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휴전국가다.
평화는 묘지가 아니라 호수다.
많은 사람이 평화를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로 착각한다. 전쟁이 없고, 갈등이 없고, 소음이 없는 상태이지만 그건 평화가 아니라 정체이거나 냉정하게 말해 공동묘지의 침묵일 뿐이다. 진짜 평화는 백조의 발 갈퀴 같다. 물 위는 더없이 고요하고 우아해 보이지만, 물밑에서는 가라앉지 않기 위해 물살을 가르고 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다. 평온함은 거저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불쑥 튀어나오는 못난 마음들 시기, 질투, 분노를 끊임없이 인지하고 달래고 제자리에 돌려놓는 치열한 수호의 결과물이다.
평화라는 이름의 고요
조약에서 서명하고, 국경선을 그으며, 군대를 해산시키면 평화가 올 줄 알았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다른 걸 가르쳐준다. 가장 정교한 평화 협정도 한 사람의 분노와 오만에서는 종이조각이 되고 가장 견고한 동맹도 마음속 증오가 자라나면 무너진다. 진정한 평화는 외부의 조건이기도 하지만 내면의 선택이기도 하다.
평화는 영혼의 고요함에서 비롯되는 마음의 상태이기도 하다. 자신의 어둠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자신 안의 분노와 두려움을 숨기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다. 역설적으로, 자신의 폭력성을 깊이 이해할 때 비로소 진정한 비폭력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런 내면의 평화를 이룬다고 해서 세상의 고통에 무관심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자신의 마음이 고요해질수록, 타인의 아픔이 더 선명하게 들려온다. 평화로운 사람은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진짜 울음소리를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울음에 조용히 응답할 수 있다.
영속하는 평화는 평화로운 사람들에게만 올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 어렵지만 충분하지 않다. 그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 수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평화는 한번 얻으면 영원히 지속되는 게 아니다. 매일 새롭게 선택해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누군가와 갈등이 생길 때마다 세상의 불의를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선택한다. 분노로 응답할 건가, 평화를 지킬 텐가?
평화를 수호한다는 건 나약함이 아니라 강인함이다. 화를 내고 복수하는 것이 더 쉬울 때, 고요함을 유지하는 세상이 폭력으로 가득할 때, 자기 내면만큼은 평온하게 지키는 건 엄청난 용기와 의지를 요구한다. 비폭력은 약자의 무기가 아니라 강자의 선택이다.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싸우지 않는 복수할 힘이 있으면서도 용서를 선택하는 게 평화를 수호하는 진정한 힘이다.
매일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들이 있다. 뉴스에서 쏟아지는 비극들, 관계에서 생기는 오해들, 자신에 대한 실망들이 마음의 평화를 흔든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이 평화를 지킬텐가 아니면 흔들림에 휩쓸릴 건가?
수호한다는 것은 또한 경계를 지키는 걸 의미한다. 자신의 평화를 깨뜨리는 것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 때로는 특정한 뉴스를 보지 않는 것 과도한 자극에서 벗어나는 것 회피가 아니라 지혜로운 선택이다.
진정한 변화는 언제나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된다. 한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서 전쟁을 끝낼 때, 세상에는 하나의 평화로운 씨앗이 뿌려진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매일 그 평화를 수호하기로 선택할 때 그 씨앗은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다. 꽃을 피우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도 평화의 씨앗을 뿌린다.
평화는 전염된다. 폭력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더 깊고 오래간다. 한 사람의 고요함이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고요함이 또 다른 이들에게 전해진다. 이렇게 평화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퍼져나간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매일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오늘 아침, 나는 내 마음의 평화를 지키기로 선택하는가? 이 순간, 나는 평온함을 수호할 것인가? 이 작은 선택들이 모여 평화로운 삶을 만들고, 평화로운 삶들이 모여 평화로운 세상을 만든다.
하지만 이 평온함을 유지하기 위해 들여다봐야 할 내면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그곳은 지도조차 없는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