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자격조차 없는 어른

솔직함이 약점이 되는 사회

by 우하리

어렸을 때는 "아파요", "힘들어요"라는 말이 쉬웠다. 울음도 마찬가지였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슬프면 울어도 된다고 배웠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갈수록 그 말들은 점점 위험한 것이 되었다. "아파요", "힘들어요"라는 말은 솔직함이 아니라, 타인의 눈에 나를 약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드는 말이 되었고, 거기에 울기까지 하면 투정이나 한심함이라는 프레임이 덧씌워졌다. 더 아팠던 건, 그런 시선이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었다.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면 돌아오는 말은 늘 비슷했다. 왜 그 정도로 우느냐고, 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느냐고. 나는 그저 그 상황이 버거웠을 뿐인데, 내 감정은 마치 잘못처럼 취급되었다. 언제나 "어른이 되어서"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어른이 되면 우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걸까.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는 규칙이라도 있는 걸까. 마냥 울고 떼를 쓰는 것도 아닌데, 끝까지 참다 남은 유일한 방법으로 흘린 눈물조차 어른에게는 친절하지 않았다. 그렇게 솔직한 감정은 어느새 약점이 되어 있었다.


그런 반응들이 쌓이고 나니, 더는 울음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아니, 필사적으로 숨기게 되었다. 붉어진 눈가는 감추고 고개는 숙여졌으며, 잠긴 목소리는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는 순간조차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약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불안했고, 그 호의조차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고맙지만 불편했고, 알아줬으면 하면서도 모른 척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혼자 있으면 울음을 멈출 줄도 몰라 누군가 곁에 있어주길 간절히 바라면서도, 정작 솔직해질 용기는 없어서 그저 누가 눈치채주길 바랐다.


슬픈 상황이 오면 울고, 왜 슬픈지 말해도 된다는 가르침들은 크고 나니 쓸모가 없어졌다. 슬퍼도 참아야 했고, 말해봤자 돌아오는 건 익숙한 위로나 위로를 가장한 조언뿐이었다. 어른들의 위로는 공감보다는 이유를 찾는 데에 가까웠다. 다시는 그렇게 울지 않도록 돕는 것이 위로라는 듯이. 가끔은 실컷 울 수 있는 어린아이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다 터진 울음은 쉽게 그치지도 못하고, 그치는 법도 몰라 감정만 더 질질 끌고 가게 되었다. 속이 썩어가도 아무 말하지 못하는 것, 그게 어른이고 사회라고들 말한다. 그 사실이 참으로 슬펐다.


나만 이런 건 아닐 것이다. 누군가도 분명 이럴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아픈 사람과 지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게 아닐까. 굳이 슬픔을 꺼내 설명해 달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우는 그 순간만이라도, 애나 어른이라는 구분 없이 울고 있는 그 사람만 봐줬으면 좋겠다. 위로가 어렵다면 말없이 옆에 앉아 휴지 한 장쯤 건네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조금만 더 많아진다면, 하루가 아주 조금은 덜 아프고 덜 지치게 마무리되지 않을까. 그저 작은 바람이지만, 이뤄지길 조심스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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