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에 아버지를 기리며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英雄)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시집 <절대 고독>(1970)-
커피를 무지 좋아하셨다는 시인님
가을이면 생각나는 시 「가을의 기도」와 어울리시는 분위기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어머니에 대한 시는 많지만 아버지에 대한 시는 그렇지 않다.
오월 가족의 달에 돌아가신 내 아버지를 그리며 낭송해봤다.
아버지 어께의 사랑의 무게로 인한 그 고독, 외로움과 함께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낮이면 세상이란 전쟁터에서 싸우다 저녁이면 가족 곁으로 돌아오는 아버지.
아버지가 덮어쓴 세상 때와 먼지를 어린 자녀들이 씻어준다.
아버지란 역할과 그 운명에 대해 담담히 그린 이 시가 좋다.
*김현승 시인 (金顯承, 1913~1975)
시인으로서 활동을 시작한 초기에는 모더니스트와 이미지스트의 면모를 보였다.
그 뒤로는 한국 시단에서 가장 뛰어난 지성 시인의 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아들을 잃고 나서 눈물의 시인이라고도 불리며 종교에 귀의해서
맑고 밝고 선명한 이미지들을 통해 기독교적 윤리적 실존의 자세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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