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부모를 용서해?

by 김민주

엄마는 아저씨가 없으면 항상 나를 찾고 아저씨가 있으면 항상 나를 찾지 않는다. 엄마가 아저씨랑 함께 있을 때 나한테 연락한다면 아저씨는 자연스레 나의 근황을 듣게 될 테고 또 나를 평가할 테고 나를 같잖게 여길 거다. 그러고 내 엄마 앞에서 나를 험담할 것이다. 엄마는 아무 말이 없을 것이다. 이것들은 나의 망상이 아니라 실제로 너무나도 많이 겪어서 알 수밖에 없는 당연한 것들이다. 엄마의 침묵은 동의의 함구인지 비동의의 함구인지 알 수 없다. 가끔 내가 아저씨가 내비치는 나에 대한 불만들이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토로하면 엄마는 아저씨의 편을 든다. 너를 소중하게 생각해서 그러는 거라고. 네가 진심으로 안타까워서 그런 거라고. 이제 그런 말을 들으면 분노도 슬픔도 헛됨도 없이 눈이 돌고 정신이 돌아 칼춤 추는 무당 마냥 벙벙 뛰어버리고만 싶다. 속에서 들끓는 이 화를 알아들을 수 없는 음성으로 토해내야만 숨이라도 그나마 트일 것 같단 직감이 찾아온다. 이젠 정말 이 지겨운 연을 끝내고 싶어. 연이라고 표현하기에도 분노가 느껴지는 관계. 그들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무엇이길래 나를 이토록 사랑해서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나. 그들의 여건과 이익들 아래서 나의 존재가 수없이 지워졌다가 나타나야 했다. 나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돌리기 위해 애써 입 발린 거짓들로 나를 속이거나 끝으로 치닫은 상황들을 보여주며 곤란하게 만들었다. 이렇게나 수년을 괴롭혔는데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저씨가 자리를 비운 엄마는 도통 알 수가 없다. 항상 외로움에 갈증 나 있는 사람. 누군가가 필요한 사람. 떠오른 상대에게 찾아가 자신의 슬픔을 내비치고 위로를 조성한다. 대게의 떠오른 상대는 딸인 나다. 나는 엄마가 너무 힘들었다. 엄마의 슬픔의 굴레는 내 한평생이었는데, 엄마는 그 굴레를 끊어내지 못한다. 슬픔도 중독이라는 것을 그동안의 엄마에게서 볼 수 있는데, 동시에 한 때의 나에게서도 볼 수 있다. 나의 우울의 시기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너무나도 우울하고 일상생활조차도 잘 되지 않고 인간관계를 스스로 망가뜨리곤 했을 시기엔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것에도 말 한마디를 내뱉는 것에도 다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 내 속내가 투영된 말들을 엄마가 알아채지 못하면 굉장히 서운했었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기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였다. 엄마는 나를 몰라주는 사람이야, 엄마는 나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야, 내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야… 그랬던 과도기의 내 모습이나 언행들이 약해진 엄마의 모습들에게서 보인다. 그때 당시의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사람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나에게 따듯한 말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나의 수고를 알아주고 나의 벅참과 고생을 알아주고 일어나려는 나의 노력에 긍정의 한 마디를 덧붙여주는 아주 소소하고도 강한 따듯한 사람이었다. 당시 우울의 시기에 따듯한 엄마를 만난 기억이 애석하게도 희끄무리하지만, 지금 당시 시기를 거친 나는… 그 당시의 나와도 같은 엄마에게 어떤 사람이 필요할지 않다. 그런 따듯한 사람이 딸인 나라면 엄마가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 따듯한 말이 나오질 않는다. 혀가 놀아나질 않고 어색히 굳고 만다. 너무 많은 애정을 준다면 엄마가 나만 바라보지 않을까. 나는 엄마의 경계 없는 왈가닥스러운 행동들을 감당할 수 있는 성격의 딸이 되어주질 못 해서 엄마의 살가운 모습도 엄마의 무너지는 모습도 바라볼 수가 없어서. 내가 엄마에게 많은 품을 내어버리면 엄마가 내 품에서만 있게 될 한 때를 또 보내게 되어버릴까 봐. 이런 아주 바보 같은 생각들로 엄마에게 품을 내어주질 못 하겠다. 내가 언제 엄마에게 한 걸음 먼저 다가갈 수 있을까. 내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엄마에게 그런 사랑을 내가 많이 받은 사람이었다면 나는 엄마에게 성큼 다가갈 수 있던 사람이었을 텐데. 이렇게 과거의 엄마를 탓하는 것도 사랑이 부족했었다 말하는 현재의 나도 다 사라져야 할 텐데. 가끔은 받은 상처는 상처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나을 수 없는 상처라는 게 있기 마련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은 아는 대로 살아갈 것이다.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고,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게 왜 나를 더 안아주지 못했는지, 그러게 왜 내게 더 따듯한 말 한마디 해주지 못했는지, 왜 나는 항상 엄마의 우선순위 밖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는지 탓하고 재고하는 것들은 더 이상 도움되지 않는다. 나의 상처를 더 쓰라리게 만들 뿐이다. 어린아이 시절의 내가 겪었던 사랑의 갈증은 지금의 엄마에게 성인 된 내가 대물림 하고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추악한 내리사랑을 끊을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것을 안다. 엄마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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