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딸과 산책을 했다.
딸은 내 팔에 팔짱을 끼고 걷고 있었다.
나는 그 온기가 좋았다. 아직은 내 품 안에 있는 아이 같아서.
내 팔에 끼고 있던 팔을 천천히 꺼내며 딸이 말했다.
“인생은 내가 어떻게 해도 일이 생기잖아.
그래서 그 일을 잘 해결해 가는 게 인생인 것 같아.”
나는 순간 멈칫했다.
저 말은 한동안 내가 붙들고 살던 생각과 닮아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오랫동안 인생을 숙제처럼 살아왔다.
다음 문제를 해결해야 안심했고,
불안은 늘 나를 바쁘게 만들었다.
그래서 즐겼어야 할 순간들을
조금은 놓치고 살았다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딸이 나를 닮은 건 아닐까 마음이 쓰였다.
혹시 저 아이도 책임을 숙제처럼 붙들고 사는 건 아닐까.
그때 딸이 말을 이었다.
“입시를 해결하고, 취업을 해결하면 안정이 되는 줄 알았어.
그런데 일은 계속 생기더라고.
그 일은 내가 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삶이라는 게 그런 것 같아.
나는 그 일을 해결하는 과정에 살고 있더라고."
딸의 얼굴은 담담했다.
결의도 아니고, 불평도 아니고,
그냥 받아들이는 사람의 표정.
어쩌면 저 담담함은
불안이 아니라 단단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불안해서 해결하려 했고,
딸은 삶이 그렇다는 걸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그렇지.”
짧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잠시 후 딸이 다시 말했다.
“엄마, 내가 이렇게 담담할 수 있는 건 나도 참 열심히 살았다는 나에 대한 존중 때문인 것 같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믿게 되면서부터.
그 사람이 어려운 일을 대하는 태도,
무엇보다 내가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마음.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안심이 있어.”
그리고 덧붙였다.
“이건 부모의 사랑이랑은 또 다른 사랑인 것 같아.
그러니까 엄마가 너무 많은 걱정은 안 했으면 좋겠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알았다.
딸은 이미 자기 삶을 스스로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내가 숙제처럼 살아온 시간들이
전부 헛된 것은 아니었구나.
내가 불안 속에서도 지켜내려 했던 것들이
이 아이에게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잘 살아낼 수 있다"라는 마음의 바닥이 되었구나.
나는 왜 그렇게 불안했을까?
불안해서가 아니라
지키고 싶어서였다.
아이들이 흔들리지 않을 바닥을
만들어주고 싶어서였다.
이제는 조금 알겠다.
인생은 문제를 다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안심을 물려주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더 이상 대신 걱정해 줄 수는 없지만
괜찮다고 믿어주는 사람으로
곁에 서 있을 수는 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만하면
참 많이 잘 살아냈다고.
그래서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긴 산책 끝에 우리는 예쁜 마카롱 가게에 들어갔다.
달콤한 단맛에 생각도, 몸도 잠시 쉬었다.
겨울의 끝이 남아 있었지만
물을 머금은 나무에는 이미 봄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가게 문을 나서며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펼친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아요.”
나는 웃음이 났다.
아이는 자기 몫을 살아가고, 나는 나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