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카레 Dec 04. 2023

남의 그림 보기

순수한 감상의 중요성


 화가에게 남의 그림을 보는 일은 자기 그림을 보는 일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배울 점이 있으면 배우고, 좋지 못한 부분은 좋지 못하다고 명확한 이유를 들어 말할 수 있어야 하지요. 남의 그림 보기는 결국 자기 그림이 어느 정도에 도달해 있는지를 파악하는 길 위에 있습니다. 이는 내가 정말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에 답을 내리는 방법이기도 한데, 과연 스스로가 적절한 시야를 갖고 있는지를 평가하려면 결국 남의 그림에서 타산지석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화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에 자기 그림을 내놓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남의 그림들과 교류가 발생하니까요. 그러나 그러한 시야를 어느 정도 갖추었다고 해도, 미술 종사자들에게 지나친 확신은 금물입니다. 명백히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고, 사상의 변화가 있으며, 운이라는 요소도 상당히 크게 작용하는 분야가 미술이기 때문이지요. 미술 종사자들은 언제나 이런 부분들에 대해, 전부는 어렵겠지만 일부라도 생각하며 남의 작업을 보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런 이야기보다는 미술과 거리가 있는 분들을 위한 이야기를 좀 하고 싶습니다. ‘대체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일까?‘, ’그림을 볼 때 무엇을 보아야 하지?‘, ’저렇게 많은 부분을 다 알아야 한다고?‘와 같은 의문들이 한두 번쯤은 들기 마련이지요. 그 의문들을 제가 완전 해소까지는 못 해드리겠습니다만, 적어도 약간의 도움은 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저는 그림을 보는 일은 즐거움이 우선되어야 하고, 미술 종사자가 아닌 분들은 종사자들이 생각하는 영역까지 들어오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관점에서 몇 가지 방법들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첫째 원칙은, ’내가 보기 좋으면 그만이다!‘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마음가짐에 우열은 없습니다. 누가 그렸고 무엇을 그렸고 어떻게 그렸는지도 마찬가지랍니다. 유화로 그렸으면 그런가 보다, 수채화로 그렸더라도 그런가 보다 하면 됩니다. 감상자가 진심으로 좋으면 끝이며, 꼭 고차원적인 의미가 담겨 있어야 좋은 그림인 것은 아니지요. 아니, 사실 고차원적인 의미라는 것이 정말로 ‘고차원적’인지도 의문입니다. 본질이니, 경계니, 환원이니, 철학이니 하는 것들이 먹고 살기 위해 하루하루 꾸준히 자기 할 일을 다하는 모습보다 고차원적일까요. 저는 결코 아니라고 보거든요. 그저 분야가 다를 따름이지요. 그리고 배우자와 자식들과 함께 남들과 같은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은, 미술에 필요한 지식을 쌓고 일일이 그것들을 따져 가며 감상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시간을 쪼개면 그럴 수는 있겠지만 대중과 소통을 할 의향이 별로 없어 보이는 미술계에 그 정도의 관심을 쏟아 줄 필요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미술을 향유하는 일이 지나치게 고급 취향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단언컨대 그런 자세는 허세이자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단지 집을 꾸미기 위해서, 부를 과시하기 위해서, 그림 앞에서 남들과 영혼 없는 구밀복검의 수다를 떨기 위해서 작품을 구매하고 관람하는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안목을 가지고 있는지를 억지로라도 증명받고 싶어합니다. 얼마나 유식한지, 얼마나 고급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형이상학적인 세계에 깊은 관심이 있는지를 표현하면서 의도적으로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는 표현을 하고 싶은 것이지요. 경험상 그렇게 미술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가진 안목은 형편없음을 넘어 우습기까지 합니다. 일반 대중과 같은 선상에 놓이기는 싫고, 몸과 마음에 관한 공부를 오랫동안 하기는 귀찮은 이들이 선택한 길이니 그럴밖에요.


 미술은 허영심을 채우는 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라면 얼마든지 작품이 좋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있으면 좋겠지만, 이유를 굳이 찾으려고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이유가 궁금하고 꼭 알고 싶거든 각자의 방식대로 정보를 수집하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화가들은 여러분이 그렇게 나름의 방법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모습에 매우 기뻐하고 고마워합니다. 또한 작품을 보고 나서 마음이 따뜻해져도, 압도당해도, 너무 섬세해서 경탄해도, 너무 자유로워서 부러워도 상관없습니다. 아마 그림을 그린 사람도 ‘이런 감정이 느껴져서 마음에 쏙 든다’는 표현을, ‘이러이러해서 나온 조형언어를 저러저러한 사고를 통해 감성적으로 발전시킨 흔적이 보인다’는 고리타분한 표현보다 훨씬 좋아할 것입니다. 게다가 세상에는 수많은 취향과 삶의 방식이 있다 보니 자기 자신과 겹치는 부분도 꼭 있지요. 미술관이든, 아트페어든, 비엔날레든 어디에서도 좋다는 느낌을 받는 작품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입니다. 가끔은 그런 데에도 관심을 가져 보시되 진심으로, 본인만의 감정을 바탕으로 접근하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둘째 원칙은, ‘그림을 볼 때에는 멀리서, 가까이서, 중간에서 모두 보자!‘입니다. 물론 자신의 마음에 드는 그림에 한정해서 그렇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멀리서 보는 이유는 바로 옆에 걸린 작품 혹은 벽면과의 조화, 작품 자체의 전체 모습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화가가 서 있던 자리의 시점에서 보였을 법한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마치 그림을 그렸던 당시의 화가 옆에 함께 서서 풍경을 바라보는 효과를 주지요. 또한 멀리서 보는 일은 그 장소에 그림을 전시한 과정을 상상하도록 합니다. 그럼으로써 작가 혹은 큐레이터의 옆에서 그가 고민한 부분을 체험해 볼 수 있게 된답니다. 이런 것들을 전부 차치하고서라도, 벽에 그림이 수평과 수직을 맞춘 채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며 잘 걸려 있는 모습을 보면 그냥 기분이 좋지요.


 가까이서 감상하기도 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습니다만, 보통 저와 동거인은 작품에 더 이상 다가가지 말라고 표시해 둔 선 바로 앞까지는 다가갑니다. 그래야 물감의 질감부터 시간에 다라 바랜 색의 변화, 재료에 보조제를 섞었는지 아닌지, 세부적인 붓질들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다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저희는 미술 종사자로서의 흥미로 인해 바투 다가가서 보는 것일 뿐, 여러분이 그러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당히 아슬아슬한 거리라 제지를 받을 수도 있고요. 본인이 편안하게 느껴지면 거기에 멈춘 다음 보시면 됩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조금 전 멀리서 볼 때와는 달리 화가 자신이 되어 볼 수 있습니다. 또는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옮긴 사람들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매일 볼 수 있는 그림의 모습을 체험해 볼 수 있지요. 마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가면, 멀리서 볼 때와는 달리 자연스럽게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건물 위에서 야경을 감상하는 일도 좋지만 결국 삶은 그 북적거리는 장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마지막으로는 중간쯤의 거리, 옆에 걸린 다른 작품들이나 주변 공간은 보이지 않으나 그림 전체를 조망하기에는 어려운 거리를 택하면 되겠습니다. 시야가 그림을 다 담기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오히려 그림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시선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옆이나 아래로 빠져나가서 작품과 관계없는 부분에 꽂히게 됩니다. 그런 상태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작품을 보게 되면, 인물이 있을 경우 인물 주변에 그려진 공기 및 사물과의 관계를 탐색할 수 있고 풍경이 있을 경우에는 개체들에 집중할 수 있답니다. 중간에서 보는 일이 멀리 그리고 가까이 보는 일보다 좀 더 피곤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기도 하지요. 볼 것들이 더 많아지고, 거리가 적당하면 알게 되는 것도 많아지니까요. 무엇이든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일이 가장 힘들지만 그 말은 곧 알게 되는 사실들이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위의 순서는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입니다. 특히 유명한 예술가의 전시는 기본적으로 매시간 문전성시라서 거리를 조절하면서 모든 작품을 감상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 한두 가지만 택한 후, 전시장을 나서기 직전 몇 번이고 왔다갔다하며 들여다보시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꼭 정면에서만 보실 필요도 없답니다. 액자가 없다는 전제 하에 대각선으로도 보고 옆으로도 보면, 빛이 그림에 꽂혀서 어떻게 퍼지는지와 물감의 두께는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할 수 있지요. 화가가 그림 좌우로 서성거리면서 잘 되어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 또는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에 걸린 시간을 가늠해 보기 위해서인데, 이 또한 아주 신나는 일이니 한 번쯤 시도해 보심이 어떨까요.




 셋째 원칙은, ‘너무 미리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말자!’입니다. 많이 알고 가면 갈수록 투명하게 작품을 보기가 어려워지니까요. 작품을 볼 때에는 그 작품에 대한 자기만의 순수한 무언가가 드러날 터인데, 다른 정보들과 지나치게 섞여 버리면 그 순간의 감정을 유지하는 장애물들이 생기게 됩니다. 희한하게도 공부를 할수록 보이지 않는 것들도 점점 많아지더군요. 그렇다고 직업상 공부를 안 할 수도 없고요. 가끔은 미술 관련 지식이 거의 없던 시절 제가 가지고 있던 눈을 되찾고 싶을 때가 있을 정도입니다. 저보다 훨씬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은 더하지 않을까 싶네요.


 회화에서는 시각이 최우선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더라도 결국 보이는 것이 전부이지요. 전시회를 가기 전에 사진이나 영상으로 미리 작품을 접할 수도 있지만, 이는 가서 보는 경험과 굉장히 큰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사진은 그야말로 잘 찍혔는데 막상 눈앞에 그림을 대하면 실망하는 경우도 있고, 보자마자 작품의 힘에 저절로 경탄이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사진과 실제 작품이 너무 똑같아서 나름대로 재미있기도 하지요. 특히나 유화를 찍은 사진은 보정을 통해 빛의 반사를 전부 제거한 상태이지만, 실제 작품은 물감의 특성으로 인해 표면에 다양한 효과들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투명도가 높은 원색 계열의 색을 다량의 기름과 섞어 사용하면, 물감이 빛을 튕겨낸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가 되기에 원래의 색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투명도가 낮은 탁색이나 흰색, 그 중에서도 납 함량이 높은 플레이크 화이트나 크렘니츠 화이트 등은 물감이 빛을 꽉 붙잡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요. 그러면 그림 안에서 그 부분의 색이 너무 확실하게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모든 요소가 균일하게 보정된 사진과 아주 다른 모습을 갖게 됩니다. 회화는 직접 가서 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더군요.


 미리 대상에 대해 알고 가는 것은 물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문자 매체는 당연하고 사진과 영상매체까지도 굉장히 발달한 시대에,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을 다 습득하려고 하면 회화가 가진 고유한 특성들을 망각할 수 있답니다. 제 사견이기는 하지만 회화는 인간성을 제외하고서는 논할 수가 없고, 그 고유한 특성들은 인간성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불투명하고 혼란스러운 인간성이 아닌, 명징하고 확고한 객관성이 회화를 감상하는 일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면 온전히 그 즐거움을 누리기가 힘들어지게 되고요. 회화도 어디까지나 인간이 해낸 결과물이고 그것을 보는 감상자 또한 인간입니다. 저마다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는데, 구태여 이미 정해진 원칙과 정보들 안에 구속될 필요가 있을까요. 알 것은 알고 감상하되, 모를 것은 모르고 감상해도 괜찮습니다. 화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그대로 두시면 됩니다. 직접 가서 보시고, 본인만의 감정과 의견을 통해 작품을 감상하면 됩니다. 예술하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의 관심이든 자신의 작품에게 오는 것 자체를 감사해할 뿐더러 순수한 형태의 감상일수록 더욱 감동을 느끼니까요.




 유명한 장소에 전시했든 아니든 작품은 보아 주는 사람이 없으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그림을 보는 일은 그 작품이 작품으로 있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지요. 작품을 보러 가시는 여러분은 관심을 표현하고 있으실 뿐 아니라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에 참여하고 있으신 것이랍니다. 시간이 되시거든 자주 보러 다녀 주세요. 그러나 여러분 스스로만의 감성을 갖고 가세요. 너무 어려운 부분들을 하나하나 다 이해하려 하실 필요도 없고, 그냥 다 넘겨 버릴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순수한 감상 자세가 얼마나 화가에게 큰 도움이 되는지를 꼭 상기하세요. 때로는 미술 종사자가 아닌 이들의 시선이 더 날카롭고 의미 있는 법이니까요.

이전 17화 작가노트 쓰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