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는 나비가 될 수 있을까?

by 배고픈 애벌레

나비가 되고 싶은 애벌레는 늘 배가 고프다. 종일 먹을 것을 찾아 헤매고 다니지만 배는 차지 않는다. 밤이 되고, 새벽을 지나 해가 다시 떠오르면 애벌레는 굼뜬 몸을 일으키고 꿈틀꿈틀 움직여 어제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나아간다. 주린 배를 채우고 몸집을 키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느리지만 전진한다. 뒤로 가는 법을 모르기에, 그 누구도 다른 길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그저 고개를 들고 보이는 곳으로 기어간다. 본능적으로 오르고 먹기를 반복한다. 더 크게 자라나기 위해 기지개를 켜고 답답한 껍질을 벗어던진다. 이제 배를 채우려면 더 부지런히 오르고 치열하게 먹어야 한다. 자신의 숙명을 아는 애벌레는 모든 것을 중단하고 번데기가 되어 내면을 키우고 다지는 일에 몰두한다. 때가 차면 애벌레는 잠에서 깨어나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두 날개를 펼쳐서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있을까? 세상을 내려다보며 웃을 수 있을까? 애벌레가 아닌 아름다운 나비로 호명될 수 있을까?


모든 나비 애벌레가 나비가 될 수는 없다. 오직 일 퍼센트만이 나비가 되어 푸른 하늘을 비행하고 꽃과 하나 되어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다. 두 날개를 넓게 펴서 자신을 과시하고 사랑을 찾아 춤추고 잠시나마 세상에 자신을 던져 불꽃처럼 타오르리라. 어린 시절에는 자라서 어른이 되면 멋진 나비가 되어 화려한 날개로 날아오를 줄 알았다. 정해진 길을 따라 멈추지 않고 가다 보면 어느 날 누군가가 그랬던 것처럼 날개가 자라나 주목받는 나비가 될 수 있다 믿었다. 그 누군가가 단 일 퍼센트에 속하는 소수의 개체라는 것과 내가 그 일 퍼센트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은 몰랐다. 미리 알았다고 해도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옳다고 믿었던 길을 이탈한 적이 없으며 성실했기 때문이다. 더는 어리지도 않은데 나는 여전히 나비가 되기를 바라는 애벌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어느 날 쪽빛 하늘을 두 눈에 담았을 뿐인데 눈물이 흘렀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하루만이라도 나비가 되어 푸른 하늘을 양 날개에 가득 품고 날아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삶의 무게에 억눌리지 않고 아픔, 슬픔, 후회와 고통, 그리움을 털어버리고 가볍게 날아오를 수 있다면…. 나는 아직도 나비가 되고 싶은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애벌레이다. 얼마나 더 아프고 나이가 들어야 세상에 존재를 내보이지 않고도 나 스스로 당당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나를 규정하는 세상의 조건에 고개 숙이지 말자. 애벌레가 배가 고픈 이유는 나비가 되어 자신을 과시하고 존재를 증명해 보이기 위함만은 아니다. 침묵과 고독 속에서 내면을 밝히고, 쓸데없는 집착과 욕망에서 놓여 성숙하게 거듭나기 위함이다. 그런 애벌레는 오늘도 나비가 되기를 꿈꾸며 시든 잎으로 배고픔을 달래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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