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사색

잃어버렸던 나의 별을 찾아서

by 배고픈 애벌레

우리 가족은 호숫가에 인접한 조용한 시골집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토론토에서 차로 서너 시간만 나와도 도시와는 사뭇 다른 대자연의 정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전에도 왔던 곳이라 아이들은 제 할아버지 집에 온 듯 익숙하게 집 주변을 누비고 다녔다. 창밖으로 펼쳐진 푸른 잔디와 나무로 만든 데크 너머의 은빛 호수가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한낮의 태양은 뜨거웠지만 바람은 시원했다. 햇빛을 머금은 물결은 바람에 출렁이며 시간마다 다른 색깔의 옷을 갈아입었다.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 가져다주는 짜릿한 희열감에 가슴이 뛰었다. 정지된 시간을 사는 것처럼 아무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우리는 낚시를 하고, 개구리를 잡고, 수영을 하다 지루해지면 배를 타고 호수 한가운데로 나갔다. 어느 날은 종일 호숫가 끝자락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듣던 노래는 어느 청취자가 라디오 DJ가 읽어주는 사연을 듣고, 자신과 비슷한 이야기에 슬픔을 달래는 곡이었다. 찰랑거리는 물결을 손으로 움키며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한 노래 속의 주인공이 되어 보았다. 그리고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과 불필요한 감정들을 하늘빛 물결에 떠내려 보냈다. 자연의 품에서는 노력하지 않아도 마음을 비우기가 쉬웠고, 나는 세상에 더 부러운 것 없는 사람이 되었다. 하늘, 구름, 바람, 호수, 나무….. 이 모두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신의 선물처럼 느껴졌다.


서편으로 해가 기울고 물결 위로 붉은빛이 황홀하게 깃들면 나는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꿈 꾸는 소녀가 되어 카누를 타고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황금빛 물길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마치 그 길을 따라가면 원하는 곳에 닿을 것만 같다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사람들이 소득 없는 치열한 하루의 반복에도 내일을 살아낼 수 있는 이유 또한 희망을 품고 다가올 날을 꿈꾸기 때문일 것이다. 해를 등지면 그 찬란했던 물빛은 금세 검게 변해 위협적으로 보인다. 어떤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마음의 등불이 되는 이상이 꺼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밤이 찾아오면 우리는 장작을 모아 불을 피웠다. 아이들은 긴 막대기에 몽글몽글 꽃처럼 매달린 마시멜로를 구워 먹느라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툭툭 소리를 내며 불길이 치오르면 주홍빛으로 물든 주위로 깊은 침묵이 흘렀다. 낮보다 더 밝고 따뜻한 밤이 한동안 지속됐다.


머리 위로는 별이 빛나고 별자리가 선명했다. 밤하늘을 올려다본 지가 언제였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시간이 없고 일이 바빠서가 아니었다. 메마른 마음으로는 찬란한 별을 담을 수도 볼 수도 없었던 거였다. 흐르는 강물을 붙잡고, 그물로 바람을 잡으며 살아가느라 마음 놓고 하늘 한 번 보지 못했다. 누군가의 딸, 아내, 엄마, 친구로 살아가기 버거워 온전한 나를 잃어버린 건 아니었을까?


낯선 땅에 홀로 떨어져 바라던 대로 살 수 없는 것이 늘 답답하고 조급했다. 그러나 자연의 품 안에서 고요 속에 머물 때, 상처받은 마음과 어지러운 관계,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일이 하룻밤 꿈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이 느껴졌다. 잠시나마 시인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잃어버렸던 나의 별을 찾아 하늘을 올려볼 수 있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프랑스 시인, 장 루슬로의 노래가 영혼의 울림이 되어 마음으로 스며들었다.


“하늘의 선반 위로 제자리에 있지 않은 별을 보게 되거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라.

풀과 돌, 새와 바람, 그리고 대지 위의 모든 것들처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장 루슬로의 <또 다른 충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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