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와 K의 남편 J의 한 달 월급을 따져 보며 '와! 상위 1%시네요!' 라고 큰 소리로 반색하던 J의 매재는 진심으로 부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정도로 수입이 많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생각을 하는 듯 했다.
하지만 재운은 K와 J에게 별로 없었던건가?
가산디지털단지에 사 놓은 아파트형공장 2채는 세입자가 계약이 끝나도 나가지 않고 버티는 바람에 명도소송까지 받았으나, 결국 초기 보증금을 다 정리하고 몇 달을 눌러 살다가 '죄송하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또 서울아파트 딱지를 사겠다고 갖고 있는 집 전세금을 빼서 웃돈을 주고 산 딱지는 브로커의 차질로 인해 몇 년을 끌다가 원금만을 겨우 회수하였다.
이러한 일들을 십여년쯤 걸리도록 꽤 오래 걸려 매듭이 지어졌고, 그동안 돈 문제는 K와 J에게 불화거리를 더 늘려 줄 단초가 되었다.
40대가 넘어 가며 J는 자신의 연봉에 만족하지 못하고, 회사를 직접 운영하는 일을 K와 상의없이 진행했다.
3~4명 되는 직원을 데리고 사업을 시작한 일은 직원들을 적절한 회사에 연계시켜 주고 중간에 커미션을 받는 정도의 일이었으나, 이 또한 복잡한 인간관계가 얽힌 문제이다 보니 J에게는 버거웠다.
한 달이 금방 흐르고, 직원들의 월급을 줄 일과 세금을 치를 일들은 다가오는데 J 수중에 매출은 아직 발생하지 않는 등, 여러모로 자금 계획이 맞지를 않았다.
이럴 때마다 J는 K에게 돈을 구해 달라 하였고, K는 부탁을 거절하면 어떤 일이 생길 지 뻔히 알기에 쓸 수 있는 마이너스 통장은 있는 대로 빼서 남편에게 주었다.
어차피 돈 관리가 허술한 사람이라 안 될 일인 줄 알지만, 남편을 말려 보기도 하였지만,.
까맣께 한 밤이 새하얀 대낮이 될 때까지 고성방가를 일삼는 남편에게 다른 도리가 없었다.
남편은 그렇게 점점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회사대표로, 개인 프리랜서로 점점 직을 바꿔가며 삶이 변화해갔다.
주말마다 다림질을 해야 하는 남편의 와이셔츠는 점점 더 필요가 없어지고, 나중에는 주름 진 티셔츠를 입고 다녀도 아무 문제가 없는 '직업인'이 되어 갔다.
'부'란 지키기 어려운 것.
지금 당장 많아도 그것을 유지할 그릇이나 키울 그릇이 못 되면 언젠가 근심거리가 된다.
남들보다 이사를 적게 다녔더라면, 남들처럼 여가를 즐기는 일에 더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썼더라면, 또는 타인을 도우며 행복을 느끼는 데 힘과 재물을 썼더라면 둘의 삶은 이리도 황폐한 시간을 갖지는 않았을텐데..
그들은 자신의 그룻을 알지 못하고 들고 있는 '부'를 부질없이 소멸시키는 데 소중한 시간을 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