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3년만에 만난 남편의 얼굴
오피스텔 계약이 1년 만기가 다가오자, K는 고민이 들었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딸과 아들을 방 한 칸에서 계속 지낼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들도 그동안 더운 여름 장맛비가 쏟아지거나, 추운 겨울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때에도 먼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녀야 하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다시 예전 동네로 이사를 가야 하고, 남편과 만날 가능성을 줄이려면 인근의 옆 동네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K에겐 쉽지 않은 고민이었다.
밤새 이사 문제로 잠이 오지 않던 어느 날, K는 아이들을 제일 먼저 생각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먹고 아이들 학교 옆으로 아파트 전세를 구했다.
아이들은 '엄마 덕분에 이제 좀 편하게 학교에 다녀 보겠네!' 하며 방긋방긋 웃었다.
전셋집을 마련하기 위해 퇴직금을 털어 산 집을 전세로 내놓아야 했다. 남편을 대면하는 것은 끔찍하게 싫어서 '이사해야 하니 다른 곳으로 집을 알아보라'는 짧은 문자를 보냈다.
그동안 남편은 하던 가게를 다른 업종으로 바꾸었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운영하지 않아, 다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가려던 참이었기에 별 문제 없이 K와 J의 이사는 잘 이루어졌다.
J가 그렇게 이사를 한 이후 가끔 술을 마시면 K에게 '미안하다... 아이들 잘 부탁해....'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K는 J가 이사한 이후에도 동네에서 마주칠까봐 한동안 겁이 났었다. 되도록 인터넷으로 장을 보았고, 최대한 바깥은 다니는 것은 하지 않았다.
가끔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문자가 오면 아이들을 남편이 새로 시작한 무한 리필 고기집 가게 근처에 내려 주고, 저녁 식사가 끝나면 아빠와 인사한 후 돌아오는 아이들을 멀찌감치에서 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왔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코로나가 한참 창궐하던 어느 날이었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K에게 J가 전화를 걸어왔다.
'울산 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같이 갈 수 있어? '
남편의 목소리가 얼마 만인지, 핸드폰에 '남편'이라는 글자가 얼마 만인지.... 생경하기까지 하며 전화를 받았다.
별거 전, 명절이 되면 부산이 본가인 남편을 따라 애들과 울산 큰댁으로 건너가 제사를 지내곤 했었다.
고등학교 도덕 선생님이셨던 큰 아버님은 누가 보아도 정감이 있고 인간미가 풀풀 풍기는 인자한 분이셨다.
그러한 분이셨기에 K는 마지막 가시는 길에 禮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을 본다는 불편함을 앞서서....
다음 날 검은색으로 의복을 갖추고, J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되어 밖을 나갔다.
3년 만에 보는 남편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하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K의 몇 발치 앞에서 눈이 마주치자, J는 황급히 담뱃불을 끄며 인사를 했다.
허름한 옷차림, 정수리 주변은 머리카락이 거의 없어지고 하얗게 센 머리, 홀쭉하게 살이 빠지고 신발은 삭아서 이제 더는 못 신을 법한 랜드로바를 신고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왔어? 오랜만이네.'
순간 K는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사람이 이렇게 빨리 변할 수가 있는 것인가? 정확히 말해 이렇게 빨리 늙어 버릴 수가 있는 것인가?
결혼해서 잠을 잘 때 이를 가는 소리를 내던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제 치아가 거의 반도 안 남은 채 J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차림이 추레한 정도가 마치 서울역에서 만나면 노숙을 하는 사람으로 오해 받기 좋을 만큼....
'3년 동안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았던 거지? '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K와 J는 울산으로 가기 위해 KTX를 탔다.
부부였던 사이인데.... 이렇게 떨어져 살다 보니 서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색한 침묵이 몇 시간째 흘러갔다.
어느새 장례식장 앞....
K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고 마음을 먹었다.
장례식장을 들어서면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만날 테니 또 얼마나 놀라울 것인가?!
마음을 가다듬고 장례식장을 들어서자, 참지 못한 눈물이 큰아버지의 영정사진 앞에서 터져 나왔다.
'죄송합니다. 큰아버님....'
남편과 안 좋은 관계로 더불어 끊어진 관계들....
시부모님을 비롯해 많은 가족분들에게 세월이 흘러 간 흔적이 얼굴과, 손과 몸에 여기저기 새겨져 있었다.
슬프고 가슴 아픈 순간이었다.
몇 시간이 더 흐르자....
슬픔은 진정되고, 장례식장 한편에서 가만히 시댁 가족들의 이어진 조문들을 같이 보고 있으려니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K는 별거 중인 며느리인데....
요즘 세태가 워낙 이혼이 많고 흔해서 그런가, 다들 별다르게 보지 않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어색한 웃음과 흩날리는 말들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장례식을 마치고 K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날 밤, J를 만난 순간 느꼈던 깊은 슬픔과 당혹함이 K에게 검푸른 빛의 성난 파도처럼 연신 밀려온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옆에서 살뜰히 챙겨주는 사람이 되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하기만 하다.
깊은 슬픔과 죄책감은 며칠이 지나도록 K의 가슴 속 잔잔해진 작은 마당을 폐허가 되게 만든다.
주워 담을 수 없는 지난 세월을 어찌 할 수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