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내려가다
뜬금없이 어릴 적 보았던 애니메이션이 떠올라, 다시 보고 싶어졌다. 지금 기준으로는 꽤나 오래된 작품이라 OTT 플랫폼에 있으려나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검색해 보았다. 신기하게도 있긴 했지만, 그때의 기억을 제대로 떠올리려면 자막보다는 더빙이 좋은데 아쉽게도 내가 찾는 건 자막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꼬꼬마 시절 보던 애니메이션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니 탭에서 전체를 누르고 인기순으로 정렬한 뒤, 역으로 천천히 내려가 보았다. 최근 유행한다는 작품들부터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애니를 지나, 점점 어린 시절 TV 앞에 앉아 보던 것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 맞아. 그때 저거 진짜 재밌었는데.”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자막뿐이면 아쉬움에 “저건 자막으로 보면 안 되는데…” 하고 중얼거렸고, 더빙까지 있으면 놀라워서 “이게 더빙이 있다고?” 하고 감탄했다. 내려갈수록 마치 과거를 여행하는 것처럼 찾는 재미에 푹 빠져버렸다.
거의 아래쪽에 다다르자,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에 봤던 애니메이션이 나왔다. 이제는 경악에 가까울 정도로 반가웠다. 게다가 더빙이라니, 괜히 OTT 플랫폼의 능력에 감탄하게 됐다. 반사적으로 눌러보았는데, 어린 시절의 기억과 달리 생각보다 화 수가 적었다. 최소 50화는 되겠지 싶었는데, 30화도 채 되지 않아 완결이 나 있었다.
그럼에도 몇 화씩 표지 장면을 훑어보니 내용은 생생히 떠올랐다. 대표 캐릭터의 이름도, 전체 세계관의 설정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다. 머릿속 어딘가에, 추억을 꺼내는 기능이라도 숨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들었다.
끝부분은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교육용 애니메이션들이었고, 끝까지 내려가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짧은 추억 여행을 마치고, 내려가면서 봐야지 했던 작품들을 하나씩 검색해서 보기 시작했다. 후속작은 찾던 플랫폼에 아예 없는 경우도 있어서,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 편, 한 편 볼 때마다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 다음 장면이 떠올랐지만, 그럼에도 전혀 질리지 않고 재미있었다. 그저 “그때 그랬지.” 하고 웃는, 나이를 조금 먹은 어른처럼 즐겼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과거의 것들은 흐릿해진 기억을 뚫고 불쑥 떠올라 우리를 다시 찾게 만드는 걸까. 그리고 다시 보게 되면, 오래 이별했던 친구를 만난 것처럼 괜히 반가워지는 걸까.
그때가 그리워서일 수도 있고, 그때가 아쉬워서일 수도 있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그때의 이야기를 누군가와 다시 나눌 수 있어서일 수도 있다. 혹은 그냥 이유 없이 즐겁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나의 경우엔 그 당시의 기분이 먼저 떠올랐던 것 같다. TV에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는 걱정 섞인 부모님의 말, 옆에 앉아 함께 봐주던 누군가, 그 시간만을 기다리며 몇 시냐고 연신 물어보던 나. 해 질 무렵 집 안에 퍼지던 밥 냄새와, 익숙한 오프닝 곡, 새로웠던 이야기와 장면들. 그리고 언제나 아쉬웠던 다음 화 예고편과 엔딩곡까지.
두근거리고 설렘으로 가득 찼던 그날의 기분은 지금 떠올려도 작게나마 웃음이 날 정도다. 아마 그래서 나는 가끔, 나도 모르게 과거의 무언가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은 때로 미련과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렇게 웃음이 되어 내게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