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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Jul 05. 2022

애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재외공관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얼마 전 남편 비자 준비 건으로 주모로코 대한민국 대사관에 방문했다.

서류를 하나씩 넘겨보 한국인 직원남편에게 몇 마디 말을 걸었다는데  용이 가관이다.


"이슬람의 교리는 훌륭하. 근데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에는 왜 이렇게 나쁜 사람이 많아요?" 

"오~엘 자디다 사시는구나? 저도 예전에 거기 살았어요. 근데 전 거기 싫어요. 영 살기 별로라 이사했어요."


친절한 말투로 포장했을런지는 모르나 아무리 좋게 해석해 보려 해도 다분히 공격적 말들이다. 지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남편이 불쾌한 기색 없이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대응하자 그쪽에서도 재미가 없었는지 쯤에서 그만 둔 모양이다. 니 어쩌면 남편이 나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무례한 언사가 더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모로코는 이슬람을 믿는데 왜 나쁜 사람이 많냐고? 방예의지국 출신 중에도 당신처럼 예법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니겠는가.


국제결혼 관련 서류를 검토할 때는 그 진위 여부를 가리는 일이 물론 중요할 것이다. 단순히 입국만을 위해 결혼이라는 명목을 이용하는 일은 없어야 할테니까.

허나 그러한 이유로 대사관에게는 갑의 위치가, 결혼당사자들에게는 을의 위치가 부여되는 것이 정당한가? 국제결혼심사는 갑을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심사자는 응당 사심을 깨끗이 배제한 상태에서 서류만을 검토해야 할 것이며 피심사자에게 사사로이 불필요한 언행을 일삼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만약 남편이 아니라 내가 같은 일을 겪었더라면 나는 과연 태연할 수 있었을까. 의연하게 대처한 남편이 자랑스러우면서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남편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기 어려웠다. 끄러움은 나의 몫이다.


비자 준비를 막 시작한 초반에 남편이 정보를 얻기 위해 대사관에 전화를 몇번 했었다. 그때마다 답변은 같았다. '한국인 배우자가 연락하면 알려주겠다.'

남편이 본인에게 알려줄 수는 없는건지 물어보자 돌아온 말들은 '목소리를 낮춰라.', '예의 있게 말하라.' 등의 반명령이었다고 한다.

그 뒤로는 연락할 일이 있으면 무조건 내가 전화를 한다. 남편에게는 대사관에 문의할 '권한이 실질적으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모로코에 살고 있는 남편을 놔두고 한국에 있는 배우자가 모로코의 대사관에 전화를 거는 이 상식적인 것일까. 글쎄 뭐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내가 주한 모로코 대사관에 몇 차례 연락했을 때는 '모로코인 남편보고 연락하라고 하시오'란 말 대신 굉장히 친절한 안내와 답변을 받았던 걸 면 뭔가 이상하다는 의문이 든다.


실은 한국인 배우자라고 해서 프리패스인 것도 아니다. 자 관련 서류를 대사관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던 중 의문점이 생겨 주모로코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었을 때다.

나>> 안녕하세요, 국제결혼으로 비자 준비중인데요. 홈페이지에 이러이러한 서류를 갖추라고 되어 있는데 유튜브 보다보니 조금 내용이 다른 부분이 있어서 어느 게 맞는건지 확인차 연락드렸어요.

그리고 돌아온 건 깊은 한숨소리.

??>> 하... 선생님. 제발 홈페이지만 참고하세요. 요즘 이런식으로 다른 데서 잘못된 정보 보고 연락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가 정말 피곤합니다.

그 말을 들은 나도 순간 피로감이 몰려왔다. '네 알겠습니다.'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당혹스러운 상태로 전화를 끊고 난 후 한동안 멍하니 생각했다. 류 떼는 건 일도 아니구나. 사람으로부터 받는 생채기가 참 아프다.


솔직히 아무리 심한 말이라도 내가 듣는 건 괜찮다. 다만, 모로코 사람인 우리 남편이, 그리고 모로코의 또 다른 국제결혼 당사자들이 이런 일을 겪는 것은 한국 사람으로서 상당히 수치스럽다. 저런 대우를 받고서 그들이 어떻게 배우자의 국가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재외공관의 역할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는 현지와의 람직한 관계 조성과 문화 교류도 포함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첫걸음으로서 현지인들이 최소한 무시를 받는다는 기분은 느끼지 않게 주었으면 한다. 사소하다 여겨질지 모르지만 국가의 이미지는 생각보다 사소한 데서부터 만들어진다.  


애국 따로 있지 않다. 저 나 스스로가 국가의 얼굴이요 내가 뱉는 말이 국격을 결정짓는다는 마음으로 행동한다면 그것이 바로 애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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