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와 마음
옷은 언젠가 낡아서 버려질 것이고, 자동차는 고장 나거나 팔릴 것이고, 돈은 쓰여서 사라질 거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유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실제로는 우리가 잠시 빌려 쓴 것에 불과한 게 아닐까? 반면에 우리가 확실히 소유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우리 자신이다. 내 몸 내 생각 내 의식 이것들은 분명히 나만의 것이다. 다른 누구도 가져갈 수 없고 다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다. 죽는 순간까지 온전히 내 것으로 남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이 진짜 내 것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화가 나면 화를 참지 못하고, 슬프면 슬픔에 휩쓸리고, 두려우면 두려움에 짓눌린다. 마음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할 수 없고, 감정이 언제 폭발할지 통제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조종하려 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조종하지 못한다. 타인의 마음은 읽으려 노력하면서 자신의 마음은 읽지 못한다. 외부 세계는 바꾸려 하면서 내면의 세계는 그대로 방치한다.
더 웃긴 건 우리가 진짜 소유한 것과 소유하지 못할 것들을 자꾸 헷갈린다는 점이다. 잃어버릴 수 있는 것들에 집착하면서 불안해하고, 절대 잃어버릴 수 없는 자기 자신은 소홀히 한다. 외적인 성공을 위해 내적인 평화를 소모하거나 희생하며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의 진실성을 포기한다. 그러니 결국 문제는 소유가 아니라 마음이다. 우리가 진짜 소유해야 할 것은 마음을 다루는 능력이다.
진정한 소유는 마음을 아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랑, 우정, 신뢰, 용서도 모두 마음에서 비롯된다. 말이나 글로 전해지지만, 그 진정한 가치는 말 자체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다. 부처가 열반에 이르기 전 제자들이 누구를 따라야 할지 알 수 없었고 눈물을 흘렸다. 석가모니가 제 몸에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말하자 아난다는 "그럼 이제 누구를 따라야 합니까". 이에 석가모니는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며,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의지하여 올곧은 길을 걸어가라 했다. 부처가 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유훈 자등명 법등명 자귀의 법귀의는 슬퍼하며 남아있을 제자들을 위한 마음의 말이다.
자등명 법등명.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는 이 가르침은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는 평생 바깥을 향해 손을 뻗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것을 놓친다. 진정한 소유는 많이 갖는 게 아니라 나를 온전히 아는 거다. 다른 모든 것은 언젠가 떠나가지만, 자기 자신을 아는 능력만큼은 죽는 순간까지 우리 곁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