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고찰, 공주 마곡사

태화산 자락에서 만난 조용한 겨울 산사

by 김별

아산에 있는 아들 집에 머문 지도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다. 멀지 않은 곳에 공주 마곡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하루를 내어 찾아 나섰다. 이름은 익숙했지만, 그저 유명한 사찰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터였다. 막상 발길을 옮겨보니 마곡사는 통일신라 말에 창건된, 천 년 세월을 품은 고찰이었다.

마곡사는 충남 공주시 사곡면 태화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사찰음식집과 작은 식당들, 계절에 따라 어울릴 듯한 카페들이 띄엄띄엄 이어진다. 곧장 절로 오르기보다 잠시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데크 길이 첫인상부터 마음을 끌었다.



길을 오르는 동안 법구경 구절들이 간간이 눈에 들어온다. 계곡물 소리와 바람 소리, 맑은 공기가 한데 어우러지며 마치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기 전 마음을 씻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아들과 일부러 월요일, 조용한 시간을 골라 찾은 덕에 풍경은 더욱 고요했다. 걷는 내내 하루 운동량도 자연스레 채워지는 듯해 몸과 마음이 가벼웠다.


중간쯤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더덕을 파는 분을 만났다. 값을 묻자 말없이 하나를 깎아 내민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더덕이 이렇게 달았나 싶어 잠시 멈춰 섰다. 내려오는 길에 꼭 사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은 지켰다.



마곡사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일대에 삼을 많이 재배해 ‘삼골’이라 불렸던 것이 한자로 옮겨져 ‘마곡(麻谷)’이 되었다는 설, 또 하나는 유명한 스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삼밭의 삼대처럼 빽빽이 모여들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다. 어느 쪽이든, 사람과 이야기가 모이던 골짜기였음은 분명해 보였다.


해탈문 지나 천왕문 지나며 유머러스한 사천왕상도 만난다~


절 마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오층석탑이다. 14세기에 세워진 이 탑은 티베트식 상륜부를 갖춘 독특한 형태로, 보물 제799호다. 2단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리고 청동으로 만든 머리 장식을 얹었는데, 원나라 라마탑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고려가 원과 활발히 교류하던 시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탑 왼편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백범당이 있다.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 장교를 처단한 뒤 인천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탈옥한 김구는 1898년 이곳에 이르러 삭발하고 법명 원종(圓宗)을 얻었다. 그러나 출가보다 독립운동의 길을 선택하며 마곡사를 떠난다.



해방 후인 1946년, 다시 찾은 마곡사에서

대광보전 기둥의 주련의


“돌아와 세상을 보니 꿈속 일과 같구나.” 를 읽고

김구 선생이 심은 80년된 향나무가 그 자리에 남아 있다.


그 향나무 옆길을 따라 내려가면 마곡천이 흐르고, 조금 더 가면 김구 선생의 삭발터가 나온다. 그는 《백범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냇가로 나가 삭발 진언을 쏭알쏭알 하더니 내 상투가 모래 위로 툭 떨어졌다.

이미 결심은 하였지만, 머리털과 같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 일직선상에 놓여 있어 대웅전으로 착각하고 삼배를 올린 곳은 대광보전이었다.

이곳은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 불에 소실된 뒤 조선 순조 13년(1813)에 다시 지어졌다. 현판은 단원 김홍도의 스승으로 알려진 표암 강세황의 글씨라 전해진다.

오층석탑과 대광보전


대웅보전으로 오르는 길 곳곳에는 자갈을 쌓아 만든 작은 돌탑들이 눈에 띈다. 누군가의 소원이었고, 또 누군가의 마음이 이어져 쌓였을 것이다. 경내 질서를 해친다는 시선도 있지만, 그 돌탑들 속에서 사람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게 된다.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으로, 조선 후기 각순대사가 중창한 건물이다. 마곡사에는 영산전, 대웅보전, 대광보전, 오층석탑을 비롯해 여러 전각과 문들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절 전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박물관처럼 느껴진다.

마곡천 돌다리에 여름철이면 사람들은 앉아서 발을 담근다


절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주차장 쪽으로 내려와 산채비빔밥과 정식을 먹었다. 향긋한 나물 향에 공주 막걸리를 곁들이니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마곡사는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으면서도, 굳이 많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절이었다.


조용히 걷고, 잠시 머물다 돌아오기만 해도 충분한 곳.

태화산 자락에서 만난 그 편안함은 돌아오는 길 내내 오래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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