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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 May 22. 2023

술과 행복

기분, 알코올농도, 연금술사

술 마시는 행위는 음식 먹는 것과 적지 않은 공통점을 지닙니다. 음식과 마찬가지로 술 관련 연구는 대부분 뇌의 반응에 대한 실험 결과를 근거로 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뇌 관련 연구가 초기 단계이므로 술(음식)과 뇌의 반응을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술과 행복 이야기는 뇌 실험보다는 다른 경험적 연구를 토대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술과 행복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접했습니다.


술에 대한 비판론자의 입장에서 술은 백해무익합니다. 음식으로 이야기하면 술은 매우 중독성이 강한 위로 음식(comfort food)에 해당합니다. 위로 음식은 영양 관점에서 건강하지 못하고 과다 섭취 시 우울증을 유발합니다. 더욱이 술은 개인의 삶을 망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폐해를 초래합니다. 한국 사회는 유난히 음주 문화에 관대합니다. 음주 범죄를 가중처벌하지 않고 심신장애를 이유로 감형해 줍니다. 공공장소에서의 음주 행위 역시 쉽게 눈감아줍니다. 그러니 술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일을 도처에서 접할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 2023년 5월 3일 자 보도에 따르면, 주취자 관련 신고 건수가 100만 건에 달하고 경찰관, 소방관을 상대로 공무집행방해 범죄자의 67.1%가 주취자라고 합니다. 그러니 개인의 건강을 해치면서 사회적 폐해를 초래하는 음주 행위는 행복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다른 입장에서 술은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선물의 하나라고 합니다. 조지아의 와인과 이란의 맥주는 모두 8,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녔습니다. 술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느슨하게 해 줌으로써 일상생활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해소해 줍니다. 와인과 같은 일부 술은 심혈관 등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조선은 금주 시기에도 술을 약주라고 칭하며 노약자의 음주를 예외적으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서양에서도 증류주를 생명수(whiskey, eau de vie) 또는 영혼(spirit)이라 칭하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마실 물이 마땅하지 않은 상태에서 맥주를 음료수로 마셨습니다. 맥주는 살균력이 있어 물보다 안전한 음료수로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술은 인류의 생존에 필요한 사회적 연계성 강화에도 도움을 줍니다. 결과적으로 술은 개인적으로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건강에도 도움을 주며, 사회성도 키워준다는 점에서 행복한 삶과 긴밀하게 연관되었다고 합니다.     


이같이 술과 관련해서는 상반된 견해가 존재합니다. 두 가지 다른 견해에 대해 특정 입장을 지지하기보다는 첫째, 술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지, 둘째, 술은 어느 정도 마시는 게 적당한지, 셋째, 바람직한 음주는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술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나요?     


술과 기분의 관계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실험 결과가 있습니다. 술이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지 알아보기 위해 London School of Economics의 연구진은 Mappiness라는 앱을 개발했습니다. Mappiness는 술 마신 후 상태를 체크하는 앱입니다. 이 앱을 통해 2010~2013 기간 아이폰을 사용하는 31,302명을 상대로 2백만 건 이상의 음주 후 상태를 측정했습니다. 분석 결과 음주는 100점 기준 10.79점만큼 기분을 좋게 한다고 나타났습니다. 이 연구는 술 마신 후 기분 변화를 최초로 정량적으로 측정했다는 점에서 당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술의 만족도는 사교, 예술 활동 또는 데이트와 같은 적극적인 행위보다는 지루한 환경에 있을 때 큰 만족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몰입도가 큰 행위를 하는 경우 자신의 행위 자체에 따른 만족도가 높다는 점에서 술의 효과는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삶의 만족도가 낮을수록 음주 만족도는 높게 나타났습니다.      


어느 정도 술을 마시는 게 적당한가요?     


덴마크 영화 another round에서는 적정 혈중 알코올 농도 0.05%에서 사람은 긴장을 풀고 편하게 느낀다고 합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선진국 응주운전 기준 혈중알코올농도 역시 0,05그램이라 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음주 운전 기준은 0,03그램입니다.) 혈중알코올농도와 관련해서는 적지 않은 실험결과가 있습니다. 그중 흥미로운 한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호주의 한 TV 프로그램에서 시간당 와인 3잔씩 2시간 동안 와인 6잔을 마시는 실험을 젊은 남녀를 대상으로 진행했습니다. 와인 6잔을 마신 후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한 결과 최소치는 0.027이었고 최대치는 0.124로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혈중알코올농도는 몸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낮게 나타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의 혈중알코올농도가 남성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 두 가지 발견은 혈중알코올농도가 사람의 몸에 있는 수분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몸은 60%가 물이라 합니다. 술 마시고 취하는 현상은 술이 사람의 몸에 있는 물에 희석되는 과정에서 생깁니다. 그러므로 몸 무게가 많은 사람이 몸에 물을 많이 지니므로 술을 마셔도 덜 취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성은 남성에 비해 지방이 많은 반면, 물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몸무게가 적은 여성이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빨리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습니다.     


앞의 실험에 보았듯이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혈중알코올농도의 개인 편차는 매우 큽니다. 술 마실 때의 분위기, 먹는 음식, 남녀 성별, 몸무게, 신체 구조(근육과 지방의 분포) 등에 따라 취하는 정도가 크게 다르므로 몇 잔의 술을 마시는 게 적당한 지에 대한 획일적인 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마실지는 각자 스스로 판단해서 자신의 이력에 맞는 적정 수준을 마시는 게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음주의 최대 미덕은 편한 마음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하면 음주의 미덕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까요?      


소비행위에 대한 만족도 조사 결과 내 돈으로 내가 좋아하는 거 혼자 먹기보다는 내 돈으로 친구와 같이 먹는 행위의 만족도가 높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같은 돈을 쓰더라도 단순 소비재보다는 여행, 공연과 같은 경험재의 만족도가 높게 나타납니다. 또한, 부자와 서민이 같은 수준의 소비를 하는 경우 부자보다는 서민의 소비 만족도가 높게 나타납니다. 카네만에 따르면 이 모든 실험 결과는 한 가지 공통점을 보여줍니다. 내 돈 내고 나 혼자 맛있는 아이스크림 사 먹는 거보다는 친구 초대해서 음식을 나눠 먹는 게 더 즐거운 이유나, 아이스크림 사 먹는 거보다 공연 다녀왔을 때 만족도가 높은 이유, 그리고 돈이 적을 때 소비의 만족도가 높은 이유를 설명하는 한 가지 공통점은 바로 이야기(narrative)라고 합니다. (Kahneman 2013) 친구를 초대해서 저녁을 먹고 한잔 마시는 행위, 그리고 공연을 감상하고 여행을 다녀오면 그만큼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서민에게 외식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주지만 부자의 외식은 일상에 불과해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마시는 최선의 방법은 간단합니다. 친구나 친지, 이웃을 초대해서 좋은 술을 함께 마시는 것입니다. 술은 자기 나름의 역사와 이야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많은 이야깃거리를 지닌 술을 함께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세요. 그것이 행복입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초대해서 좋은 술을 함께 나누면 남은 여생이 외롭지 않습니다. 연금으로 술을 사는 사람을 '연금술사'라고 합니다. 영어에서도 연금술사(alchemist) 각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물론 월급 받아서 술과    있으면 그것도 바람직합니다. 그렇지만 월급,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일생의 주된 소득원은 생활비로 쓰세요. 그래서 월급은 밥사로 만족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훗날에도 꾸준히 친구, 친지를 초대하면서 행복한 일생을 살고 싶으면 오늘부터 개인연금을 드세요. 나중에 주된 소득원인 월급이 나오지 않더라고 개인연금이 나오면 친구들 초대해 술을 대접하세요. 월급 받는 분은 밥사, 연금 받는 분은 술사, 그래서 월급밥사와 연금술사의 슬기로운 조화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사세요.  


Daniel Kahneman (2013), Thinking, Fast and Slow Paperback,  Farrar, Straus and Giroux,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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