뚤루즈에서 보낸 유학 시절 (11)

가론느 강변에서 배운 자유

by 김별


나의 지방 국립대 입학에는 졸업하면 유학을 보내주겠다는 아버지의 약속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졸업 후 차근차근 유학 준비를 했고,

이듬해인 1986년 10월, 프랑스로 떠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혼자 떠날 생각이었지만 계획이 어그러져

결국 유학원의 도움을 받아 그룹 유학 형태로 가게 되었다.


졸업 후 유학 가기 전 대학원 석사과정을 다니며 행정조교로 일하던 지금의 남편과 스터디를 하며 만났다.

같은 동아리였던 남편은 대학 4학년 때부터 내게 마음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가장 편한 친구로만 여겼고,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던 시기였다.


혼자 떠나는 유학도 아니고 단체로 움직이는 일정이라 설렘이나 긴장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당시 우리나라는 국비 유학생 제도 중심에서

1980년대 중반부터 자비 유학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 해외 유학의 문이 열려가던 시기였다.


해외여행이 본격적으로 자유화된 것은 1989년 이후였고, 내가 출국하던 1986년만 해도 반공 교육 이수 같은 조건들이 따라붙었다.

모르는 한국인이 접근하면 북한 사람일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교육을 받았고,

프랑스에 있으면서도 동유럽 여행은 불가했다.




프랑스 남서부 도시, 뚤루즈의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가방을 방에 던져두고 곧장 시내로 나갔다.


그토록 바라던 공기를 마시며

버스를 타고 도시를 한 바퀴 훑듯 돌아보았다.

지금도 나는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먼저 이렇게 ‘휘리릭’ 돌아본다.

냄새와 빛, 리듬을 몸으로 먼저 받아들이며

그곳과 친해지는 나만의 방식이다.


시내를 다 둘러보고 돌아오자 같은 팀으로 온 친구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경상도에서 온 작은 여학생이 겁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예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단순해서 작은 체구에 비해 겁이 없는 사람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날, 혼자 나갔을 때 내 등 뒤에 붙어 있던 무언가가 툭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나를 조종하던 마리오네트의 끈이

마침내 끊어진 것 같은 해방감.

그 기억은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았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 자유가 좋았다.

유학원에서는 1년 동안 전공 과정 대신 어학 코스를 듣게 될 거라 했고, 덕분에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았다.


베트남 학생들은 불어를 잘했지만 수줍었고,

캄보디아에서 온 정치 망명 청년은 차분하고 친절했다. 남미에서 온 여자 친구는 말이 빠르고 많아 늘 분위기를 살렸다.


스위스에서 온 니콜라 커플도 기억에 남는다.

어느 날 이른 아침, 니콜라가 갑자기 기숙사로 찾아와 나 때문에 여자친구와 크게 싸웠다며 횡설수설했다.

수업 시간에 들은 내 이야기를 자꾸 꺼냈다가 눈치 없는 말 한마디가 화근이 된 모양이었다.

독일어 액센트로 떠듬거리는 불어로 울먹이는 그를 나는 웃으며 누나처럼 다독여 보냈고

다행히 더 큰 소동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수업을 맡았던 여선생님은 박사 논문을 준비하느라

눈이 빨갛게 충혈된 날이 많았다.
가끔은 머리를 감지않아 엉망이기도 했지만,

교실에서는 언제나 환한 웃음으로 학생들을 맞아주셨다.

특히 샤이한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시고, 서툰 표현에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나는 그 선생님을 통해 외국어 학습에서 가장 큰 장애는 실력 부족이 아니라 심리적 위축이라는 사실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훗날 외국어 교사가 된 뒤, 그 기억은 자연스럽게 나의 수업 태도가 되었다.

학생들의 발음이나 문법보다 말하려는 용기와 불안을 먼저 살피게 된 것은, 그 선생님이 보여주신 배려 덕분이었다.


이후 논문을 지도해 주신 교수는 헝가리 출신의 분이었다. 동유럽인 특유의 넓은 시야와 학문에 대한 뜨거운 열정, 그리고 분명한 자부심을 지닌 사람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프랑스인 교수들의 절제된 방식과는 달리, 그분의 의사소통은 훨씬 호방하고 직접적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두 사람에게서 배운 서로 다른 결의 태도를
학생들을 대하는 내 방식 속에 나란히 들여놓고 있었다.


말을 기다려주는 침묵과
확신을 전하는 단호함 사이에서,
나만의 교사로서의 언어가
천천히 만들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기숙사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난생처음 완전한 독립을 경험하며

모든 것이 새롭고 즐거웠다.


혼자 슈퍼에 가서 바게트를 사 오며

절반을 길에서 뜯어먹고,

파스타를 직접 만들어 먹는 일조차 재미였다.

프랑스에서 나는 처음으로

‘먹는 즐거움’을 온전히 알게 된 것 같다.


버터의 풍미, 크루아상과 팽 오 쇼콜라,

그리고 무엇보다 우유를 넣은 홍차,

떼 오 레의 부드러움이 좋았다.

유학 생활이 길어지며

나는 점점 요리에 능숙해졌다.


고춧가루에 꿀을 섞어 베란다에 두면

고추장이 될 거라 믿을 정도로 순진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외국 친구들과의 포트락 파티를 준비하며

김밥과 잡채, 불고기를 만들면서

내 요리는 점점 자리를 잡아갔다.

나중에 고추기름까지 내어 짬뽕에까지 도전했을 때는 파스타 면으로 사리를 대신했지만

국물만큼은 제법 그럴듯했다.


나는 김치 없이는 못 사는 입맛은 아니어서

학교 식당과 기숙사 식당 음식도 잘 먹었다.

감자 퓌레, 쿠스쿠스, 라따뚜이, 스테이크….

그 영향인지 지금도 프렌치프라이를 유난히 좋아한다.


기숙사 뒤편 숲길을 산책하고

사시사철 유유히 흐르는 가론느 강을 바라보며


나는 물질적 풍요보다

더 큰 정신적 여유를 배워가고 있었다.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지만

일상 속 신앙은 느슨하다.

나는 미국인 선교사 부부를 통해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성경을 접했다.


불어로 읽은 성경은

뜻을 먼저 붙잡게 해 주었고,

특히 신약의 예수님 말씀은

내 마음 깊숙이 들어왔다.


교회 신도들은 늘 함께 점심을 나눴다.

나는 처음엔 빵을 맡다가, 나중엔 올리브유와 식초로 소스를 낸 샐러드를 자주 만들었다.

토마토와 상치에 달걀이나 치즈를 얹은 그 샐러드를 형제자매들이 맛있다며 칭찬해 주었고,

나는 그 소박한 식탁이 천국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다.


교회에서 보낸 3년 동안 나는 여름 캠프에서 주방 봉사를 하고, 때로는 자매들의 아이를 돌보며 작은 수고를 나누었다.

그 무렵부터 성경 속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 말씀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비혼에 가까웠던 나도, 혹시 결혼이 내 삶의 계획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던 시기였다.


그즈음 엉뚱한 미국 청년 마크가 캠프에서

자신이 걸고 있던 금 목걸이를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게 주라고 어머니가 하셨다”며 내게 걸어주려는 해프닝이 있었다.

나는 황당해 웃으며 돌려주었지만,

그날 하루 종일 마음이 괜히 어수선했다.


나중에 프랑스 친구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으니

친구는 마크 그 녀석 원래 그런 성격이라며

깔깔 대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나는 잠시나마 고민하고 기도하며 품었던

내 믿음의 순진함과 열정이 민망해서 허탈했다.


또 한 번은 교회 친구 디디에와

함께 한국에서 온 택배를 찾았고,

어머니가 보내주신 밑반찬으로 함께 밥을 먹었다.

얼마 뒤 부산에서 온 친구가 찾아와

디디에가 나와 결혼을 고민하고 있다며

흥분해 앞뒤 없이 따져 묻는 소동이 벌어졌다.


아마도 그날 택배를 찾아온 날 같이 밥을 먹으며

한국 엄마의 따뜻한 정을 느꼈을 테고

그 후 디디에는 교회 마치고 나랑 같이 산책하자며

둘이 가론느 강변을 걸었다.

그렇게 혼자 마음을 흘려보내고 있다가

내가 교회에서 보여주는 좋은 모습만 보고

그리 마음을 먹게 된 거 같다고 해명했다.


돌이켜보면 이 작은 해프닝들은 모두,

내가 결혼을 자연스럽게 삶의 한 선택지로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의 예고편 같은 것이었다.


지나고 보면 인생의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조차


서로 얽혀 하나의 방향으로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음을


지금 이렇게 자서전을 쓰면서 새삼 더욱 알게 된다.




*포트락 파티(Potluck Party)

~ 여러 사람이 각자 집에서 만든 요리나 음료, 주류 등을 조금씩 가져와 함께 나눠 먹는 모임.

'냄비 속 행운(luck of the pot)'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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