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모여 아침 먹기
나는 본가인 마산에서 지리산집 세컨드 하우스를 5도 2촌식으로 오가고 있다. 평소엔 그냥 오가지만 윗지방으로 올라갈 일이 있으면 내려오면서 들리기도 한다. 이번에도 큰 아이 이사해 주고 내려오면서 들렸는데 비가 계속 부슬 오니 바깥 활동하기에는 안 좋았다.
아침에 눈만 뜨고 아직 침대에 있는데 밖이 떠들썩하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인 이곳 동네분들은 목소리가 다들 크시다. 동네라 해야 열 서너 가구밖에 안 되는데 누가 밖에서 얘기하면 소리가 다 들린다.
올 때마다 인사부터 챙기는 나는 벌떡 일어나 창문 열고 이층에서 ‘나 왔어요’ 하는 식의 보고인사를 했다.
그랬더니 좀 있다 전화기가 울린다. 앞집 언니가 아침 먹으러 오라고 하는데 시계를 보니 겨우 7시다. 시골에 와도 우리 아침 먹는 시간은 9시 전후로 늦은 편이다.
너무 이른 시간인 지 남편은 안 가려 한다. 할 수 없이 혼자 가니 부지런한 언니는 정갈하게 아침상을 차려놓으셨다. 블루베리랑 오이, 감자등은 텃밭 소출이다.
이쁘게 가꿔둔 마당꽃들을 잠시 감상했다. 남의 손의 떡이 커 보인다가 영어속담으로 The grass is greener on the other of the fence 다. 그런데 그래서 앞집 마당이 더 이쁜 게 아니다. 나도 집 짓고 첫 해에는 장날마다 묘목을 사다 심으며 정신없이 열중했는데 일단 그렇게 꽂아 심어 두고 잘 돌보지는 않는다.
뭐든 시작을 잘 하고 열정도 있으나 지속적으로 돌보고 가꾸는데는 소질과 끈기가 없는 편이다. 남편도 천 평 오미자밭일도 있어서 일일이 마당꽃과 나무를 다 돌보지는 못한다.
그런데 앞집 마당은 심고 뽑고 정리하며 가꾼 주인장의 손길로 일년 365일 모든 게 적당하고 이쁘다. 우리 집 나무나 꽃들은 다 들쭉날쭉 자연 상태로 거의 방치 수준이다. 백합은 고개가 거꾸러져 거의 바닥에 닿는 상태고 장미덩굴도 통로를 막을 정도로 앞으로 뻗쳐있다. 그러니 정원은 인공적, 자연적이냐를 떠나서 어쨌든 사람의 손길이 닿아 다듬은 것이 더 보기 좋다.
언니는 밭에 풀 뽑느라 좀 무리한 데다 덥다고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서 목이 잠겼다. 내가 그럼 감기약 드시고 쉬시지 뭐 하러 불렀느냐? 하니 우리 집에 먹을 거 없을 거 같아 불렀다 한다. 좀 뜸하게 시골집에 오면 밥 하기 서글플까 봐 김치와 밑반찬도 나눠주시는데 자꾸 얻어먹기도 미안할 따름이다.
이 시간에 아침으로 나도 기껏해야 토마토 몇 조각, 감자 한 두 알이면 된다며 세 사람 먹기 많다고 다른 언니도 부르라 하니 그럴까? 하신다.
좀 있다 옥수수 삶던 마산 언니가 압력솥 김도 빼기 전에 솥째 받쳐 들고 오셨다. 이 집 옥수수는 결코 시장에서 돈 주고 사 먹을 수 없는 맛이다. 언니가 온도, 시간, 간도 딱 맞춰 옥수수를 쪄 내니 그 연함과 찰기가 정말 나무랄 데 없는 맛이다. 마산언니는 마산에 사시다 아저씨 고향마을로 돌아오셔 집을 지으셨는데 아저씨는 돌아가셨다.
옛날에 시골에는 택호란 게 있어서 출신지로 00댁 이렇게 서로 불렀다. 물론 젊은 사람은 00엄마 이렇게 했겠지만 연세드신 분 이름은 그렇게 불렀다. 내가 이 동네 집을 짓고 나서 젤 어리고 80대 할머니들이 절반이 넘었다. 해서 나는 방정맞게 00댁 택호로 부르기도 그래서 그냥 내식으로 이름지어 불렀다.
장구를 잘 치시니 '장구할머니' 내게 마늘을 주셔 '마늘 할머니' 그리고 한분은 시계를 잘 못 보셔 '시계 할머니'라 불렀다. 그러면 다른 분들도 나랑 얘기할 때는 '선생님 말로는 시계 할머니가~' 이런 식으로 말을 해 가셨다. 마을에 집 짓고 들어온 지가 7년 짼데 그간 세상 떠나신 할머니도 너덧분이나 되니 안타깝다.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게 있고 오고 가는 게 정이다. 달리 드릴 것도 없어서 아들집에서 가져 온 베트남 커피랑 커서 안 입고 있던 수제 옷을 앞집 언니께 드리니 옷이 잘 맞다고 좋아하신다. 좀 있으니 읍내 수영장으로 아침 운동 가셨던 부녀회장님도 오셨다. 이렇게 어째 저째하다 보니 다 모여 얼굴도 보고 그간 밀렸던 동네소식도 한꺼번에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한 사람씩 더 올 때마다 다시 단호박도 쪄 내오고 인삼 달인 물도 나오고 오는 사람도 하나씩 음식을 들고오니 앉아있는 시간도 더 길어진다. 원래 약속도 없던 만남이지만 마당 있는 집은 원래 그렇다.
조금 있으니 일주일에 몇 번 독거노인 탐방 오시는 읍사무소 직원까지 지나가다 여러 사람 모여있는 걸 보고 들어왔다. 직원은 이런저런 얘기끝에 당근 어플이 물건 사고파는 것 외에도 커뮤니티에 대한 여러 기능도 있다며 내게 갈쳐준다.
여기는 열린 공간이다. 대문 없이 열려있고 하늘이 다 보여 열려 있고 지나가다 사는 모습 다 보여 열린 공간이다. 뜬금없이 옆집 앞집에서 부르면 편하게 들고 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서 좋다. 누구 집에 누가 언제 왔다가는 지도 다 보이고 담 너머로 말소리가 다 들리는 것도 호불호가 있겠지만 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