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지는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가을이다. 무더웠던 여름날에 종지부를 찍고, 길고 추운 겨울로 가기 전에 숨을 고르는 시간. 아침 공기 속에 흩어지는 서늘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지만, 알록달록 색깔 옷을 갈아입고 나부끼는 나뭇잎의 손짓에 못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집 가까이에 있는 공원 산책로도 전에 없이 고혹적인 자태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비가 오고 난 후, 맑은 가을 하늘과 따사로운 햇볕이 모습을 드러냈다. 출근길에 마주하는 가을은 점점 깊어져 가고 그 모습이 예뻐서 멈추지 않고 달려서 조금 더 감상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그런데도 찬란한 가을 뒤로 흐르는 쓸쓸함에 까닭 모를 상념에 빠져들곤 한다. 가을을 인생에 비유하면 중년기쯤이 된다는데 내 인생의 가을도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일까? 무르익은 가을처럼 결실을 보지도, 부질없는 감정과 욕심을 떨쳐내지도 못한 채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이 든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책상마다 커다란 호박이 하나씩 올려져 있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학교에서는 호박을 크기 별로 사서 나누어 주는데 이것으로 아이들은 다양한 놀이를 한다. 돋보기로 호박을 관찰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눈, 코, 입을 파내서 전등을 만든다. 호박으로 만든 전등은 할로윈 장식이 되어 가을밤을 밝히게 된다. 교실로 옮기기 위해 크고 묵직한 호박을 품에 안으니 가을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순간, 호박 한 덩이에 빈곤했던 마음은 부해지고, 계절이 주는 넉넉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호박에서조차 가을의 위력을 느낄 수 있는 10월은 참 신비롭다. 옷 속에 감추고 있던 마법의 요술봉을 꺼내 가을빛 가득 담긴 호박을 두드리면, 신데렐라의 마차처럼 호박은 멋지게 변해서 사람들의 결핍을 채워줄 것만 같다. 마법의 호박이나 주문 따위가 없이도 나는 가을 호박을 보며 허전함을 달래곤 했다. 캐나다에 가을이 찾아오면 두 딸을 데리고 농장에 들렀다. 농장 입구에 놓여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호박들은 입이 딱 벌어질 만큼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대비되어 호박의 따뜻한 주황빛은 눈과 마음에 다 담아내기 벅찰 정도로 황홀했다. 넓은 농장을 뛰어다니며 마냥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며 삶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해가 기울고 석양의 붉은 빛을 품고 집으로 오는 길, 갓 수확한 사과와 호박파이를 양손 가득 사 들고 자연이 주는 소박한 행복 앞에 뿌듯했었다.
가을 앞에 외롭게 홀로 서서 한때 빛나고 싶었던 나를 돌아본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은 사람들의 발에 밟혀 바사삭 마지막 비명을 지르고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낙엽에도 연둣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싱그럽던 신록의 때가 있었다. 푸르게 자라나 그늘을 만들고 열매를 감싸며 수확의 날을 꿈꾸던 때가 있었을 거다. 그리고 다가올 슬픈 운명을 알면서도 꽃처럼 피어나 바람결에 춤추며 마지막을 불살랐던 수많은 낙엽. 땅에 떨어져 잊히는 존재가 된다고 해도 생명이 있는 동안 아름다웠던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은 없어지지 않는다. 땅속에 묻혀서 이름도 빛도 없이 썩는다 해도 또 다른 생명이 자라게 하는 밑거름이 될 테니까 그 또한 고귀한 희생이다. 자연 속에 담긴 이치를 헤아려보며 나는 다가올 인생의 가을도 시리고 슬프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퇴근길,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가을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가을의 쓸쓸함과 외로움, 알 수 없는 슬픔을 가슴에 품고 인생의 휴식처가 되어 주는 가을밤을 찾아간다. 붉게 물든 하늘이 쓸쓸한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 주는 것만 같다. 차창 밖으로 노을빛을 닮은 커다란 호박 한 덩이를 어깨에 메고 가는 아빠와 그 옆에서 재잘거리는 아이가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 따뜻해서 가슴이 뭉클했다. 가을은 주황색 호박빛으로 반짝인다. 황금보다 더 아름답게 빛나서 부한 자나 가난한 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의 마음을 풍성하게 채워준다. 가을빛으로 꽉 채워진 하루의 끝에 비로소 평안함이 깃들고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