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 개막식을 보았다. 소감은 역시 프랑스가 프랑스 했다는 느낌이었다.
훤칠한 지단 선수가 나와서 성화를 어린아이에게 물려주고 성화는 역사적 현장을 거치고 센 강을 건너 다시 지단이 이어받아 다양한 나라 선수에게 그리고 100세 고령선수에게도 전해진다. 최종적으로 봉송되어 열기구를 타고 성화는 하늘로 올라간다.
이제껏 스테이디엄 경기장에서 열리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이번 파리 올림픽은 여러모로 새로웠다. 건물과 건물이 높지 않게 이어진 지붕 위로 괴도 루팡 같은 복면을 쓴 주자가 성화를 들고 달린다.
그러다 센 강 위를 말을 타고 달리기도 하고 짚 라인을 타고 내려와 마지막엔 여성 기사가 말을 타고 입장하는 극적인 장면으로 바뀐다. 이런 모습들이 마치 영화와 소설 등을 오마쥬한 것 같았다.
아는 만큼 보일 것이지만 그 모든 것이 내겐 시선을 사로잡을만큼 흥미로웠다.
(오늘 금메달을 딴 오상욱선수가 쓴 헬멧을 보니 어제 여성기사가 쓴 가면이 펜싱선수가 쓴 것과 같은 것이었구나~~하며 잔다르크를 상징한 여자기사가 아니었나 싶었다 )
(오늘 금메달을 딴 오상욱선수가 쓴 헬멧을 보니 어제 여성기사가 쓴 가면이 펜싱선수가 쓴 것과 같은 것이었구나~~하며 잔다르크를 상징한 여자기사가 아니었나 싶었다 )
땅에서만 이뤄지던 성화봉송이 사람없는 빈 스테이디엄에서 시작되어 지하수로와 지하철을 타고 지붕위를 날아 강을 건너 마침내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그러나 드론영상으로 편안하게 앵커들의 설명과 함께 영상으로 보는 나와 현장에서 직관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싶기도 했다. 비까지 내리는 날씨에 여기저기에서 이뤄지는 공연들이 자칫 산만하고 집중이 안 되었을 수도 있다.
프랑스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 정신과 올림픽의 연대정신까지 합쳐서 여러 주제로 공연과 음악, 쇼가 펼쳐졌다. 그중에서도 마리 앙트와네트의 잘린 머리를 들고 노래와 춤으로 하는 공연도 인상적이었다.
올림픽을 파리시민에게 돌려주겠다는 말처럼 파리 자체가 무대였던 개막식이었다. 에펠탑, 루브르, 파리 시청, 노트르담 등등 특히 줄에 매달린 무용수들이 불탄 노트르담을 재건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도 놀라웠다.
성화가 봉송되고 열기구가 오르면서 셀린 디온이 에펠탑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근육이 마비되는 병마와 싸운 그녀가 부른 에디트 피아프의 자작곡 ‘사랑의 찬가'는 정말 조금은 어수선했던 개막식 쇼를 마감하는 사이다 같은 역할이 되었다 본다. 셀린은 캐나다 퀘벡 출신이며 퀘벡은 캐나다 안의 프랑스라 할 수도 있는 지역이다. 자유, 평등에서 인류화합의 연대, 스포츠정신을 사랑의 노래로 마무리한 것 아닌가 하면서 좋았다.
개막식을 보고 나서 혹자들은 올림픽이 주제가 아니라, 파리 관광 홍보 영상 같다는 지적도 했다. 그리고 무얼 그리 다 때려 넣으려고 이거 저거 다 넣어서 산만하기만 하다는 평도 있었다.
프랑스에 인재가 없어서 다른 나라 가수를 쓰냐?라는 말도 있었지만 나는 미국의 레이디가가의 핑크와 빨강풍차 물랑 루즈의 캉캉춤이 한 세트로 연결되어 좋았다. 그리고 존 레넌의 Imagine 노래는 평화화합의 올림픽 정신과 하나여서 좋았고 성화 봉송을 자국 선수만이 아닌 다른 나라 선수들이 함께 한 것도 지구촌 올림픽으로 다 좋게 보였다.
산만하고 어수선한 걸 어떤 사람은 낭만적으로 보기도 한다 ㅎㅎ
무엇보다 큰 행사일수록 거창한 비용을 들여 건물을 짓고 행사 후는 일회용처럼 덩그러니 남기는 그런 식의 비효율성을 줄이면서 기존의 건물과 강을 이용한 점도 바람직했다 본다. 저비용 고효율의 행사로 지속가능한 친환경적인 개최방식에 박수를 보낸다.
아쉬운 점은 선수들 입장 시 우리나라 소개를 잘못한 것인데 이에 대해 언론과 대중들이 좀 과민한 반응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리허설도 없이 한 사상 최초의 6km 선상 입장식이었다. 세계 선수들이 배를 타고 한 독특한 퍼레이드 형식의 입장식이었다.
게다가 205개국에서 온 선수들이 85개의 배를 타고 이동하니 한 배에 두 세 나라가 타고 있었던 점을 미루어 고의적 실수는 아니었으리라 본다.
그리고 국명이 우리말로 남한과 북한이라 하듯이 불어로는 선명히 구분되는 말이 아니다. 남한과 북한은 la Corée du Sud et la Corée du Nord로 그래도 좀 구분이 되나 정식국명은 좀 다르다.
대한민국은 République de Corée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République populaire démocratique de Corée이니 의도치 않고 실수를 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니 실수가 있었다면 너그러이 그럴 수도 있었겠다 하고 넘어가면 더 좋지 않을까? 그것이 관용의 똘레랑스 정신이다.
나는 이십 대 절반을 프랑스에서 보냈다. 당시 누군가 나를 북한에서 왔냐?라고 물으면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러니 프랑스친구가 내게 너는 왜 남북한을 그리 달리 보느냐? 체제는 다르지만 같은 민족이면서... 등등 많은 말을 해 주었는데 듣고 난 내가 부끄러워졌던 기억이 있다.
남북한이 흑과 백처럼 천국과 지옥처럼 다른 것도 아니다. 누가 우리 이름을 실수로 잘못 부른 것보다 우리는 불과 100년 전만 해도 같은 역사를 가진 한 나라였다는 사실이 더 서글퍼고 안타까울 뿐이다.
문화와 예술의 도시 파리, 삼색기 대혁명의 나라 프랑스가 신발 벗고도 못 따라올 우리 문화만의 우수성이 있다. 반면에 아직도 30년이 더 가야 따라잡을 프랑스적인 것이 더 좋은 면도 있다. 나는 그중 하나로 다양성에 대한 존중정신을 꼽고 싶다. 내 기억으로 프랑스를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우열과는 무관하게 그냥 다양성을 존중하는 나라였다.
상대의 잘못이나 다름에 대한 똘레랑스와 존중이 그리 어려울까?...
나라, 민족, 종교, 인종을 넘어서 스포츠로 만나 겨루는 올림픽도 결국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축제가 아니던가? 오늘 부터 그런 스포츠정신으로 2024 올림픽이 잘 진행되고 이 주 후 멋진 폐막식 공연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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