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nephile Mar 24. 2021

[영화 칼럼] - 결혼 이야기

인생이라는 길 옆으로 지는 해

Marriage Story, 2019

영화에서 카메라의 시선은 의인화된 하나의 독립체로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관객들과 인물들, 그리고 상황과의 거리를 카메라는 능동적으로 관극 하고 관망하며 중용적 상태를 유지하는 듯하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카메라의 시선은 적당히 인물들과 거리를 두지만, 관망하지는 않는 자세로 상황에 임한다. 하지만 영화가 종장으로 한 발짝 씩 내딛을수록 관객들은 인물들이 겪게 되는 중층적 고역을 고무적이지만은 않은 시선으로 가까이서, 그리고 한 발짝 떨어져서 상황을 관극 하게 된다. 영화가 시작되면 니콜과 찰리가 서로에 대한 장점을 내레이션으로 ‘이야기’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모노폴리라는 게임을 하지만, 각자의 시선으로 상대방이 게임에서 '지는' 모습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부부 중 한 명이 단 한 번이라도 상담을 했다면 그 변호사는 상대측 변호를 맡을 수 없는 사실에 의거하여, 여러 변호사들을 선정하여 니콜이 독점했던 것처럼, 영화는 이혼소송의 형국을 모노폴리라는 게임의 프레임으로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고, 영화는 여기서 승자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단언하는 듯하다. (이혼소송을 실질적으로 게임으로 다룬다기보다는 은유적인 접근으로 인본적이고 경제적인 관점으로 다루고 있다는 뜻이다) 아들도 유전적으로 모노폴리를 못한다는 말은, 아들 또한 여기서 피해를 입을 패자가 될 것이라는 말과 다름없어 보인다. 


왜 영화의 제목이 [결혼 이야기] 일까?

극 중 니콜과 찰리는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아들 헨리에게 , 즉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의 중반부에 한 프레임 내에 3명의 가족원을 모두 담아내는 장면이 있다. 


니콜과 찰리, 그리고 헨리

셋은 같은 침대에 누워 찰리가 읽고 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니콜은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지만 두 남성은 이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듯하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다: 


"난 이제 가야겠다. 스튜어드는 차에 올라타 북쪽으로 뻗은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오른쪽 산에서는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의 앞에 펼쳐진 광활한 땅을 바라보니, 길이 길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하늘은 밝았다. 그리고 그는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느꼈다.”


이야기가 끝나고 니콜은 결말에 대해서 잊고 있었다고 얘기한다. 이 글은 영화의 끝장면과 조응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스튜어드는 찰리이고, 그는 스크린의 북쪽으로 차를 타고 퇴장한다. 


동화와 영화의 접점

엔딩에서는 오른쪽 산에서 해가 뜨지 않고 '지고' 있지만, 하늘은 여전히 밝다. 이야기라는 것은 시제의 시점이나 관점에 따라 끝없이 재해석되는데, 이것은 결국 곡해되는 것이 아니라 잊고 있던 것들로부터의 감화와 귀착이라는 노아 바움벡의 시선이 담겨있는 듯하다. 그렇기에 영화의 시작에서 니콜이 찰리의 장점을 말하지 못했다면, 그것을 엔딩, 즉 다른 시제에서 찰리의 관점으로 읽었을 때, 그들의 이야기는 '재해석'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결말에서 찰리는, 한낱 아들을 재우려고 읽어줬던 동화가 곧 자신의 이야기가 되어 결혼이라는 세 인물의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게 되는 아이러니를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 곧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란 것을 인지하지 못했던 찰리는, 자신의 집에 주먹질을 해 구멍을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팔에 심한 상처를 입는다. 영화에서는 계속해서 연극이라는 소재를 끌어오면서, '핼러윈'이라는 날의 특성을 점철하여 관객들에게 나아간다.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투명인간 옷을 입은 아버지 찰리와 실존하는 인물인 '데이비드 보위'의 옷을 입은 어머니 니콜,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괴리감'에 빠진 아들 헨리는 결국 한 가족이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묘사되듯이 찰리는 실제로 가상의 (투명인간) 세계인 '연극'의 세계에 집착했고, 니콜은 자신이 예속화되어있지 않은 한 명의 독립체로서 존중받는 실존하는 (데이비드 보위) '삶'을 원했다. 하지만 뒤틀린 현실 속에서 이들은 상생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핼러윈과 직장을 오가며 ‘나’ 아닌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이 처한 '연극'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누군가를 연기하던 자신과 마주했을 때, 이들은 결혼이라는 가정 내에서도 자아의 모습을 잃고 ‘나’ 아닌 다른 인물의 모습으로 살아가던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왜 결혼 이야기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이 상황은 그들에게 하나의 '이야기'일 테고, 그들은 결국 동화 속 이야기처럼 광활한 땅을 바라보며, 그 긴 길을 올바른 길이라고 믿고 걸어 나아가야 할 테니 말이다. 


한 줄 평: 씁쓸하게, 그 광활한 땅을 올바른 길이라고 믿는 이들의 이야기. 







작가의 이전글 [영화 해석] - ROMA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