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건, 나를 잃지 않는 연습이었다
‘안녕하세요, 이번 달부터 출근하게 된…’
서툰 인사를 마치고 나서야 내가 진짜 어른이 되었다는 걸 실감했다. 준비도 되지 않은 채로, 나는 무언가의 한복판에 떨어졌다. 여긴 학교가 아니었고, 실수에도 관용이 있던 알바 자리도 아니었다.
그곳은 한순간에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 빨랐다. 일이 많고,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보다도, 사람들에게 치이는 게 더 힘들었다. 조용히 묻고 싶은 말도 차마 꺼내지 못했고, 실수를 고치기도 전에 누군가의 짜증이 먼저 날아왔다. ‘왜 이렇게 못 하냐’는 시선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물론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내가 바보는 아니니까’라는 생각 하나로 버텼다. 누구보다 빨리 손을 놀리고, 눈치를 보고, 기대에 맞추려 애썼다. 그러면 누군가는 “그래, 이제 좀 나아졌다”고 했다. 그 말이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칭찬받은 날조차 나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게, 내가 살아가고 싶은 방식이 맞는 걸까?
질문은 갑자기 떠올랐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내 안에 머물던 것 같았다. 나는 늘 누군가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달려왔고, 그 안에서 나 자신은 점점 작아졌다. 좋아하는 게 뭔지, 잘하는 게 뭔지도 가늠할 틈이 없었다. 그저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남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살아온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쉬는 날에는 자주 주방으로 향했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베이킹을 다시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기분 전환이었다. 달걀을 깨고, 반죽을 치대고, 오븐에서 나는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빵을 만들 때만큼은 세상이 조용해지는 걸 느꼈다. 누가 뭐라 하지 않고, 실수해도 바로 고치면 그만이었고, 결과는 내가 감당하면 됐다. 그 단순함이 좋았다. 빵이 구워지는 그 짧은 기다림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었다.
넌 지금 괜찮니? 정말로 괜찮아?
처음엔 “아니”라는 대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묻다 보니, 언젠가부터 “그래도, 이건 좋았어” 같은 말이 하나씩 섞여들었다. 그게 나를 살렸다.
회사에서는 여전히 힘든 일들이 많았다. 상사는 변하지 않았고, 나를 다그치는 말들도 여전했다. “너 하나 때문에 팀이 늦어.” “정신 안차릴거면 꺼져.” 가끔은 반사적으로 어깨가 움찔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나는 달랐다. 조용히 반죽을 밀고, 좋아하는 모양을 그리며, 내 하루를 다시 다듬었다.
하루에 한 번은 나를 위해 구웠다. 맛이 없어도 괜찮았고, 보기 흉해도 괜찮았다. 그건 누굴 위한 결과물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나를 조금씩 다시 회복해갔다.
어느 날, 친구가 내가 만든 쿠키를 먹으며 말했다.
“이거 진짜 너 같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내가 만든 무언가가 ‘나다움’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나를 안심시켰다.
아직도 나는 가끔 불안하다.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지, 지금처럼 살아도 괜찮은 건지.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바꾸려 했던 건 나 자신이 아니라, 나를 억누르던 목소리들이었다는 걸.
이제 나는, 나를 믿어보려 한다. 완벽하진 않아도 괜찮다고, 좋아하는 것을 붙잡고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나의 목소리를 조금 더 들어보려 한다.
그게 어른이 된다는 것이라면, 나는 이제 조금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