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콜드부루 Jun 12. 2024

K의 하루

8. '뭐 하나는 잘 한다'는 성취감의 중독성

K의 어린 시절 일이다.


구정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이 되면 K의 큰 아버지댁에서 다 같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함께 밥상에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가족들의 대소사를 이야기 나누곤 했다.


성인이 된 K에게 잊혀지지 않는 인생의 한 장면이 영화처럼 상영될 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K의 큰아버지였다.


K의 큰아버지는 어린 K를 두고 '큰 인물이 될테니 나중에 검사나 판사로 키우라' 라고 하였다.


K는 그 직업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지 못할 미숙한 어린시절이었지만, 그 믿음과 진한 사랑이 어린 K의 가슴속에 깊히 새겨져 있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상업고를 갔지만, 학교공부도 열심히 하면 하는 만큼 성적이 '등수'와 '장학금'으로 돌아왔다. '장학금'을 받아 부모님께 그 현금을 받아 들고 가는 날에는 어찌나 뿌듯하던지..


남들처럼 서울대, 연고대를 쳐다 보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지만.. 당시의 K에게는 더 없이 큰 성취감을 느끼게 하였다.


이 성취감은 뇌에서 뿜어져 나오는 '도파민'처럼..

직장인이 되어서도 다시 또 그러한 기회(?). 이를테면 남들은 하기 싫은, 피하고 싶은 각종 '시험'에 도전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도전의 과정은 신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이루고 나면 또 K 자신에게 더 큰 성취를 느끼게 해 주었다.


맡은 업무에 대해서도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실력을 키우고, 발휘함으로써 '이 일은 K가 아니면 안 돼' 라는 말들을 듣게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러한 신뢰를 타인에게 주려면 얼마나 많은 증명의 시간들이 필요한 것인지 따져 볼 생각조차 없이 중독된 성취 의식은 늘 K자신을 몰아붙혔다.


하지만, 요즘 세상의 '워라벨'을 꿈꾸는 자의식이 부재한 후유증은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직장에서는 철저한 커리어우먼의 완벽주의자로 정평이 날수록 퇴근은 늦어지고 휴일 근무도 늘어났다.  이런 속에 아이들은 아빠의 사랑은 무색하고, 엄마의 관심조차 받을 수가 없었다.


지친 K는 모처럼 쉬는 날이 생겨도 몸을 움직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피로가 누적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보이지 않았다.


힘들게 번 돈으로 도우미를 부르게 되었고, 그들이 하는 집안 살림살이와 육아로 그 시간을 충당할 수 밖에 없었다.


충당이 될 줄 알았다!


계속되는 육아도우미의 교체, 사소한 문제들이 늘어갈 때 상황을 직시했어야 했다.


아이들의 마음이 황량해지는 건 눈으로 보이지 않으니, 아니 보이지만 보지 않으려 했던건가..


시간이 많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켜켜히 작은 시간이 계속 쌓이다 보면 그것이 큰 흐름이 된다는 것을....

작가의 이전글 K의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