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기억에 남는 것들에 대하여
1. 우연히 만난 매미들
어제 동네 공원 소나무 숲길을 걸었다.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외진 숲길이라 사람이 없어서 걷기에 아주 좋은 길이다. 한 여름에도 그리 덥지 않고 그늘이 한가득이다. 나의 세 딸들은 걷기 귀찮다는 뜻을 내비쳐서 그냥 먼저 카페로 가라고 했다. ( 한참 걷기를 싫어할 나이이고 자연의 아름다움에는 관심 없을 나이다.. 나도 그 나이땐 편한 게 1순위이긴 했다) 나는 경사진 계단을 올라 숲길을 걸었다. 나에게는 요즘 이런 자연에서의 시간이 꼭 필요함을 느낀다. 자연에 오면 마음이 편해지고 에너지가 저절로 충전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방전되기 전에 꼭 충전을 해야 한다. 이렇게라도...
그렇게 소나무 숲길을 한참 집중해서 걷고 있는데 갑자기 아주 커다란 나무 둥치에서 아주 신기한 관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나무 둥치 아래쪽에 무려 4~5 마리의 매미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요즘 매미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자주 보기는 힘들었던 매미를 이렇게 바로 눈앞에서 우연히 보게 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가까이서 본 매미는 아주 크고 징그럽고 신기했다.( 매미의 모양은 그리 호감형은 아닌 듯하다. ).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서서 홀린 듯이 매미를 관찰했다. 나무에 붙어있는 커다란 매미들은 꼬리 부분을 격하게 떨면서 울어대고 있었다. 가까이서 듣는 매매소리는 정말 충격적일 정도로 컸다. 4마리 정도가 한꺼번에 눈앞에서 울어대니 그 소리의 강도가 위에서 울어대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매미들 소리에 더해져 더욱 크게 느껴졌다. 동영상을 찍으면서 그 소음을 잠시 참아냈다. 매미들의 울음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커다란 소리에서 뭔가 간절함이 느껴진달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의 끝자락에서 유전자를 남기려고 온몸으로 최선을 다하는 매미가 갑자기 안쓰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여름 한철을 위해 거의 7년이란 세월을 땅속에서 보낸다는 매미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해 보는 경험이었다.
매미의 치열한 울음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겐 소음이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치열한 생존전략아닐까.
2. 친절한 물 한 잔..
숲 산책을 한 다음 아이들이 먼저 가서 기다리는 카페엘 갔다. 그곳은 평소 주말이면 내가 자주 방문하는 카페인데 작지만 조용하고 음료도 베이커리류도 맛있어서 좋아하는 카페이다. 하지만 내가 이 카페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장님 때문이다. 여기 사장님은 나와 비슷한 또래의 중년의 여성분이시다. 그런데 늘 언제나
친절하시다. 뭔가 억지로 친절한 것이 아닌 그냥 원래 친절한 게 몸에 배어 있으신 느낌이랄까?
참 설명하기 어렵다. 손님이라서 친절한 게 아니라 그냥 모든 사람을 그 자체로 봐주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느낌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아주 드물다.( 나도 이런 사람이 아니다... 아쉽게도)
그래서 나는 이 카페를 무의식적으로 자주 오게 된다.
오늘도 사실상은 이런 이유로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것이다. ( 아이들에게는 여기 음료가 맛있다고 설득했다. 사실이니까..)
첫째 딸과 둘째 딸은 먼저 음료수를 마시며 코난 영화를 보고 있었다. 막내딸은 혼자 음악을 들으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고.(요즘 한참 사춘기의 징후를 보이는 중3..). 나는 오자마자 음료와 케이크, 휘낭시에를 주문한 뒤 자리에 앉아 요즘 한창 빠져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 아주 단순한 꽃 그리고 색연필로 채색하기, 사실 거의 색칠공부라 할 수 있다.심신안정에 아주 탁월한 효과가 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더 이상 할 게 없어 보이는 아이들을 먼저 보냈다. 아이들은 아마도 노래방에 갔을 것이다.
나는 카페에 홀로 남아 색칠공부를 열심히 하다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요즘 너무 잘 읽고 있는 료의 '생각 없는 생각'에 완전히 빠져서 열심히 줄 치고 책 여백에 내 생각들도 적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미 내가 시킨 음료와 휘낭시에는 다 먹은 상태라 나는 그냥 책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사장님이 오시더니 그 친절한 미소와 함께 시원한 물 한잔을 놓고 가셨다. "물 한잔 드세요"라는 말과 함께.
나는 순간 놀라고 사장남의 생각지 못한 배려에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어쩌면 굉장히 사소하고 별일
아닌 것 같은 일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세심한 관찰과 순수한 친절로 인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먼저 요구하기도 전에 알아차리는 것,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로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배려'가 몸에 이미 배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알기에 그 물 한잔을 마시면서 마음깊이 감사함을 느꼈다.
사실 이런 관심과 친절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주 귀한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이렇게
하기는 아주 힘들다.( 사실 내 남편은 저 사장님보다 친절하지 않다. 오히려 나에게 물심부름을 시킨다...)
오늘도 순수하게 친절하신 사장님 덕분에 기분 좋은 하루가 되었다. 나는 그래서 카페를 나서기 전 굳이 사지
않아도 될 고구마 스틱을 나도 모르게(?) 구입하고 있었다. 아주 기분 좋게, 자발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