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내가 모르는 알고리즘
우리는 스마트폰의 작동 원리는 몰라도 잘만 쓴다. 그런데 평생을 쓰는 '내 마음'은 사용 설명서조차 없다. 이 마음이라는 녀석은 참 짓궂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 끔찍해하던 과거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내 안에 엄격한 노인과 철없는 떼쟁이가 한집에 산다. 우리는 이 복잡한 마음을 자꾸 논리라는 칼로 자르려 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화낼 일이 아니야"라고 다그치지만, 마음이 어디 논리대로 움직이던가? 칼을 댈수록 매듭은 더 엉킬 뿐이다. 타인이 쓴 자기개발서나 심리학책은 참고 사항일 뿐, 내 마음의 지도가 될 수 없다. 내 마음은 구글맵에 나오지 않는 오지(奧地)다. 비뚤어진 양심이 나를 갉아먹고, 거짓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나를 먼저 속이는 이 기이한 메커니즘, 이 미지의 알고리즘을 파악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는 자기 탐구라는 긴 여행뿐이다.
인류는 달에도 가고 심해도 탐사했지만, 여전히 내면만큼 미지의 영역은 없다. GPS로 길을 안내받고, 구글 맵으로 전 세계를 내려다볼 수 있는 시대에도 우리는 자신의 속마음 한구석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다. 왜 갑자기 슬퍼지는지, 무엇이 두려운지, 어디서 오는 분노인지 모를 때가 더 많다. 이성은 참으로 정직하다. A는 A이고 1+1=2다. 논리는 직선적이고 예측할 수 있다.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아 해결책을 만든다.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고, 검증할 수 있다. 이성은 우리를 밖으로 데려간다. 세상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문명을 발전시킨다. 하지만 내면은 다르다. 모순을 품고 산다.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할 수도 있고, 두려워하는 것을 동시에 그리워할 수 있다. 안에는 어린아이와 노인이 동시에 살고, 천사와 악마가 나란히 앉아 있다. 이런 복잡함을 이성으로 정리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엉망이 된다.
가슴속에서 자신에게로 향한다는 건 이런 의미다. 내면의 움직임은 자기 탐구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묻는 여행이다. 이 여행에서는 타인의 지도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각자의 심중 풍경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이곳으로부터 출발한다. 손으로 하는 일도, 입으로 하는 말도, 발로 향하는 길도 내면에서 먼저 결정된다. 마음이 어둡고 혼탁하면, 아무리 선한 일을 하려 해도 어딘가 비뚤어진다. 내면이 맑고 고요하고 향기롭다면 작은 행동도 큰 울림을 만든다. 그래서 속마음이 옳지 못하면 비뚤어진 양심은 우선 자신을 갉아먹는다. 거짓말은 상대방을 속이기 전에 자신을 속인다. 증오는 상대방을 해치기 전에 자신의 영혼을 독으로 채운다. 복수는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전에 자신의 정신을 망가뜨린다. 내면을 돌보는 것은 그래서 이기적인 일이 아니다. 자신의 정서가 건강해야 세상에 건강한 것을 줄 수 있다. 이 미지의 대륙을 탐험하는 것 어쩌면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모험인지도 모른다.
그 여행길에서 우리는 인간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모순과 마주하게 된다. 마음은 보이지 않고, 소유한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역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