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여수 바다

by 김별


나: 사람들이 왜 겨울 바다를 좋아하는지 말해줄래?
쳇: 좋은 질문이에요. 사람들이 겨울 바다를 좋아하는 데에는
단순히 “풍경이 예쁘다”가 아닌 꽤 깊은 이유가 있어요.



1. 비워진 공간이 주는 안정감


여름 바다는 사람·소리·색으로 가득 차 있지만,
겨울 바다는 덜어낸 풍경이에요.

이 비어 있음이
마음의 소음까지 같이 줄여줍니다.



2. 파도가 “감정”이 아니라 “리듬”으로 들릴 때


여름엔 파도가 흥분처럼 느껴지지만
겨울엔 호흡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겨울 바다 앞에 서면
생각이 정리되고, 말수가 줄어요.


3. 차갑지만 솔직한 풍경


겨울바다에서는 “나만 여기 있는 것 같은”

감각으로 그래서 지금 내 상태를 그대로 받아주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겨울 바다에 서 있으면
누군가와 경쟁하지도, 비교하지도 않게 됩니다.

잘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즐거워 보여야 할 의무도 없고

그냥 있는 나만 남아요.


그래서 특히 혼자일 때, 겨울 바다는 더 좋아요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겨울 바다에서
위로가 아니라, 침묵에 가까운 평안을 얻습니다.

여수의 겨울 바다는 특히 그래요.
섬이 많아서 파도가 과하지 않고,
도시와 자연의 경계가 부드럽거든요.





똑똑해서 더 할 말이 없었다.

오랜만에 기차표를 끊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순천에서 갈아타 여수 엑스포로 향했다.


여전히 화장실 이슈가 있는 대장암 환자인 내게
기차는 버스보다 낫다.
편하고, 덜 긴장된다.


편의점에서 김밥을 하나 사 먹었다.
속이 든든해졌다.
토요일이지만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여수는 바람만 없으면 따뜻하다는데
오늘은 바람이 많았다.


엑스포 건물은 필요 이상으로 크고,
물 위의 원형 건물은 텅 비어 있었다.
한때 북적였을 장소라는 사실이
지금은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란 늘 그렇다.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걷기 시작했다.
바람은 차지만 공기는 맑았다.
평소에도 해안 수변공원을 걷지만
타지의 바다를 보며 걷는 기분은 다르다.
같은 바다인데도 그렇다.
태평양을 보다가 대서양을 처음 봤을 때처럼.


결국 문제는 풍경이 아니라 마음이다.
바다는 늘 거기 있었을 뿐이다.


금세 배가 고파졌다.
아침에 추천받았던 식당으로 들어갔다.
혼자도 가능하다고 해서 갈치구이를 시켰다.
자르지도 않은 갈치가 길게 누워 있었다.


여행을 오면 절약은 잠시 미뤄둔다.
유럽 물가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다.
게장과 반찬이 넉넉했다.
눈으로 먼저 보고, 결국 다 먹었다.


왕갈치구이와 누네띠네


카페로 걸어갔다.
바람은 여전히 매웠다.
그래도 일부러 걸었다.
걷고 칼로리를 태운 뒤 마시는 커피가
더 향기로울 거라 생각했다.


빵은 푹신한 것보다 바삭한 게 좋았다.
커다란 누네띠네와 아메리카노.
못 먹을 것 같았지만
갈치도 먹었으니 이것도 먹었다.


앉아서 읽고 싶던 글을 읽었다.
댓글도 몇 개 남겼다.
혼자인데도, 아니 혼자라서
이 시간이 충만했다.
돈보다 시간을 아끼는 나에게
이 시간이 아깝지 않다는 감각은 중요하다.


사람은 자기가 의미 있다고 느끼는 일을 할 때
자연스럽게 행복해진다.



다시 밖으로 나왔다.
항구다운 항구를 보고 싶었다.
지도만 찍어두고 그냥 걸었다.
추워서 휴대폰을 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버스를 탈 수도 있었지만
걷는 쪽을 택했다.


이순신 광장을 지나
마침내 항구에 닿았다.

잠시 멈춰 섰다.
물길을 바라보았다.
윤슬이 반짝였다.
사진 몇 장을 남겼다.



이순신광장과 여수항 해양공원



이 바다를 보고 싶어 할 사람들이 떠올랐다.
여러 이유로 오지 못하는 사람들.

나도 그랬다.


10년은 육아,
10년은 종교,
10년은 직장.
도합 30년 동안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했다.


자유를 갈망했지만
늘 다음으로 미뤘다.


사람은 이상하다.
갇혀 있을 때는 나가고 싶어 안달하다가
막상 문이 열리면 망설인다.
어릴 때 묶인 체인을
커서도 그대로 차고 있는 코끼리처럼.
길들여진 탓일 것이다.


사촌언니가 말했다.
너는 말이 통하니 해외여행을 혼자 잘 다닌다고.
그래서 물었다.
그럼 말이 잘 통하는 국내여행은
왜 혼자 못 가냐고.
언니는 킥 웃었다.
문제는 거리도, 장소도 아니다.
혼자 갈 수 있느냐의 문제다.


나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수없는 자기 검열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넘는 순간
길은 열렸다.
사소한 외출도
검열에 걸리면 못 한다.


사람은 자기 선택만큼의 자유를 얻고
그만큼 의식이 넓어진다.


공원에서 케이블카를 보았다.
섬과 항구 사이를 부지런히 오갔다.
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줄서서 기다리다 시간에 쫓기고 싶지 않았다.
이것도 경험이 준 선택이다.


먼나무,동백꽃,아이스아메리카노


돌아갈 때는 택시를 탔다.
여수역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실 여유를 남기기 위해서였다.
그 선택이 옳았고 마음에 들었다.


그날 내 마음 같았던 바다의 윤슬





걷는데 어디선가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미스터 선샤인과 나의 인생 드라마인 '나저씨' OST.

고 이선균을 애도하며 지금 들어도 여전히 눈물이 난다.


https://www.youtube.com/watch?v=5a-tqIQc8RM&list=RD5a-tqIQc8RM&start_radi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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