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소득 순인가요?
행복과 관련하여 경제적 측면에서 제기되는 주요 질문은 1) 소득이 증가할수록 행복도 비례하는지, 2) 재산의 관점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누가 더 행복한지, 3) 불평등은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로 요약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소득과 행복과의 관계에 대해 주요 연구결과를 토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소득과 행복의 관계를 최초로 연구한 분은 Richard Easterlin이라는 경제학자입니다. 이스털린(Easterlin 1974)은 전후 30년 간 미국 경제가 지속적 성장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행복 수준은 60년대 이후 하락하는 현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스털린이 보여준 소득과 행복의 모호한 관계를 우리는 이스털린의 역설이라 부릅니다. 이스털린의 역설은 시기를 197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확장해 보아도 유사한 양상을 보입니다.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미국의 경우 파란색으로 나타난 1인당 국민소득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음에도 오렌지색의 행복은 2000년대 이후에는 하락하는 현상을 보여줍니다. 행복과 소득 관련 다수의 국가에서 유사한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대부분 국가에서 이스털린의 역설은 확인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스털린의 연구 결과는 학계에 적지 않은 반향과 오해를 일으켰습니다. 한편으로 이스털린의 기여 덕분에 경제학자는 경제변수와 행복 간의 관계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스털린의 역설은 오해를 유발하였습니다. 경제 성장과 국민 행복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은 자칫하다가는 경제성장이 국민행복을 떨어뜨렸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점을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첫째, 이스털린은 행복과 소득이라는 두 개의 무관한 시계열 자료를 하나의 그림에 올려놓고 그 관계를 해석했습니다. 이는 마치 한국인의 쌀 소비량과 기대수명을 하나의 그림에 그린 경우와 비슷합니다. 이미 잘 아시다시피, 한국인의 쌀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지만, 기대수명은 계속 증가합니다. 이 그림을 갖고 쌀 소비를 줄였더니 기대수명이 증가했다고 말하면 이는 황당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이스털린의 역설 역시 두 개의 독립적인 현상을 하나의 그림에 얹었을 뿐입니다. 소득과 행복 간의 어떤 인과관계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경제가 성장했더니 행복이 줄어들었다는 식의 해석은 금물입니다.
둘째, GDP와 경제성장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소득이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추정하는지 이해한다면 행복과 소득 간 관계에 오해를 어느 정도 풀 수 있습니다. 경제성장은 지난해 대비 이번 해 GDP 규모가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GDP는 국민경제 규모를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분석 도구이고 2차 대전 이후부터 전 세계 모든 나라가 GDP로 국민소득을 측정하고 있습니다. GDP는 한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가 새롭게 창출되었는지를 측정하는 도구로 쿠즈네츠라는 경제학자가 만들었습니다. GDP는 국민의 웰빙 또는 행복 수준을 측정하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경제가 성장했다고 국민의 행복 수준이 그만큼 올라가라는 법은 없습니다.
경제성장이 국민 삶의 질에 미칠 수 있는 경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경제성장은 혁신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일자리, 새로운 상품, 새로운 생산 방식, 새로운 조직 등을 통해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것입니다. 특히 새로운 일자리와 새로운 상품 개발은 분명히 국민의 행복 증진에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경제성장은 국민에게 지난해보다 올해 더 많은 생산을 통해 더 많은 소비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런데 추가적 소비는 한계효용이 높지 않을 수 있으므로 소비 증대로 인한 행복 증진 효과는 작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소득 수준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개인 또는 한 나라의 소득 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소득의 증가는 웰빙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 소득 증가는 행복 수준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소득과 같은 경제적 조건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회, 문화, 심리, 정치, 환경적 요인도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행복을 가장 많이 연구하는 심리학자는 행복의 결정요인으로 심리적 요인을 중시할 것입니다. 사회학자는 신뢰를 포함한 사회적 자본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환경론자에게 행복은 쾌적한 환경 없이는 불가능해 보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요인이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득과 행복 연구를 진행하는 경우 그 관계는 얼마든지 불안정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한편, 이스털린 역설 이후 적지 않은 경제학자들이 행복과 소득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중 가장 영향력을 크게 미친 논문은 Stevenson and Wolfers (2013)입니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행복과 소득은 일정한 비례 관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소득이 두 배가 되면 행복은 5%가량 증가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의 경우 소득이 2배 증가하려면 오랜 기간이 걸립니다. 만일 경제성장률을 2%로 가정한다면 소득이 두 배가 되려면 자그마치 35년이 걸립니다. 그러므로 선진국의 경우 소득이 2배가량 증가하는 장기간의 소득 움직임과 행복을 비교해야 그 관계가 잘 드러날 것입니다. 이 보다 짧은 기간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경우 소득과 행복 간 관계는 잘 나타날 수 없습니다.
소득과 행복 간 관계에 대해 국가 간 연구 결과를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다른 요인을 적절히 통제한 다음 소득과 행복 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대체로 양의 상관관계가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득이 2배 증가할 때 행복 수준도 어느 정도 (5%) 향상된다는 점에서 경제성장이 느린 선진국의 경우 소득과 행복 간의 관계가 눈에 쉽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반면, 개도국과 같이 경제성장이 빠른 국가에서는 소득과 행복 간 관계가 보다 잘 드러날 수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 3] 참조)
이스털린 이후 소득과 행복 관련 가장 임팩트 있는 연구는 카네만과 디튼의 연구입니다. (Kahneman and Deaton 2010) 카네만과 디튼 이 두 분은 모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훌륭한 학자입니다. 특히 카네만 교수는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로서 행태경제학 분야에 대한 기여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카네만과 디튼은 갤럽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소득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소득과 행복이 같이 증가하지만 일정 소득을 넘어선 다음에는 소득과 행복 간 관계가 더 이상 선형적인 관계가 아님을 보였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느 정도 소득 수준에 도달하면 소득과 행복이 따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카네만과 디튼 교수의 논문은 2010년에 발표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인의 1인당 국민소득은 48,000 달러이었습니다. 두 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기준 75,000 달러를 넘어서면 소득과 행복은 더 이상 정비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당시 소득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의 1.5배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이를 오늘날 한국 사회에 적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대략 35,000 달러이므로 여기에 1.5배를 곱하면 52,5000 달러에 해당합니다. 환율을 대략 1250원으로 한다면 이 금액은 65,000,00원입니다. 이를 조금 넉넉하게 계산하면 모든 조건이 일정하다면 연간 소득이 7천만 원 보다 적은 경우는 행복과 소득은 같이 움직이지만 소득이 7천만 원을 넘는 경우 이런 관계가 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행복과 소득의 관계가 모호해지는 1인당 소득이 7천만 원을 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이는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10% 미만인 것은 확실합니다. 이는 대다수 국민에게는 소득 증가가 행복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참고자료
Easterlin, R. (1974) Does Economic Growth Improve the Human Lot? Some Empirical Evidence” In: David, R. and Reder, R., Eds., Nations and Households in Economic Growth: Essays in Honor of Moses Abramovitz, Academic Press, New York.
Daniel Kahneman and Angus Deaton (2010), "High income improves evaluation of life but not emotional well-being Center for Health and Well-being", US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August 2010
Betsey Stevenson and Justin Wolfers (2013), "Subjective Well-Being and Income: Is There Any Evidence of Satiation?", AMERICAN ECONOMIC REVIEW, VOL. 103, NO. 3, MAY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