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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May 17. 2024

첫 시낭송

사랑에 대하여 – 칼릴 지브란



어제 시 낭송을 듣다 잤는데 아침 눈 뜨면서 이 시를 만났다.      


목감기도 가라앉히고 연습 좀 해서 나도 올려봐야지 했는데 이 시를 보면서 아, 이건 정말 내가 읊고 싶다~!는

마음에 부랴부랴 녹음을 했다.     


목소리도 안정되지 못한데다 시가 좀 길다. 사랑의 니 길이는 용서해주시기 바란다 ^^;     

폰을 가까이 두고 녹음해서 매끄럽지 못하고 소리가 크서 들을 때 볼륨 조절이 필요할 수 있다.               




사랑에 대하여 칼릴 지브란     


사랑이 그대를 부르거든 그를 따르라,

비록 그 길이 힘들고 가파를지라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를 감싸 안거든 그에게 온 몸을 내맡기라,

비록 그 날개 속에 숨은 칼이 그대를 상처입힐 지라도

사랑이 그대에게 말하면 그 말을 신뢰하라,

비록 북풍이 정원을 폐허로 만들 듯

목소리가 그대의 꿈을 뒤흔들지라도.    

 

사랑은 그대에게 왕관을 씌워 주지만

또한 그대를 십자가에 못 박기도 하는 것이기에

사랑은 그대를 성장하게 하지만

또한 그대를 잘라내기도 하는 것이기에     

사랑은 그대 머리로 올라가 햇빛에 떨고 있는

여린 가지를 어루만져주기도 하지만

또한 그대 뿌리로 내려가 땅 속에 붙박은 뿌리를

흔들어 되기도 하는 것이기에     


사랑은 곡식단을 거두듯이 그대를 자기에게로 거둬들이고

사랑은 그대를 타작해 알몸으로 만들고

사랑은 그대를 키질해 껍질을 털어 버린다

또한 사랑은 그대를 갈아 하얀 가루로 만들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그대를 반죽한다     


그런 다음 신의 거룩한 잔치를 위한 거룩한 빵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의 성스런 불꽃 위에 그대를 올려 놓는다.     

사랑은 이 모든 일을 행하여

그대로 하여금 가슴 속 비밀을 깨닫게 하며

그 깨달음이 그대 삶 속의 심장의 파편이 되게 한다     


그러나 만약 그대 두려움 속에서

사랑의 평화, 사랑의 기쁨만을 찾으려 한다면,      

차라리 그대의 벗은 몸을 가리고 사랑의 타작마당을 걸어 나가는 것이 좋으리라

계절도 없는 세상 밖으로, 웃어도 진정으로 웃을 수 없고

울어도 진정으로 울 수 없는 그런 곳 으로.     


사랑은 저 자신밖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으며,

저 자신밖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사랑은 소유하지 않으며, 소유 당하지도 않는다.

사랑은 사랑으로 충분함으로.     


사랑할 때 그대는 '신이 내 가슴속에 있다.'라고 말해선 안 된다.

그 보다도 '내가 신의 가슴속에 있다.'라고 말해야 한다.      


또한 그대가 사랑이 나아가는 길을 지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대에게 자격이 있음을 알게 되면 사랑이 그대의 길을 지시할 것이기에.

사랑은 사랑 자체를 채우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그대 만일 사랑하면서도

또 다른 바람을 품지 않을 수 없거든, 이것이 그대의 바람이 되게 하라.     

서로 하나 되어 흘러가며 밤을 향해 노래 부르는 시냇물처럼 되기를.

지나친 다정함으로 인한 고통을 알게 되기를.

사랑을 이해함으로써 그것에 상처 받기를.

그리하여 기꺼이, 즐겁게  피 흘릴 수 있기를     


날개 달린 가슴으로 새벽에 일어나

또 하루 사랑의 날을 보낼 수 있음을 감사할 수 있기를

낮에는 쉬면서 사랑의 황홀함에 대해 되새길 수 있기를

저녁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올 수 있기를

그런 다음 사랑하는 이를 위해 가슴 속으로 기도하고

입술로는 찬미의 노래를 부르며 잠들 수 있기를     


20년만에 완성한 '예언자'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은 레바논 출신의 시인이자 작가, 화가이다. 그는 레바논 출신이기에 더욱 매력적이다. 원래 아랍은 동,서양의 합체같은 문화다. 그는 레바논의 기독교출신으로 기독교와 이슬람 두 종교 속 문화적 혼혈인이다.      


그는 1895년 부유한 가정에 태어났고 12세 때 아버지만 레바논에 남고 전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2년간 영어를 공부하고, 다시 레바논으로 돌아와 5년간 아랍어와 프랑스어를 공부했다. 그 후 1902년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인생체험을 쌓았다. 1908년 프랑스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할 때 조각가 로댕을 만나 3년간 미술을 공부하는등 다양한 작가들과의 만남과 교류를 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초기에 그는 아랍어로 희곡과 산문시를 쓰다가 20세를 전후 영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1923년, 20년간의 쓰서 완성한 원고를 드디어 출판하는데, 그것이 바로 영어로  산문시 《예언자 The Prophet》이다.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답을 깨닫게 하여 현대의 성서라고 불리는 《예언자》는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예술 활동에만 전념했다. 늘 레바논의 평화를 기원했고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주장했다. 평소 외로움을 알코올로 달래면서건강을 해쳐  1931년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랍과 비아랍, 레바논과 뉴욕등 두 세계를 넘나들면서 특유의 이중적 세계관으로 시공을 초월하는 진실을 이야기 그는 전 세계 독자들과 공명하며 현대인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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