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어서가 아니다. 날씨가 흐려서가 아니다. 특별히 안 좋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마음에 블루가 번진다. 그래 나는 블루를 좋아한다. 블루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기도 하다. 블루 속에 침잠하여 들어가는 순간이 어쩜 가장 나다운 시간일지도 모른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먹먹함이 가슴속으로 밀려들어와 나를 사로잡고, 공중에 떠서 허우적거리던 지친 두 발이 마침내 깊은 해저에 닿는다. 무장을 해제당한 패자처럼 몸을 낮추고 숨을 고른다. 그제야 요동치던 마음이 차갑게 식어 블루와 하나가 된다.
사는 게 분주하다. 대단한 일을 하고 사는 것도 아닌데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 때까지 몸도 마음도 바쁘다.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쉼이 없다. 시간을 훔치는 도둑에게 내 영혼을 내어준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회색 신사와 거래를 한 모양이다. 제한된 삶을 살면서 시간을 두고 말도 안 되는 거래를 하며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다니…. 무엇을 얻겠다고 나를 내던져 그 거래를 성사시킨 것일까?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점점 강퍅해지는 마음을 털어내고 싶다. 모모와 함께 보낸, 내가 모모였던 그때를 내 영혼은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블루 속에 머물기를 자처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내 안에 멜랑꼴리가 있다고. 그 멜랑꼴리가 나를 더 나은 나로 이끈다고. 그럴까? 요즘 나는 시간 뒤에 숨어 마음먹은 일을 실행에 옮기는데 주저하며,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기를 멈춘 것만 같다. 알듯 하면서도 알 수 없는 복잡한 인간사의 덧없음을 어떻게 승화시킬 수 있을까? 멜랑꼴리가 고개를 드는 순간, 짙어진 블루 속에 몸을 숨긴다. 작은 아이로 돌아가 존재를 증명해 보이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 머물 수 있음에 안도한다. 거대하게 보이던 세상의 장벽도 그다지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는다. 넘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켜보며 돌아가자 생각한다. 바람에 떠밀려온 푸른 물결에 내 마음을 맡기고 괜찮다, 명랑하게 살자 속삭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