 겉으로 보기에 연약한 사람이다. 그런데 20년 동안 특별히 아파서 입원 한 번 한적 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 같이 출근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감사할 수 없단다.


나는 15년 이상 혼자 일하고 있다. 나는 혼자 일하게 된 조직구조 속에서 스스로 일해야 함을 배웠다. 혼자 일하다 보니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얼마만큼의 비중 있는 일을 했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하지만 나의 손에 3개 브랜드의 사활이 걸려있고 핵심 데이터를 다루고 개발하기 때문에 내가 받는 업무 스트레스는 견디기 힘들 정도다. 비즈니스룰을 모두 꽤 차고 있기 때문에 요구하는 사항들을 신속하게 처리해 주고 있으니 요구량을 점점 늘어 간다. 가끔 꾀를 부려 나의 기준이 아닌 통상적 기준으로 개발 일정을 늘리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힘들어할 직원들이 아른거려서 말이다.


2004년 과장 승진 전까지 나의 목표는 대리로 정년퇴직 하는 것이라고 우스개 소리를 했다. 그런데 당시 경영자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늦깎이 과장 승진을 했다. 그 이후로도 많은 후배들이 나를 앞서서 승진해 왔고 나는 그들을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요즘은 나의 목표가 과장으로 정년퇴직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가족들도 내가 회사생활에 만족하며 다니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있다.


나는 대리까지는 승진에 누락되면 속상하고 힘들어했다. 하지만 대리부터는 목표를 달성해서 더 이상 이룰 필요가 없는 사람과 같이 초연해졌다. 이제부터 승진이나 그 외 것은 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과장 승진을 했다. 감사했다.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승진후보자 제출 서류를 스스로 내 본 적이 없다. 이유는 그룹사 승진 기준인 "후계자 양성"을 할 수 있는 후임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경영자 미팅에서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내가 꼭 승진해야 하는 부하직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승진을 하지 않아 업무를 추진함에 있어서 걸림돌이 있는 것도 아니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나는 20년간 한 회사에서 일하면서 주인행세를 하지 않지만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해 왔다. 브랜드가 어려울 때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바보스러울 만큼 과도하게 시스템을 오래 사용하며 버텨왔고 혼자서 잘 감당해 왔다. 그리고 나 자신의 위치나 안위 보다 회사의 영속성과 성장성을 고려할 때 그룹시스템과의 통합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며 10년 전부터 시스템통합을 경영자들에게 건의해 왔다.


시스템 통합안이 거절될 때마다 최대한 현장이 어렵지 않도록 우리 사업부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시스템통합이 되면 우리 사업부만 사용하는 시스템을 폐기하게 되므로 후임자를 받을 경우 후임자의 입지가 어려워질 것을 고려해서 후임자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20년간 무탈할 뿐만 아니라 사업부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고 그 성장의 배경에 내가 큰 힘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할 뿐이다.


조직에서 인정받고 상을 받고 승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더 중요한 일은 조직에서 평가받는 것 이상으로 스스로를 평가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평가가 가장 정확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승진심사에서 탈락한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첫째 감사는 나도 차장 승진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감사하고

둘째 감사는 아무도 몰라준다고 생각했지만 기억해 주는 경영자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셋째 감사는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어 감사하고

넷째 감사는 겸손과 낮아짐을 배우게 하심에 감사하고

다섯째 감사는 승진에 탈락했음에도 불평과 원망보다는 감사케 하심에 감사했다.


나의 꿈은 회사의 승진에 있지 아니하다. 나의 바람은 내가 일하는 사업부가 지속적인 좋은 실적과 사회에 기여함으로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영적인 필요까지도 채워주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며 그 일에 업무적인 기여뿐 아니라 영적인 기여까지 겸하여 할 수 있는 선임 직원이 되는 것이다. 이 일에 나의 승진이 필요하다면 그 필요한 때가 내가 승진할 때라 생각된다.




주말 컴퓨터 속에서 발견한 오래된 일기... 

위의 글은 2010년 9월 7일 (화)에 작성된 일기다.


그동안 세월이 13년이나 흘렀다. 나는 여전히 승진하지 못한 채 같은 직급으로 내년이면 정년을 맞이한다. 당시에 내가 웃으면서 이야기했던 "과장으로 정년퇴직"의 꿈(?)이 정말로 이뤄지게 됐다. 


긴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직급은 변화가 없지만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COPD라는 호흡기장애를 새롭게 얻게 되어 의료용 산소기를 항상 휴대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회사에 산소기를 설치해서 캐뉼러를 코에 꽂고 일을 하고 있게 됐다. 외부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회사의 외부 행사나 출장은 모두 열외가 되었다. 


나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했던 회사 시스템은 나의 줄기찬 건의로 그룹사 통합 시스템으로 개발되어 20년간 사용했던 나의 프로그램은 폐기 됐다. 이제는 내가 회사에 없어도 시스템을 지원할 다른 팀이 있기에 큰 걱정 없이 회사를 떠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에게 너무나 특별했던 회사. 

은혜로 입사한 회사였고 은혜로 마무리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33년의 직장생활을 돌아보면 아쉬움, 후회보다 행복했던 기억들이 더 많다. 누구 하나 미운 사람이 없고, 누구 하나 싫은 사람이 없었다. 임시직 직원부터 경영자까지 나의 친구였고 동료였다. 감당하기 어려운 과업으로 인해 스스로 힘들어했던 때는 있었지만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거나 무시받은 기억이 없다. 오히려 직원들은 힘들 때마다 나를 찾아왔고 고민을 털어놨다. 후배들의 눈물을 보며 함께 아파했고 위로했다. 직원이 퇴사할 때마다 퇴사하는 후배가 나에게 밥을 샀다. 내가 과장으로 졸업을 앞둘 수 있는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인도하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어제도 한 직원이 찾아왔다. 16년 직장생활을 정리하려 한다고 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쉴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을 이야기했다. 잠깐 인사하러 온 친구를 붙들고 1시간이 지나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의 마음 고생했던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었다. 지쳐서 화를 내지 못하는 직원을 대신해서 내가 화를 내주었다. 직원은 회사를 떠나지만 나의 기도 노트에는 이 분의 이름이 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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