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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May 07. 2024

생의 계단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 중에서



모든 꽃들이 시들 듯이

청춘이 나이에 굴복하듯이

생의 모든 과정과 지혜와 깨달음도

그때그때 피었다 지는 꽃처럼 영원하진 않으리.


삶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은 슬퍼하지 않고

새로운 문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도록

이별과 재출발의 각오를 해야만 한다.


무릇 모든 시작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

그것이 우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공간들을 하나씩 지나가야 한다.

어느 장소에서도 고향에서와 같은 집착을 가져선 안된다.

우주의 정신은 우리를 붙잡아 두거나 구속하지 않고,

우리를 한 단계씩 높이며 넓히려 한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자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나리라.

그러면 임종의 순간에도 여전히

새로운 공간을 향해 즐겁게 출발하리라.


우리를 부르는 생의 외침은

결코 그치는 일이 없으리라.

그러면 좋아, 마음이여!

작별을 고하고 건강하여라.


 -생의 계단 of 유리알 유희





<생의 계단>은 소설 <유리알 유희>(1943)에 나오는 시다. 

헤세 말년에  깊은 통찰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생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임종의 순간에도 여전히 새로운 공간을 향해 즐겁게 출발하리라”는 표현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도 완전히 벗어난 진정한 자유인이자  깨달은 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생의 모든 과정과 지혜와 깨달음도 그때그때 피었다 지는 꽃처럼 영원하지 않다. 

그러니 우리는 새로운 문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도록 매순 간 

이별과 재출발의 각오를 해야만 한다.

우주의 정신은 우리를 붙잡아 두거나 구속하지 않고, 

우리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를 한 단계씩 높이며 넓히려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자처럼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러면

죽음의 순간에도 여전히 새로운 공간을 향해 즐겁게 출발할 수 있다.

해서 이 시는 헤세의 대긍정과 초월의 마음, 

생사의 연결점을 인정하고 인지한 깨달은 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라 여겨진다.



나는 진리는 회오리바람처럼

나선형으로 상승하며 확장을 해가고

우리들의 영혼 또한 그러하다 믿는다.

그러니 날마다 매 순간 우리는  한 계단씩 오르며 

성장하며 나아가고 있다.



그가 그린 그림들과 데미안 표지의 헤세 초상화




헤세를 생각하면 청춘의 고뇌와 모색을 그린 그의 작품들이 생각난다.

외부 세계의 권위와 부딪히며 갈등하는 초기작 ‘수레바퀴 아래서’.

 그리고 데미안이라는 멘토를 통한 주인공 싱클레어의 자아 찾기 여정을 그린 ‘데미안’.

그렇게 홀로서기를 해 나가며 그는 점점 불교와 인도사상등 동양적인 사상에도 심취해 갔다.

그래서 ‘싯다르타’란 작품도 썼다.      


싯다르타는 삶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세계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바라보는 법을 깨닫는 과정의 이야기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해탈과 번뇌가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그래서 이론적  가르침을 통해 얻는 깨달음은

현실 세계에서는 적용할 수 없는 반쪽자리에 불과하다.    

소설 데미안에서는 인도자가 주인공의 홀로서기를 도왔지만 

싯다르타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주변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떠남으로 


결국
타인의 가르침이 아닌 자신의 경험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고
내 삶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임을 말하고 있다.



수레바퀴 아래서 자신의 내면으로 회개한 데미안,

그리고 결국 진정한 깨달음을 위해서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말하는 싯다르타까지

헤세의 작품들은 모두 인생의 구도 여정길을 보여주는 듯하다.    


  



태어나보니 신학자 집안이었던 그에게 철학과 종교에 대한 탐구는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때론 그 열정이 과도해서 신학교를 뛰쳐나오고, 자살을 기도하고, 학교에서 퇴학도 당한다.
그때의 상황이 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에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신학교를 뛰쳐나와 시계 수습공일과 서점일로 살던 그는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되자 9살 연상의 피아니스트인 마리아와 결혼하여
스위스 접경 지역에 정착하게 된다. 이후 여러 편의 작품이 성공을 거두었고,
헤세는 아들 셋을 둔 아버지가 되었다.
그러다 안정된 생활에 권태를 느끼며 여러 곳을 여행순례를 떠나기도 한다.     
그는 평화주의자였다.
1,2 차 대전을 모두 겪었던 그는
조국 독일의 군국주의가 일으킨 제1차 세계대전 때도,
히틀러의 나치즘이 광분하던 2차 세계대전 때도 전쟁을 반대하였다.
그래서 조국의 배신자라는 언론의 지탄을 받고 그의 모든 저서는
판매금지와 출판금지 처분을 받게 된다.
이러한 상황과 국민들의 비난은 헤세로서는 견디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게다가 부인까지 정신분열증을 앓게 되자  결국 자신도 정신 치료를 받게 된다.
이때 그는 심리학의 대가였던 칼 구스타프 융을 만났고,
며칠 후에 꿈속에서 바로 데미안의 등장인물들을 만났다고 한다.
치료를 통해 정신적인 위기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창작을 위한 영감을 얻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헤세는 나이 마흔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스위스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을 서툰 솜씨로 그리며
문학 창작에서 느끼지 못했던 희열과 평안을 느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가운데 종종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는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펜과 붓으로 작품을 창조해 내는 것은 내게 포도주와도 같아서,
그것에 취한 상태가 삶을 그래도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따스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헤세의 그림에는 사람이나 동물이 없다. 그가 그린 것은 오로지 말없는
산, 강, 풀, 이름 없는 들꽃들, 그리고 그가 어린 시절부터 들판에 누워 종일을 바라보았던 구름이었다.
사람이 나오는것은 정원에 물을 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정원사 헤세' 단 한 작품뿐이다.
그가 그린 소박한 그림에는 따뜻함과 휴식이 있다.
그는 수채화를 많이 그렸고, 그의 글에 직접 삽화를 그리기도 하였다.
또한 자주 친구와 지인들에게 수채화가 그려진 편지와
엽서를 보내기도 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작품 ”유리알 유회“는 히틀러에 의한 광란의 폭풍이 한창이던 암흑시대에 쓰였다.

죄악과 야만이 폭풍처럼 몰아치던 시기에 헤세는 이 작품 안에서 평화와 자유의 유토피아를 그렸다.  

대중적이라기보다는 철학적인 깊이가 있는 이 책은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

작품 속에는 동서양의 음악, 문학, 철학, 신학을 종합하는 최고의 지적 유희가 펼쳐져 있다.

이 작품을 발표한 3년 후 그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85세를 살다 간 헤세는 정원을 가꾸고, 토마토를 키우고, 낙엽 태우는 것을 좋아했다.


어쩌면 우리 각자의 생도

투명하고 반짝이는 유리알을 만들어가는

지적유희의 한 과정이 아닐까.      



독일인이지만 그의 작품과 사상으로
동양인인 나도 더욱 친밀감과 유대감을 느끼는 헤세,  
아마도 우리 모두 영혼의 결은 서로 닮아있어서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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