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양궁 경기를 네덜란드와의 준결승부터 봤다.
만만찮았던 상대팀의 선전 덕분에 추격당하다 2:2 세트에서 슛오프 접전으로 승리했다.
그리고 나서 중국과의 결승전이 있었다.
나는 중국과의 경기를 늘 인구 5천만 대 14억의 경기라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이는 마치 반 대표와 학교대표선수 대결이나 지역축구와 국가대표팀의 대결같기도 하다.
그렇게 중국과의 양궁결승전에서 우리는 두 세트를 먼저 따내며 앞서갔지만, 내리 두 세트를 내주며 결국 또 한 번 슛오프로 갔다. Shoot off는 마치 축구에서 승부차기와 같다.
선수들이 상대팀과 번갈아가며 한 발씩 쏠 때마다 박수를 치거나 아니면 한숨을 내어 쉬게 된다.
진짜 아슬한 경기였던 것이 우리 두 선수가 10점 과녁에 걸친 9점, 한 선수가 9점을 쏘면서 합이 27점으로 중국과 동점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동점일 경우 10점을 과녁 중심에 더 가깝게 쏜 중국이 우승을 차지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두 선수의 화살이 컴퓨터 판독으로 모두 10점으로 인정되면서 두 점 차로 극적인 우승이 확정됐다.
선수들이 웃고 관중들이 환호해도 나는 마지막 결과 선언까지 가슴조리며 기다리다가 10연패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남편과 양손 하이 파이브를 세 번 하면서 우리도 소파에서 같이 뛰었다.
연패하다~defeat in a row는 줄 지어 무찌르다는 말이다. 마치 게임에서 계속 몰려오는 적을 무수히 무찌르는 그림처럼 짜릿하다.
한국여자 양궁 10 연패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36년째이니 여러모로 이것은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오죽하면 명궁을 넘어서 신궁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이전에는 나도 '아 우리는 고주몽의 후예야. 양궁실력 이거, 놀라운 유전자 덕분이지',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서양에 활쏘기 명장이 없지도 않다. 총이 발명되기 전에는 창과 검 활이 주 무기였으니 당연히 동서양을 막론하고 활쏘기의 명장들이 많았다. 의적 로빈 훗을 비롯하여 빌헬름 텔도 있다. 아들의 머리에 사과를 올려놓고 쏜 그 유명한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은 이름 ‘주몽’ 자체가 활 잘 쏜다는 뜻이라 한다. 그리고 중국이 우리를 폄하하며 불렀던 동이족의 ‘동이’도 한자로 활을 잘 쏘는 동쪽 오랑캐란 뜻이다. 말을 타고 뒤로 활 쏘는 고구려벽화 그림, 정말 유전자 속에 활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10연패의 기적은 무엇보다도 뛰어난 기술력과 팀워크, 그리고 각 선수들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물일 것이다.
그리고 선수들이 훈련과 연습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준 후원의 힘이기도 하다. 이번 10연패의 영광 후에 승리의 요정으로 소개된 후원단체는 우리나라 자동차 기업의 대부인 H기업이었다. 그리고 그간 후원은 하되 일체 관여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같은 H 계열의 축구 후원자와는 완전 다른 모습이다.
불미스러운 소음이 무성한 데다 물의를 일으키고 올림픽 출전까지 좌절된 축구팀 이야기는 서글펐다. 선수들은 훌륭한데 협회니 조직이니 이런 사람들과 후원인의 인격적 자질이 문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를 보면 돕는 일도 진정으로 돕는 것이 어떠해야 함을 양궁 후원팀이 잘 보여주는 것 같다.
후원팀은 실제 파리 앵발리드 양궁경기장과 같은 훈련장을 진천 선수촌에 마련해 주었다. 해서 실전 경기진행 멘트와 응원소리까지 음향을 넣어 시뮬레이션 연습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양궁은 기술적인 요소 못지않게 정확한 조준을 위한 심리적 안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 선수들이 4일 먼저 출국해서 시차와 현지 적응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다.
그리고 이 모든 후원을 뒤에서 후원만 했지 일체 선수 선발이나 협회운영에 관여하지 않았다. 실제 매번 선수선발도 나이, 경력, 뒷배경 없이 현재 실력만으로 투명성과 공정성으로 했다. 이와같은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선수들의 각고의 노력과 더불어 10연패의 기적을 이뤄내지 않았나 싶다.
선배선수들의 바톤을 이어받은 10연패 우승의 주인공들 - 전훈영, 임시현 그리고 남수현
양궁뿐 아니라 펜싱의 종주국인 프랑스에서 훤칠한 키에 매너남으로 부상한 오상욱 선수의 금메달도 멋졌다.
펜싱 검과 활에 이어서 총에 이르기까지 금메달 행진은 계속되었다.
특히 공기권총에서 룸메이트인 오예진, 김예지 두 선수가 서로 의지하고 응원하면서 금, 은메달을 나눠가졌다는 것도 신기했다.
정말 한국인의 유전자가 놀라운 걸까? 집중력과 정신력이 체력 못지않게 중요한 올림픽 각 종목경기에서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우수한 유전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거기에 덧붙여 은근과 끈기로 차곡차곡 쌓아온 노력의 결실일 것이다.
아빠가 메달리스트로 파리 올림픽에서 해설을 하는데 딸이 직접 출전한 여홍철, 여서정 부녀선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딸의 경기를 보며 해설을 해야 하는 마음이 어떨지, 딸의 성적결과가 나오자 아버지가 울컥하는 장면도 감동이었다. 남은 경기도 결과를 떠나서 다치지 않고 여서정 선수와 모든 다른 선수들이 다 선전해 주기만을 바란다.
이전 교단에서 가르칠 때 나는 학생들에게 운동과 공부만큼은 정직한 결과를 보여준다고 했다. 다른 세상일은 운이나 주변사람이란 변수가 도와주겠지만 운동도 시험성적도 노력한 만큼만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정말 금빛 은빛 메달을 얻기까지 혼자 고독한 싸움을 해 온 모든 선수들의 땀과 노고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그리고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도 보이지 않는 모든 과정이 있기에 빛나는 결실이 있음을 알고 더욱 힘내서 살고 싶다.
나를 포함한 내 주위에는 이전 삶이 평탄했던 사람도 있지만 남모르게 남다르게 힘들고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앞으로 남들보다 더 빛날 일을 생각하며
지금 안심하고 행복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나온 시간이 힘들었던 만큼
다가올 시간들은 결코 어둡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고
올림픽 경기를 본 나의 소감을 빗대어
말해주고 싶다.
Ps 올림픽 4th Day 소감문
총,검,활
다 짱짱하게 잘 하고 있다~
펜싱 금메달에 이어 양궁 남녀혼합 단체 금메달
사격도 공기권총 두 여선수에 이어서
16세 소녀가 쫄깃하게 금메달을 땄다.
정말 집중을 잘하는 우리 선수들
그간 노력해서 연습도 쌓았지만
현장 멘탈도 짱짱한 증거로 보여서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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