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가족을 살고 싶었다.

‘가족의 상’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체념이 아니라 성숙이다.

by 러브 마망

새벽 다섯 시 삼십 분.

남편은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인력시장을 나가며 나를 깨웠다. 그는 나의 배웅을 받고 싶어 한다.

“나 갔다 올게.”

“잘 다녀와요.”


짧은 인사 속에 묘한 온도가 있었다.

우리는 오래된 부부이지만, 서로의 하루를 축복하는 말에는 서로에 대한 안쓰러움이 있다.

남편은 퇴직 후 지금 빚을 갚기 위해 새벽 인력시장에 나간다. 스스로 진 빚, 그리고 그 빚이 우리 가족에게 남긴 긴 그림자. 나는 그를 원망하면서도 연민한다.


장남을 편애하는 부모 아래에서 순응하며 자라온 소년, 남성 중심의 질서 속에서 남성성으로만 인정받았던 청년, 사회적 지위로만 자신을 설명할 수 있었던 중년. 그는 가족에게 친절하지 않았지만 늘 당당했다.

그러나 이제는 등 뒤가 굽어 가고 있고, 한없이 외로워 보이는 날이 늘어나고 있다. 그가 배운 언어로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미숙하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쉽게 미워하지도 못한다.


며칠 전 우리는 ‘이호선 상담소’를 함께 보았다.

딩크로 살기로 약속했지만 아이를 갖고 싶어진 아내와 여전히 아이를 원하지 않는 남편의 이야기였다. 남편은 아이를 키우면 “계층이 정해질 것 같다”는 불안을 말했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우리는 모두 불안을 안고 산다. 좋은 학벌과 대기업 간부라는 타이틀로 자신을 규정하며 살았던 남편은 가끔 계급의 언어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는 딸에게 물었다.


“너는 몇 층에 살고 있어?”


그 질문이 아이들을 경악하게 했다는 사실보다, 그 질문의 의미를 헤아리기 위해 시간을 써야 했다. 그것은 딸에 대한 자부심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

딸은 직장 5년 차,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사랑하는 연인도 있다. 그 사람에게서 더 큰 안정감을 느끼며 자기 세계를 단단히 만들어 가고 있다. 나는 그것이 다행이면서도, 가끔은 그 아이가 우리 집을 부족한 세계로 느끼는 것은 아닐지 스스로를 의심한다. 아마도 그것은 딸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내면에 새겨진 평가표일 것이다. 나 역시 여전히 나의 삶과 나의 가정을 채점하고 있다.


어느 날 딸이 말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아파.”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가족이라는 상(像),

내가 아픈 것은 가족 때문이 아니라, 내가 가족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상’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꿈꾸던 가족의 모양이 있었고, 현실은 그 모양과 닮지 않았다. 나는 현실의 가족이 아니라, 무너진 이상에 애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랫동안 ‘가족’이라는 단어에 특정한 풍경을 덧씌워 왔다. 저녁이 되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하루의 일을 나누는 가족, 서로의 말을 자르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가족.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경험한 가족이 아니라, 책과 영화와 나의 소망이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였다.


우리는 좁은 집에서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공간이 바뀌자 사람도 바뀌었다. 넓은 거실, 닫아도 숨이 막히지 않는 방문,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유. 나는 공간이 인간의 마음을 얼마나 바꾸는지 처음으로 실감했다. 우리는 조금 더 부드러워졌고, 조금 더 숨을 쉬게 되었다.


그러나 공간이 넓어졌다고 마음의 간극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남편과 아이들, 아이들과 나, 그리고 나 자신과 나 사이에는 여전히 오래된 금이 남아 있다. 그 금은 사건보다 오래된 ‘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가족이 이러해야 한다는 내적 설계도를 가지고 있었고, 현실은 그 설계도를 따르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가족을 하나의 세계로 생각했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공동체. 그러나 지금 깨닫는다. 가족은 서로 다른 문명권에 사는 사람들의 느슨한 연합체다. 같은 집에 살지만 다른 세계를 산다.

‘가족의 상’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체념이 아니라 성숙이다. 이상을 버린 자리에 현실이 들어오고, 기대를 내려놓은 자리에 관계가 들어온다. 나는 더 이상 남편이 바뀌기를, 아이들이 내 방식으로 성숙하기를 강요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각자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나이듦의 성장통을 겪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이상적인 가족을 원하지 않는다. 대신 불완전하지만 살아 있는 가족을 원한다. 말에 온도 차이가 있고, 침묵에도 의미가 있고, 서로 다른 세계가 충돌하면서도 결국 한 식탁에 앉는 그런 가족.


가끔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서러움에 잠을 못 이루는 날이 있다.

나는 우리가 살지 못한 삶을 애도하고 있었다. 존재하지 않았던 가족의 버전을, 가지지 못한 세계를, 그리고 엄마와 아내가 아닌 나로 살아보지 못한 시간들을.


서러움은 과거의 상처 때문만은 아니었다. 살아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애도였다.

남편이 다정한 동반자가 되어 저녁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장면, 아이들과 편안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순간, 내가 가족의 중심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앉아 있는 식탁. 그 모든 장면은 실제로 일어난 적 없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살았던 세계였다. 그래서 잃어버린 것처럼 아팠다.


이 서러움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내 삶을 다시 바라보는 신호가 되었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나였다”라는 깨달음이 찾아오며 마음은 비로소 선명해진다.


나는 그 서러움을 없애려고 하지 않기로 했다. 그 감정은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장례식이자, 두 번째 인생을 위한 통과의례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살았던 나를 조용히 안아주고, 이제는 한 사람으로 살아도 된다는 허락.


어쩌면 나의 두 번째 인생은 여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세계를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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