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의 힘은 관계에서 온다.
퇴근 후에 눈을 비벼가며 안도현의 '백석 평전'을 일주일 만에 읽었다.
내가 알고 있던 백석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시인, 자야와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해방 후 북한에서 시인으로 살다가 생을 마친 인물 정도였다.
책을 읽으며 알게되었다. 내가 아는 것은 언제나 찢어진 신문 조각 같은 단편들이라는 것을. 책을 덮고,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야 비로소 퍼즐이 맞춰지고, 조금은 ‘진짜’에 가까워진다.
나의 독서모임은 아이들이 어렸을 적, 동화 읽는 어른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자리다. 벌써 25년. 한 달에 두 번씩 모여, 책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책 속 장면을 따라 여행을 떠나고, 그림을 직접 보러 가기도 한다. 그렇게 묵은 시간이 차곡차곡 쌓였다.
함께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정지아의 '자본주의의 적'과 이진숙의 '시대를 훔친 미술'.
'자본주의의 적'에는 방현남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이 나온다. 그녀는 작가 정지아의 문창과 동기다. 방현남은 아무것도 '안 함'으로 존재함을 과시한다. 책을 좋아하지만 열심히 읽지도 않고, 문장력이 좋지만 소실을 쓰지도 않는다. 그녀는 “좋으면 너 혼자 쓰고 읽어라”라며 글쓰기를 향한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혼자 읽고 쓰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위로하면서도, 가끔은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어쩌면 내 독서모임은 방현남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뭘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만남, 그 자체로 충분한 사람들.
그리고 그런 만남이 오래도록 내 영혼에 온기를 더해 왔다.
이 모임은 캔필드의 닭고기 수프와는 달리, 나에게는 모닥불 같은 시간이 이었다.
서로의 이야기를 장작처럼 쌓아 올려놓으면 삶의 이야기가 피어나고, 따뜻함이 오래도록 우리를 감싼다.
아마도 노후의 삶을 지탱해주는 힘도, 결국 이런 모닥불 같은 관계에서 오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으며 지혜를 얻었지만, 결국 나를 지탱해준 건 함께 나눈 이야기와 관계였다. 아마도 노후의 삶도 이런 만남이 있어야 따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